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우제공'(兄憂弟恭)...SK E&S와 SK온

[재무제표 읽기] SK그룹 리밸런싱의 키(key), 과거 성장사에 있다

형(SK온)의 성공을 위해 동생(SK E&S) 희생하려나

'형우제공'(兄憂弟恭)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형이 걱정할 때 동생은 공손히 따른다"라는 뜻이다. 형제 간에 서로 돕고 배려하는 상황을 표현할 때 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동생의 공손함은 ‘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wikimedia commons

최근 SK그룹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룹 총수는 이혼소송 결과 2심에서 약 1조4000억원의 재산분할 판결을 받았다. 비록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고 하지만 1심과 정반대나 다름없는 2심 판결이어서 최 회장을 비롯한 회사 관계자들이 깜짝 놀란 듯 싶다.

여기에 그룹은 사업 리밸런싱(재조정)을 위한 중대한 의사결정을 앞둔 상황이다.

최태원 회장이 지난해 CEO 회의 때 '서든 데스'(돌연사)를 언급한 이후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이 SK그룹의 화두로 떠올랐다.

합병 이유는 신규사업으로 진행한 2차전지 회사 SK온㈜를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 '형우제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SK이노베이션㈜은 2007년 SK(주)가 석유, 화학 및 윤활유 제품 등의 생산ㆍ판매, 유전개발, 대체 에너지사업 등을 영위할 신설법인으로 인적분할한 회사다.

SK의 지분은 36.2%로 2024년 1분기 기준 자산총계 86조3000억원, 부채 55조원, 자본 31조3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부채비율 175%, 종속회사만 71개를 가진 대형 기업이며, 그 종속회사 중 하나가 SK온㈜이다. 이 회사는 SK그룹에서 미는 차량용 배터리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생산·판매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2021~2023년 누적 적자는 1조9000억원에 달하며, 부채비율은 190%로 어려운 상태다. 설상가상 SK온의 2차전지 사업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SK E&S와의 합병이다.

도움이 필요한 SK온의 이야기는 많이 나오는데, SK E&S의 입장은 어떨까?

2023년 SK E&S 사업보고서. / DART

SK E&S는 도시가스사업 지주회사로 설립돼 전력·집단에너지·재생에너지·해외에너지·수소·에너지솔루션 사업으로 확장했다. 2023년 기준 매출액 11조1671억 원을 달성한 회사다. 영업이익 1조3317억 원을 올렸고, 지분 90%를 보유한 모기업 SK㈜에 배당으로 약 6821억원을 보낸 효자다.

이 회사의 특징을 2022년에 발생한 실적 발표를 보면 이해가 쉽다. 이 회사는 당시 영업이익보다 당기순이익 훨씬 많았다. SK E&S가 갖고 있던 China Gas Holdings 지분을 매각해 발생한 8230억 원의 '관계기업 처분이익' 때문이다.

SK E&S의 주력 사업은 지역 도시가스 공급이지만, 해외 쪽 투자도 활발했고 그 결과 인수한 지분을 매각해 많은 매각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SK E&S가 매년 벌어들이는 수천억 원의 자금이 SK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는 걸 입증한 사례다.

SK E&S 자산총계는 18조 원인데, 규모에 있어서도 경쟁사인 삼천리 5조 원, 포스코에너지 4조3000억원에 비해 월등한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도시가스 외에 청정수소 에너지 솔루션, 저탄소 에너지 사업 등 미래발전 가능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사업에서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SK온과의 합병'이라니...SK E&S의 속마음은 어떨까?

"아버지가 하라고는 하지만, 용돈 챙겨드린 것도, 집안 살림에 늘 보탬이 된 것도 난데, 분가한 큰 형이 빚 갚을 수 있게 도우라고?” 정도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SK그룹의 성장사를 살펴보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선경그룹에서 출발한 SK는 에너지에서 통신으로 그리고 반도체까지, 신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계열사를 붙였다 떼어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올라온 우리나라 대기업 중 주요 그룹의 지분관계를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SK그룹 지분도에 나와 있는 SK E&S 위치는 지금과 사뭇 다르다.

SK는 수많은 합병과 분할을 통해 사업구조 재편을 이룬 그룹이다. 현재 SK㈜라 불리는 회사는 원래 SK C&C(舊 대한텔레콤)이고, DART 전자공시시스템 1999년 대차대조표 기준 3606억 원의 자산을 갖고 있었다. 당시 부채비율이 646%로 굉장히 높은 편으로, 매출액 3660억 원과 영업이익 183억 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룹의 중심 사업이 통신·에너지·반도체 등으로 확대된 지금, 지주사인 SK㈜의 재무제표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SK㈜는 자산총계 약 207조 원, 매출액 131조2378억 원, 영업이익 5조 원을 기록하는 거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 속에 몇 번의 ‘형우제공’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때마다 모두가 흡족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룹의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2023년 SK그룹 지분도를 보면 ‘아니다’라고 말하기 힘들다.

다만, 누군가(회사)를 위해 또다른 누군가는 희생되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위로 받아 마땅한 '동생'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