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밀리면 호구 된다'…앙숙 이스라엘∙이란 '자존심 전쟁'
중동이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엔 다시 이란의 공격이다. 지난 4월 사상 최초로 이스라엘 본토에 공습을 감행한 지 반년만인 지난 1일(현지시간) 200여발의 탄도미사일을 또 이스라엘로 발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즉각 보복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은 공격 수위를 더 높여 이란의 핵 시설 타격 카드까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이란이 보복과 재보복을 거듭하면서 주변국들은 물론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보복 패턴 속에서 공격 양상이 점차 더 고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 한 발의 우발적 실수만으로도 전면전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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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지난 4월의 2배 규모로 공격”
이란과 미국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이스라엘로 향한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총 200여발이다. 이란은 또 자국산 극초음속 미사일 '파타흐'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지난 4월 13일 첫 이스라엘 본토 공격 당시엔 순항미사일 36발, 탄도미사일 110발, 무인기(드론) 185대를 동원했었다. 이와 관련, 미 국방부는 “이번 공격 규모가 (공격 능력 등으로 따져) 지난 4월의 두 배 정도”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대부분 공격은 ‘아이언돔’ 등 이스라엘의 방어망과 미 해군 구축함에 요격되면서 무위로 끝났다. 발표된 피해 역시 경미하다. 이스라엘 측은 “요르단강 서안에서 미사일 파편을 맞은 팔레스타인 주민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테러도 같은 날 발생했다.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의 도심 한복판에서 괴한 2명이 돌격소총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해 7명이 숨지고 최소 8명이 다쳤다. 이들은 경찰과 총격전 끝에 사살됐지만, 이란의 대규모 공습과 길거리 총기 테러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공포감이 확산됐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사살된 용의자들은 팔레스타인 국적으로 파악됐다.
‘저항의 축’과 교전도 계속되고 있다. 레바논의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는 2일 남부에 진격한 이스라엘 보병들과 교전을 벌여 격퇴했다고 성명을 냈다. 이스라엘군은 같은날 레바논 지상전에 기존 1개 사단 외에 추가로 1개 사단을 더 투입했다고 밝혔다. 예멘의 후티 반군 역시 이날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 계획에 돌입했다. 지난 1일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오늘 밤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공격한다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악시오스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보복 작전에 요인 암살과 방공망 타격도 포함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란의 핵 시설 타격 카드도 거론된다. 미 정부 관계자는 뉴욕타임스에 “이스라엘이 이란 핵 프로그램의 핵심인 나탄즈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핵시설 공격이 현실화할 경우 이란 역시 자신들이 이끄는 ‘저항의 축’을 동원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며 전쟁으로 치닫는 연쇄 작용이 불가피하게 된다.
‘평판 전쟁’ 벌이는 이스라엘과 이란
이처럼 전쟁이 과열되는 것은 양국 모두 중동 내 평판이 걸려 있기 때문이란 풀이가 나온다. 한마디로 양측이 ‘평판 전쟁’을 벌리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무너진 ‘무서운 이스라엘’ 이미지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력과 군사력, 미국이란 뒷배까지 이스라엘은 누구도 건들기 어려운 존재였는데, 하마스 공격으로 일순간에 이런 평판이 무너졌다”며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온 헤즈볼라에 대한 대규모 작전을 감행한 것도 평판 회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란 역시 자존심을 살릴 명분이 시급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이번 공격 직후 “이스마일 하니야(하마스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헤즈볼라 수장), 압바스 닐포루샨(IRGC 작전부사령관)의 순교에 대응해 이스라엘의 심장부를 공격했다”고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들 모두 이스라엘의 공습에 암살된 ‘저항의 축’과 이란 군부 수뇌였기 때문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란의 이번 공격은 국내 여론을 의식하고, 국제사회에 자위권 차원에서 했다는 정당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며 “또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네타냐후 등 전쟁광을 제어하지 않으면 파멸로 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 대선 앞두고 다른 행보 보이는 양국”
확전의 향방은 두 앙숙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때까지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에 달렸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셈법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다. 장지향 위원은 “이스라엘은 레임덕에 빠진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공백을 적극 이용해 최대한 공격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란은 확전될 경우 이란에 악수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지난 7월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하마스 수장 하니야를 암살한 뒤 계속 공격 수위를 높여왔다. 지난달엔 무선 호출기(삐삐) 폭발로 헤즈볼라 대원 수천 명에게 피해를 입힌 데 이어, ‘벙커버스터(지하시설 파괴용 미사일)’ 100여발로 헤즈볼라 지휘부를 궤멸시켰다.
반면 이란은 하니야 암살 직후 ‘피의 복수’를 선언했지만 실제 공격에 나서진 않았다. 직접 전면에 나서기보단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 등 ‘저항의 축’을 앞세운 측면 공격을 선호했다. 하지만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내부 강경파의 반발에 부딪혀 이번 공습이 결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확전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공습 이튿날인 2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부 장관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스라엘이 추가 보복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조치(군사적 보복)는 종료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공격으로 이스라엘에 특별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난 4월과 같은 체면치레용 ‘약속 대련’에 가까웠다는 풀이도 나온다.
트럼프 귀환 바라는 네타냐후
일각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전쟁 수위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제기된다. 최근 헤즈볼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 이후 집권 여당인 리쿠르당의 지지율이 24%(이스라엘 여론조사업체 리자르의 지난 19일 여론조사 결과)로 1위로 올라서는 등 국내 정치적인 효과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미 대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남식 교수는 “트럼프의 귀환을 내심 바라고 있는 네타냐후 입장에선 중동 상황이 계속 나쁜 게 유리하다”며 “다만 앞으로 얼마나 고조시킬지 강도를 예측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진·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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