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국감 최초의 '탈시설 증언'

복건우 2024. 10. 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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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복지위] 8시간 기다림 끝 주어진 9분, 발달장애인 박초현 "시설 아닌 동네서 같이 살자"

[복건우 기자]

 탈시설 발달장애인 박초현씨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해 자신의 시설 거주 경험과 탈시설 이후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
ⓒ 서미화 의원실
"의원님들! 보건복지부 장관님!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다 같이 살아요!"

장애인 거주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탈시설 발달장애인 박초현(26)이 국회와 정부를 향해 외쳤다. '국정감사 최초의 탈시설 증언'이었다. 일곱 살부터 살던 시설을 20년 만에 나와 완전히 자립한 지 넉 달째인 그는 현재 발달장애인 인권단체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8시간 기다림 끝에 주어진 국회의 시간은 9분. 시설에 살던 발달장애인이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시설 바깥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설, 탈시설, 그리고 사람들

"긴장되진 않으세요?"

23일 오후 1시 50분 여의도 국회 본관 6층 증인·참고인 대기실에 막 들어선 초현에게 기자가 물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가 속개되기 1시간 전이었다.

"떨려요. 세상 사람들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이 생각을 바꿔놨으면 좋겠어요. 국정감사에서 바뀌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가 살아도 별 문제없네,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자신의 20년 시설 경험이 담긴 발언문을 흰 종이에 한 구절씩 베껴 쓰고 읽길 반복하던 초현이 긴장이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딱 1년 전 동료 문석영(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에 이어 두 번째로 국정감사 참고인이 된 발달장애인인 그는 "탈시설에 반대하는 의원도 있을 테고 찬성하는 의원도 있을 텐데"라고 걱정하면서도 "그래도 다들 내 이야기로 감동받으면 좋겠어"라며 명랑하게 웃었다. (관련 기사: "행복하고 뿌듯한 일, 없애지 말아달라"... 여야 모두 설득시켰다)
 탈시설 발달장애인 박초현씨(오른쪽)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6층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참고인 대기실에서 조력자인 염찬빈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와 함께 발언문을 읽으며 질의응답을 준비하고 있다.
ⓒ 복건우
1시간 뒤 속개된 국정감사장에 조력자로 함께 들어간 찬빈(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 앞에 앉은 초현은 다른 증인·참고인 사이에서 발언 순서를 기다렸다. 국회에 도착한 지 꼬박 8시간 끝에 초현의 차례가 왔다. 그가 8시간 전부터 말하고 쓰며 담아뒀던 문장들을 하나하나 소리내어 읽었다.

"저는 박초현입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20년간 살다가 올해 초 시설에서 나왔습니다. 지금은 자립해서 살고 있습니다."

초현이 처음 꺼낸 단어는 '시설'이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을 때 그는 집단거주라는 특성상 획일적인 관리와 통제를 받았다고 했다. 삶보다 죽음을 더 가까이 두고 살았다고 했다.

"시설에서는 다른 사람이 짜놓은 대로만 사는 삶이었습니다. 저보다 더 중증인 장애인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시키는 일을 악착같이 해야 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설을 꼭 나오고 싶었던 이유는 죽지 않고 싶어서였습니다."

죽지 않겠다는 결심은 '탈시설'을 꿈꾸게 했다.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다시는 시설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올해까지만 해도 체험홈(자립생활 전 중간 단계)에 살며 자립을 준비하다 지난 6월에야 탈시설한 초현은 '발달장애인은 탈시설할 수 없다'는 인식이 세간의 편견에 불과하다고 했다.

"시설에선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무조건 허락을 맡아야 했는데, 이젠 허락 맡을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이런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계속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립하고 나서 보니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돈이나 자립 기술이 아니라, 자립해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자립을 도와주고 나가서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는 시설에서 그렇게 오래 안 살았을 거예요."

'탈시설'은 '시설'에 남은 삶들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 2021년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탈시설 로드맵(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은 여전히 시설 안에 사람들을 남기고 있었다. 올해까지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2025년부터 본격적인 탈시설 지원사업에 나서는 게 정부 로드맵의 뼈대다.

"시설에 있을 때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초현이 너는 자립할 수 있지만 장애가 심한 언니, 오빠, 동생들은 탈시설하면 갈 곳이 없어'라고 했습니다. 거기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 한 번도 시설에서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데 시설에서 20년 넘게 산 사람들입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시설에 들어갈 땐 들어가고 싶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탈시설할 땐 진짜 나가고 싶은 건지 아닌지 확인하는 건 잘못됐습니다."

읽어가던 발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앞두고 초현은 "의원님들"과 "보건복지부 장관님"을 불렀다.

"의원님들! 보건복지부 장관님! 저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여기 계신 의원님들과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들의 자립을 막지 말고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자립할 수 있을지 고민해 주세요.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다 같이 살아요!"

의원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초현의 증언이 끝나고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자립을 희망하더라도 종사자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정보 미제공이 아주 심각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장애인은 평생을 시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라며 탈시설 시범사업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촉구했다.

복지부는 탈시설 로드맵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시설 장애인의 자립지원 상담 조사는 시설 종사자가 아닌 일반 지역사회서비스 제공 기관에서 실시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는 서 의원의 지적에 "조사 주체가 시설과 관련된 사람이다 보니 잘못된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는 지적인 것 같다. 시정 방안을 만들고 자립지원사업 본사업 전환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라고 답했다.

이어 복지위원장(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다음 질의 순서로 넘어가려 하자, 초현이 마이크를 잡고 위원장에게 외쳤다. "의원님! 저 하고 싶은 말 있는데 해도 될까요?" 8시간이란 긴 기다림도 접지 못한 초현의 마지막 말이 국정감사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시설에서는 저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대했습니다.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를 20년 동안 시설에서 살게 한 사회한테 사과 받고 싶습니다. 지금 시설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2시부터 지금까지 8시간을 넘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이 무시당한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지금까지 듣지 않았던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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