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위안부'의 흔적, 잘 보존해야 하는 이유
[임성용 기자]
▲ 성병관리소 답사에 참가한 남양주, 구리, 경기지역 여성연대 회원들. |
ⓒ 최희신 |
2023년 봄부터 성병관리소 보존 운동에 나선 지 어느새 일 년 반이 지났다. 일 년 반 동안 가장 답답했던 것은 동두천시와 소통이 막힌 것이었다. 동두천 시장과 시의회는 제대로 된 면담조차 응하지 않았다. 시장을 10여 분 만나봤을 뿐이고 시의원들과 정담회가 한 차례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무엇보다도 시민토론회에서 나온 '시민공론장'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두천시 관광휴양과장은 공론장 개설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하고 제안서까지 접수받았지만, 갑자기 담당 과장이 바뀌었다. 공론장을 통해서 성병관리소 철거 여부를 고민할 것처럼 말한 전임 과장은 퇴직을 앞둔 사람이었다.
성병관리소 철거와 보존 논란이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일 년 반이 지나도록 동두천시와 시민들 간에 '논의의 장'은 열린 적이 없다. 보존을 바라는 시민단체에서 아무리 토론을 하자, 민주적 절차를 거치자고 해도 동두천시의 태도는 완강했다. 특히 동두천 시장은 "보존 불가" "철거 집행" 방침에 변함이 없었다. 나아가 시의회 의장의 발언이나 자세를 보면 마치 자신이 시장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침내 지난주 9월 11일, 동두천 시는 성병관리소 철거 실시설계용역 수의계약(마감 9. 30) 현황을 공개했다. 설계용역이 끝나면 곧바로 10월 초에 철거공사 입찰에 들어갈 것이고, 입찰 공고기간 일주일이 지나면 입찰개시일엔 공사업체가 선정될 것이다. 그럴 경우 10월 둘째 주말 전후에 철거공사가 가능해진다.
"성병관리소 보존은 이대로 물 건너갔다."
"우리 힘으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 동두천 시청 앞 천막농성장. 설치한 지 21일 만에 소요산으로 옮기기 위해 철수했다. |
ⓒ 고경환 |
시위 현장이나 농성장에서 지나가는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선뜻 한두 마디로 답변하기 난감한 질문이 있다. 기지촌 여성들이 '미군 상대 매춘부'였다는 단순한 인식을 깨는 것, 다시 말해서 그 여성들은 집창촌 여성들과 다른 '국가에 의한 제도화된 성폭력'의 희생자이며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성병관리소 건물의 내력과 그곳에 강제로 갇힌 여성들의 아픔을 말하면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부딪치는 지점은 기지촌 여성들이 '미군 위안부'라는 인식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속칭 '양갈보' '양공주'라는 이름에는 다름 아닌 '미군 위안부'의 존재가 자리 잡고 있음에도 일반 시민들은 그 역사적 의미를 잘 모른다. 일본군 위안부는 알아도 미군 위안부는 모르고, 오히려 '미군 위안부'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국 정부는 일제하 일본군 성노예 제도를 해방 후에 한국군과 미군에 도입했다. 특히 미군 위안부는 주한미군이 한국에 안정적으로 주둔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운영하고 관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군 위안부의 존재는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군 위안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침묵했다. 더구나 군사정권 시절엔 미국이나 미군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지촌 여성들을 집창촌 여성들과 다른 '미군 위안부'라고 하는가? 그것은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의 성을 착취한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 국가의 전쟁, 폭력, 제도, 정치가 하나 된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문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군국주의 강화로 아시아는 물론 태평양까지 식민지 지배 체제 최일선에 선 일본군은 조선의 수많은 여성들을 비롯한 전 세계 여성들을 위안소에 몰아넣고 일본군 위안부로 이용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한국전쟁 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미국에 종속된 남한 정권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미군 위안부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다. 분단체제, 군사안보체제, 독재정치체제가 이어지면서 국가와 사회는 여성을 수단으로 삼고 성적 폭력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것이 기지촌 여성들의 역사였다. 그것이 곧 미군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들의 삶이었다.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를 동일한 시각으로 볼 때 그 문제의 연결성을 객관으로 다루는 게 핵심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위안부'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군 위안부'라고 하면 당장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의 토론자료집(2015. 10. 15) <국가폭력과 여성인권-미군위안부의 숨겨진 진실>에 보면 그 근거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교수는 발제문에서,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선 피해 여성들의 소송이유와 함께 미군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제도가 일본군 '위안부'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밝혔다.
"한국 정부의 기지촌 정책은 미군 위안부 정책이었다"
"정부가 기지촌 내 미군 위안부 제도의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한국에 일본군 위안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미군 위안부 제도를 만들고 철저히 관리"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외화벌이로 이용했다"
"정부는 기지촌 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사실과 피해를 명확하게 밝히고 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가 상대 미군위안부 손해배상 청구소송 원고인단(피해 여성)의 주장
이 소송에서 원고들은 1957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내 각 지역에 소재한 기지촌에서 '위안부'로 미군 상대 성매매에 이용되었던 여성들을 일컬으며, 피고는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하여 성매매를 조장함으로써 원고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는 국가, 대한민국을 지칭한다.(2022년, 대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원고 승소 판결)
-이상 '기지촌여성인권연대' 토론자료집, 한국의 '위안부': 뒤얽힌 역사의 뿌리와 여성들의 새로운 도전, 이나영. 2015.
이나영 교수는 1945년에서 1959년까지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 제도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살폈다. 글의 목적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미군 '위안부' 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존재하는 '위안부' 제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위안부'라는 이름은 1951년부터 한국 정부의 개입에 따라 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 시작되었다. 1961년에 정부는 윤락행위 방지법을 제정해서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미군부대 2km 내에선 윤락행위 방지법을 면제해주는 지역을 설정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개입해서 위안부들을 관리했다. 정부 개입 근거는 정부의 기록 문서에도 여러 번 나와 있는데, 위안부라는 명칭은 국가의 공식 명칭이었다.
"그때는 위안부라고 했거든요. 미군 상대하는 사람들을 위안부라고 했었어요. 그때 그렇게 국가에서 한 거죠. 따지고 보면 국가에서 지시가 내려오니까. 여기에서도 그렇게 한 거죠.
-2015.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몽키하우스> 편에서, 전직 간호사의 증언.
▲ 낙서로 방치된 성병관리소 |
ⓒ 최희신 |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는 미군과 함께한 한반도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지역적 중요성이 가장 크다. 성병관리소는 '미군의 성병 퇴치'와 '한국 성매매 여성들의 깨끗한 몸'을 관리하기 위한 성병치료시설이나 일반 의료시설이 아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건물이며 잔혹하리만치 짓밟힌 한국 여성사의 아픔을 증거하는 유산이다.
성병관리소는 지어진 지 50년이 된 위험한 건축물일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직면했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성병관리소를 보존하여 당대 시기의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현장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다. 낡고 폐허가 된 성병관리소 건축물 원형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성병관리소 보존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감내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갤러리, 박물관, 전시 공연장 등 역사문화공간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파렴치하게도 부끄러운 과거라고 역사 흔적지우기에 골몰하는 사람들은 성병관리소와 같은 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후대에게도 교훈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가? 관광객을 끌어모아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동두천 시장도, 지역발전대책위 대표단들도 어쩌면 그토록 막무가내인지 이해할 수 없다.
도시를 살리고 경제를 살리려면 소비 중심의 '헛된 개발'을 꿈꾸지 말고 재생산이 가능한 건설적인 고민을 하고 지역에 맞는 투자 유치를 고민해야 할 일인데, 그들에겐 그러한 정책적 사고가 없다.
일례로 경남 사천 시장은 '에어로스페이스 밸리건설'을 위한 용역을 발표했다. 사천을 170만평 규모의 우주항공복합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세계 방산 강국 프랑스 '툴루즈 항공우주밸리'엔 800여 개의 기업체와 12만 명의 종사자가 있다고 한다. 동두천은 주한미군의 주력군이 아직 남아있는 경기북부 대표적인 군사도시이며 대북방어를 담당하는 최북단 요충지이기도 하다. 박형덕 동두천 시장은 모든 것이 안보에 저당잡혔다는 죽는 소리만 하고 정부 탓만 할 게 아니라, 관광이든 경제든 미군부대 반환이든 간에 지역 실정을 기반으로 주어진 조건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동두천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지역은 그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성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관광지는 외지인을 위한 것이고 일부 상인들을 위한 것일뿐 그것으로 지역 경제가 살고 인구가 늘지는 않는다. 성병관리소는 동두천의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온 곳이다. 이 건물에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겪은 경험이 있고 생활이 있고 기억이 있다. 그것을 보존하는 것이 동두천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고 주민들에게 자신의 삶과 연관된 역사의 일부를 지켜내는 일이 된다.
성병관리소가 보존되면 역사 교육 및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케이블카나 모노레일보다 훨씬 효과적인 자원이다.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성병관리소 자리에 반려견 공원을 만든다고 하면 누가 찬성하겠는가? 상가 단지를 짓는다고 하면 입주 상인들이나 좋아하지 동두천 시민들 모두가 찬성하겠는가? 역사 유산으로 서대문형무소는 연 인원 방문객이 십만 명이 넘고, 문화상품으로 황순원 소나기 마을은 찾는 이들이 연간 백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성병관리소를 역사 관광 자원으로 발전시켜 동두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게 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 소요산 입구, 주차장 우측 숲속에 있는 옛 성병관리소 전경 |
ⓒ 최희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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