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농장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이원재 기자]
호주에 온 지 한 달, 생활비는 갈수록 줄어들었지만 당장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발견하게 된 게 바로 농장 구인 공고 글. 브리즈번과 퀸즐랜드 주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한인 커뮤니티에는 매일같이 딸기나 블루베리, 토마토나 주키니 호박 등 여러 농장의 구인 글이 올라왔고, 마침 8월과 9월은 딸기 수확에 있어서는 성수기였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성수기인 만큼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직종. 호주에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중에서는 대기 기간도, 면접과 같은 절차도 없어서 진입장벽도 낮았고, 담당자와 연락해 보니 급여는 딸기를 얼마나 많이 수확하냐에 따른 능력제로 못해도 주에 1000~1500달러, 그러니까 일주일에 90만 원에서 135만 원 정도는 벌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장주가 호주 사람이어도 중간 관리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소통에 있어서도 한결 자유롭지 않을까.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했고, 기차역에 도착하니 사전에 연락한 담당자가 마중 나와 있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에 정해진 차를 타고 농장에 도착하면 시작되는 일과. 과연 성수기, 하이시즌답게 딸기 밭에는 딸기가 없는 곳이 없어 그저 쓸어 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단계다 보니 앞서 이곳에 와 딸기를 수확하던 이들과는 속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고,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 동안 일해서 나온 수확량은 167.3kg였다. 여기서는 딸기 1kg당 0.7달러로 (630원) 값을 매기니 117.1달러. 한화 10만 5300원이 되는데, 시급으로 계산하면 한국 최저시급과 비슷한 1만 원도 되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실력이 늘면 호주 최저시급인 24.1달러도 (2만 1690원) 가뿐하게 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속해있는 한국인 인력관리업체가 맡고 있는 다른 딸기 농장으로 배정이 바뀌었는데, 이하 농장 2는 기존에 갔던 농장 1보다는 수확량도 적어 더 이상의 수입을 늘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또한 이러한 배정은 이유도 알지 못하고 사전의 동의도 없이 전날 밤에 내려진 통보였던 것. 그날로 나는 '2주 노티스', 2주 뒤에 나가겠다는 사전 고지와 함께 첫날 이곳에 올 때 냈던 2주 치 방세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했다.
▲ 2024년 8월 28일 농장 1의 순위를 재구성한 도표. 농장에서는 이와 같은 순위표가 매일 게시된다 |
ⓒ 이원재 |
▲ 2024년 8월 28일 농장2의 순위를 재구성한 도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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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사진은 농장에서 매일 올라오는 한국인 노동자의 순위표 중 2024년 8월 28일의 것을 재구성한 도표인데, 이날 농장 1에서는 12시간, 농장 2에서는 10시간 근무가 이루어졌다. 만약 최저시급이 보장된다면 농장 1의 경우 급여가 304.92달러 이상, 농장 2는 254.1달러 이상이지만 실제 최저시급 이상으로 받은 노동자는 단 6명일 뿐 심지어 농장 2의 노동자는 아무도 그만큼 받지 못한다. 그래서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컨트랙터, 업체 관리자들이 원래라면 노동자가 받아야 할 돈의 일부를 떼먹는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니면 농장주가 애초에 불법적으로 운영하고 있거나.
▲ 딸기 수확은 성수기의 경우 하루 10~12시간 정도 노동 시간을 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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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시가 더 있다면, 한 번은 새로 들어온 노동자가 나흘 동안 일해서 하루는 쉬겠다고 하자 관리자는 농담조 섞인 말투도 지금까지 두 달 내내 빠짐없이 일한 노동자도 있다며 그를 폄하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차, 데이오프를 쓰는 데에 있어서도 '모두가 다 일하는데' 하며 조성된 분위기 탓에 눈치를 보는 이들도 있는데, 실제로 두 달 내내 일한 노동자가 있다면 그의 노동 가치를 높게 사야지 기준점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일하는 이유는? 답은 간단하다. 세컨 비자, 호주에 최대 2년 동안 머무를 수 있는 비자를 받기 위해서. 아니면 일의 안정성이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그리고 더 나아가면 한국인 사회에 있으면서 자연스레 생긴 정 때문도 있겠지만, 사실 세컨 비자를 받기 위함이 지배적이다.
비자를 받으려면 특정 업종이나 인구가 적은 시골지역에서 88일, 보통은 3개월 정도 일해야 취득요건이 되는데, 그 기간을 채우기 위해 급여가 적고 근무환경이 안 좋아도 버티는 것이다. 또한 관리자들은 세컨 비자를 취득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이주노동자의 입장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취득하기 위해 진입장벽이 낮은 곳을 선택할 거기 때문에 악순환은 결국 반복될 수밖에 없는 거다.
최근 호주의 한국계 초밥 체인 '스시 베이'에서 한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임금 체불 및 노동력 착취 문제가 드러나 한화 123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비단 '스시 베이'뿐만 아니라 호주에서는 여전히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노동력 착취가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음을. <오마이뉴스>에서도 이미 한차례 호주 한인 농장에 관한 기사(관련 기사 : 이걸 알고도 호주 워킹홀리데이 하시겠습니까?)를 낸 적이 있었는데, 10년 전에 작성된 2014년 기사임에도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 않아 마치 최근 기사를 접하는 것 같았다.
기사에서 언급된 불법셰어하우스는 여전히 성행해 이따금 단속하는 날이면 입주한 노동자들의 모든 짐을 다른 곳으로 옮겨 위장하고, 한인커넥션 또한 여전히 건재하니 말이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도, 낯선 타지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이용당하는 것도 안타까울 따름이며,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노동환경이 더욱이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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