알짜회사인 줄…지금은 애물단지 [스페셜리포트]
8월 초 백화점 3사의 2분기 성적표가 나란히 공개됐다. 롯데쇼핑과 신세계는 본업 회복세를 이어간 반면, 현대백화점만 영업이익이 뒷걸음질쳤다.
백화점 본업만 놓고 보면 현대백화점도 나쁘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 유입과 명품·리빙 수요 회복으로 점포 실적은 견조했고, 면세점도 흑자 기조를 지켰다. 그런데 연결 숫자만 유독 주저앉았다. 문제는 백화점 밖에 있었다.
현대백화점이 8월 초 공시한 2026년 2분기 연결 잠정 실적은 순매출 1조681억원, 영업이익 793억원이다. 매출은 1.1%, 영업이익은 8.7% 줄었다. 상반기 누적으로는 순매출 2조181억원(-7.4%), 영업이익 1781억원(-10.7%), 당기순이익 1257억원(-11.9%)이다.
하루 앞서 나온 지누스의 성적표를 보면 답이 나온다. 2분기 매출 1475억원, 영업손실 267억원. 전년 동기에는 매출 2295억원에 영업이익 291억원을 냈던 회사다. 1년 새 매출의 35.7%가 증발했고 손익은 뒤집혔다.
상반기 누적 기준은 좀 더 아쉽다. 매출 2871억원으로 40% 급감했고, 566억원이던 영업이익은 568억원 영업손실로 돌아섰다. 반기 순손실은 449억원이다. 지난해 4분기 231억원, 올 1분기 301억원에 이어 세 분기 연속 적자다.
현대백화점은 2022년 지누스 인수에 8789억원을 썼다. 그룹 창사 이래 최대 규모였다. ‘아마존 매트리스’로 불리며 미국 온라인 매트리스 시장점유율 30%를 쥔 회사, 리빙 사업을 글로벌로 확장할 교두보. 살 때의 청사진은 선명했다. 그러나 지누스의 영업이익은 2022년 655억원에서 2023년 183억원으로 꺾였고 2024년 54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결산에서는 무형자산 손상차손(잠깐용어 참조) 2056억원이 반영되며 순이익까지 적자전환했다. 인수가의 4분의 1에 가까운 금액을 장부에서 지운 것이다.
재계에서 이런 사례는 적잖다. 2020년대 초 저금리와 유동성이 넘치던 시기에 국내 기업이 사들인 회사의 청구서가 지금 한꺼번에 도착하고 있다. 인수 당시엔 하나같이 그럴듯한 시너지 스토리가 있었고, 이사회를 통과했고, 대내외적으로 ‘승부수’라고 썼다. 4~5년이 지난 지금 그 청사진은 손상차손이라는 숫자로 정산되는 중이다. 재계 ‘아픈 손가락’이 주는 시사점을 톺아봤다.

유형별로 뜯어본 M&A 잔혹사
M&A 잔혹사의 유형은 여럿이다. 이중 업황 고점 베팅형이 가장 뼈아프다.
롯데케미칼은 2023년 3월 동박 업체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약 2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지분 53.3%에 그 값이면 기업가치 4조7600억원, 시장가 대비 프리미엄 80~90%가 붙은 셈이다. 2차전지 밸류체인 완성이라는 명분이었지만 전기차 수요가 꺾이며 이 딜은 그룹 유동성 위기설의 진원지가 됐다.
특히 아쉬운 건 지금 막 롯데케미칼이 턴어라운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케미칼의 올해 2분기 매출은 5조6864억원, 영업이익 1101억원을 내며 두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지난해 2분기 2505억원 영업적자에서 방향을 돌렸고,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도 1836억원으로 전년 3771억원 적자에서 흑자전환했다. 반면 2조7000억원을 주고 사온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2분기 매출 1942억원에 영업손실 169억원으로 여전히 적자다. 적자폭이 45.7% 줄고 상반기 손실도 771억원에서 219억원으로 축소된 것은 성과지만, 모회사가 정상 궤도로 복귀하는 동안 인수 자산만 손익분기점 아래 남아 있는 구도다.
같은 소재, 같은 시점, 닮은 결말이 SKC다. 2019년 1조2000억원에 동박 1위 KCFT를 인수해 SK넥실리스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연결감사보고서를 보면 인수 당시 잡아둔 영업권 취득원가 6895억원 중 2044억원이 이미 손상 처리됐다. 2024년 897억원에 이어 지난해 1147억원을 추가로 털어냈고, 유형자산 손상차손 1289억원까지 겹쳤다. 회사는 사용가치 산정에 세후 할인율 10.8~12.7%, 영구성장률 1%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인수 당시 전제한 성장 곡선을 회계적으로 낮춰 잡았다는 뜻이다. 별도 기준 SK넥실리스의 지난해 매출은 3578억원, 영업손실 1368억원, 순손실 4494억원이며 차입금은 1조3146억원, 부채비율은 243.7%다.
무형자산 과대평가형도 있다. 넷마블은 2021년 소셜카지노 업체 스핀엑스를 2조5000억원에 사들이며 8435억원을 영업권으로 계상했다. 2022년 6588억원을 시작으로 매년 손상을 반영했고 직전 사업연도에도 무형자산에서 1234억원을 털어냈다. 그럼에도 올 1분기 말 연결 영업권 잔액은 2조988억원에 이른다. 장부에 남아 있는 웃돈이 그만큼이라는 의미다. 2분기 영업이익은 801억원으로 20.8% 줄었다.
하이브의 사례는 더 극적이다. 2분기 매출 1조4500억원, 영업이익 1709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방탄소년단 월드투어가 만든 숫자다. 그런데 상반기 누계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매출은 2조1483억원으로 78.1% 늘었지만 영업손익은 257억원 적자로, 전년 동기 875억원 흑자에서 뒤집혔다. 반기 순손실도 469억원이다. 1분기에만 196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2021년 1조2000억원을 들인 이타카홀딩스 여파로 지난해 하이브아메리카에서 2796억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했고, 전체 투자지분 손상차손 3332억원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왔다. 1분기 보고서에서 회사는 각 현금창출단위에 손상징후가 식별되지 않아 손상검사를 다시 수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무형자산과 영업권 잔액은 2조493억원이다.
GS리테일이 2021년 3076억원을 투자한 요기요 운영사 위대한상상 역시 이 유형에 해당한다. 위대한상상은 8월 기준으로 기업가치는 상당히 떨어졌다. 사업보고서상 GS리테일 관계기업 투자 장부금액을 보면 2024년 말 435억원에서 지난해 말 182억원으로 줄었고, 올 1분기 말에는 144억9000만원까지 내려앉았다. 투자액의 95%가 사라진 셈이다. 소멸 경로는 지분법손실(투자한 회사가 낸 손실 중 지분율만큼을 모회사 장부에도 반영하는 것)이다. 요기요는 2024년 3022억원, 지난해 842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그 30%인 253억원이 지난해 GS리테일 장부에 그대로 얹혔다. 올 1분기에도 37억원이 추가됐다. 매출 자체가 2024년 2752억원에서 지난해 2011억원으로 27% 줄어든 터라, 남은 장부가마저 언제 소진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같은 해 인수한 푸드 커머스 자회사 쿠캣 역시 무형자산·영업권에서 314억8800만원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할인율 10.98%, 영구성장률 1%, 추정기간 5년을 적용한 결과다. MZ세대 고객 유입과 온라인 채널 확대라는 인수 명분이 회계적으로 부정됐다.
역설적인 것은 그 다음이다. GS리테일의 2분기 매출(잠정실적)은 3조1751억원으로 6.7%, 영업이익은 1094억원으로 27.5%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646억원으로 354% 급증했고,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도 1677억원(+31%), 순이익은 1072억원으로 463% 뛰었다. 편의점과 슈퍼마켓의 수익성 개선이 이끈 숫자지만, 여기에는 요기요·쿠캣 관련 부실을 상당 부분 털어낸 효과가 겹쳐 있다.
유통 업계에서는 이마트의 지마켓글로벌(옛 이베이코리아) 인수도 같은 유형으로 꼽힌다. 이마트는 2021년 6월 지분 80.1%를 3조4404억원에 인수하며 국내 이커머스 M&A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오픈마켓 1위 사업자를 품어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유통 공룡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지마켓글로벌은 편입 첫해인 2021년 43억원의 소폭 흑자를 낸 뒤 2022년 655억원, 2023년 320억원, 2024년 67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4년 내내 연간 흑자를 한 번도 내지 못했다. 매출도 2022년 1조3185억원에서 2024년 9612억원으로 27% 줄었다. 쿠팡 등 경쟁사의 공격적 확장 속에 오픈마켓 시장의 성장성 자체가 꺾이면서, 인수 당시 전제했던 ‘거래액 성장’이라는 밸류에이션 근거가 무너진 결과다. 이마트는 지마켓글로벌을 연결 실적에서 제외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차입 의존형이다. 소노인터내셔널은 2025년 6월 24일 티웨이홀딩스 지분 46.26%를 2500억원에 사들여 티웨이홀딩스와 티웨이항공(현 트리니티항공)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다. 다만 회계상 이전대가는 기존 보유 지분을 취득일 공정가치로 재측정한 금액까지 포함해 1조292억원으로 잡혔고, 이 과정에서 영업권 8617억원이 발생했다.
그런데 소노인터내셔널은 인수 첫해 결산에서 곧바로 이 영업권 중 2949억원을 손상 처리했다. 회사는 손상검사에 매출성장률 1.6~14.9%, 영구성장률 1%, 할인율 9.7%를 적용했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 조건에서도 3분의 1이 날아갔다. 잔여 영업권은 5668억원으로, 소노인터내셔널 전체 영업권 6268억원의 90%를 티웨이 한 건이 차지한다. 산 지 6개월 만에 웃돈의 3분의 1을 지운 셈이다.
피인수 기업의 실적이 그만큼 나빴다.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7982억원에 영업손실 2655억원, 순손실 3383억원을 냈다. 대형기 도입에 따른 투자 부담과 유가·환율 상승이 겹친 결과다.


왜 같은 실수 반복되나
실사팀이 붙고 회계법인이 검증하고 이사회가 의결한 인수인데도 결과가 이렇게 나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기업가치 산정(밸류에이션) 당시 분위기에 휩쓸린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인수 당시 프리미엄(웃돈)의 근거는 대부분 ‘미래 성장성’에 집중돼 있었다. 이때 기준은 인수 직전 실적이 대부분이다. 지누스도, 일진머티리얼즈도, 이타카도 인수 시점이 해당 업황의 정점 부근이었다. 사이클 산업에서 고점 실적에 배수를 곱하면 결괏값은 구조적으로 과대평가될 수 있다.
경쟁 입찰 구조도 가격을 밀어올렸다. 경매에서 이긴 쪽이 대상의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사게 되는 ‘승자의 저주’는 M&A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현상이다. 여기에 지배주주 주도의 딜이라는 ‘한국형 변수’가 더해진다. 총수가 방향을 정한 뒤에는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올라오기 어렵고, 실사팀의 역할이 ‘살지 말지’가 아니라 ‘얼마에 살지’로 축소되기 쉽다.
인수 후 통합(PMI) 준비가 협상만큼 치밀하지 않았던 점도 공통적이다. 맥킨지는 M&A 가치 창출의 70% 이상이 PMI 단계에서 결정된다고 본다. 협상 테이블에는 최고 인력이 붙지만 클로징 이후에는 관리 인력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자금 투입 과정의 리스크 관리와 내부 의사결정 절차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외이사 중심의 독립 검토, 인수를 반대하는 시나리오를 의무적으로 작성하게 하는 ‘레드팀’ 운영 등 M&A 과정에서 반대 논리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수 후 부실이 발생했을 경우 ‘손절의 제도화’로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있다.
이수성 롤랜드버거 대표는 “사전에 정한 손절 기준(exit trigger)을 두고 인수 후 몇 년 내 어떤 지표에 미달하면 매각이나 구조조정에 착수한다는 원칙을 계약 단계에서 문서화해두면, 나중에 매몰비용 논리에 휘둘릴 여지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물론 고가 인수 후 한동안 고전하다가 턴어라운드하는 사례도 있다.
삼성전자가 2016년 9조4000억원(약 80억달러)에 사들인 하만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내 M&A 사상 최대 규모였고 “왜 오디오 회사를 사느냐”는 의문과 ‘승자의 저주’ 우려가 따라붙었다. 이후 4~5년간은 하만 실적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주위의 우려가 증폭됐다.
하지만 그 사이 하만은 오디오 회사에서 전장(매출의 65~70%)으로 체질을 바꾸면서 지난해 매출 15조7833억원, 영업이익 1조5311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인수 완료 직후인 2017년 매출 7조1034억원의 두 배가 넘고, 영업이익률도 9.7%다. 디지털 콕핏과 카오디오에서 글로벌 1위에 오른 하만은 이제 스스로 인수 주체가 돼 지난해 마시모 오디오사업부와 독일 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을 사들였다.
LG전자의 ZKW 인수 후 개선 사례도 눈길 끈다. 2018년 ZKW를 약 1조4000억원에 인수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꺾이며 2020년 2371억원, 2021년 6913억원의 영업권 손상차손을 잇달아 인식했다. 인수가의 3분의 2에 가까운 금액이 장부에서 지워진 뒤 최고경영자 교체 등 대대적 쇄신을 거쳤고, 지난해 ZKW의 순이익은 2523억원으로 전년(132억원) 대비 20배 가까이 늘었다. 이수성 대표는 “이미 프리미엄을 과하게 주고 산 경우는 성과 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밸류업(value-up)하는 수밖에 없다”며 “밸류업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이 9351억원을 들인 코스알엑스 역시 편입 직후 매출이 분기 1000억원 아래로 떨어져 ‘아픈 손가락’으로 불렸다. 그러나 유통 재정비와 신제품 라인 확대를 거쳐 지난해 4분기 매출 1523억원, 영업이익 381억원으로 편입 이후 분기 최대 실적을 냈다. 한국콜마가 2022년 2864억원에 인수한 연우도 올해 실적 개선으로 흑자전환이 전망된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M&A의 성패는 얼마에 샀느냐보다, 인수 협상에 투입하는 역량의 절반이라도 인수 후 성장, 실행 계획에 배분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잠깐용어]
*손상차손
인수한 자산의 가치가 장부가에 못 미친다고 판단될 때 그 차액을 회계상 손실로 털어내는 것.

닥터자르트, AHC 수조원에 사갔지만 고전 중
유니레버는 2017년 AHC의 카버코리아를 약 3조원에 인수했다. 2018년 658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매출은 지난해 2319억원으로 3분의 1 수준까지 줄었다. 영업이익도 352억원으로 20.1% 감소했다. 대신 2024년 515억원, 지난해 373억원을 배당했다. 2년간 배당 888억원은 같은 기간 순이익 682억원을 웃돈다.
에스티로더는 2019년 닥터자르트 운영사 해브앤비 지분 66.7%를 약 1조3000억원에 사들였다. 최근 회계연도(2024년 7월~2025년 6월) 매출은 1788억원으로 23.2% 줄었고 영업손실 232억원, 순손실 258억원을 냈다. 판관비가 매출의 68%에 달했다. 앞서 518억원 규모 유상감자로 자본을 본사에 돌려줬고, 국내 판매 채널은 백화점·면세점 철수로 올리브영만 남았다.
두 가지 딜의 매수 시점은 모두 중국 특수 정점이었다. 사상 최고 실적에 배수를 곱한 값이 가격표가 됐고, 중국 소비가 꺾이자 전제가 무너졌다. 셋 다 자체 생산설비 없이 OEM·ODM에 의존한 터라 유행이 지나가면 방어할 기반도 없었다. 지금은 배당과 유상감자로 자본을 회수하는 국면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이 총수 한 사람의 뜻에 휘둘리는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사 인력도, M&A 경험도 국내 기업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잘나가던 해의 실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기업가치를 매기면, 어느 나라 기업이든 같은 자리에서 넘어진다는 얘기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4호(2026.08.26~09.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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