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83화. 동장군
동장군·서리할아버지…혹독한 겨울이 전하는 축복
사토 카즈마는 은둔형 외톨이입니다. 어떤 일로 충격을 받은 후로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만 머물죠. 그런 그가 어느 날 목숨을 잃고, 멀리 판타지 세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여신은 말했습니다. “마왕을 물리쳐야 한다.” 하지만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했던 그는 동료와 함께 여러 의뢰를 맡아 활동하죠. 바로 모험가로 살아가게 된 겁니다.
어느 추운 겨울, 그는 ‘눈의 정령’ 토벌을 맡았죠. 눈 덮인 설원에 살며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봄이 한나절씩 빨리 온다는 존재, 눈의 정령 토벌은 생각보다 쉽게 진행됐어요. 하늘에 떠서 이리저리 피해다니지만, 하나하나는 매우 약했기 때문이죠. 마지막엔 마법을 쓰는 동료가 단번에 날려 버리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눈보라와 함께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납니다. 동료가 말했죠. “너도 들어본 적 있지? 뉴스나 일기예보에서 눈의 정령들의 주인이자 겨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동장군(冬將軍).”
사실 동장군은 한국이나 일본, 중국 같은 나라에서 겨울의 강추위를 의인화해서 부르는 말에 지나지 않아요. 고대인들은 흔히 자연 현상을 의인화해서 표현하곤 했는데, 너무도 추워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추위를 접한 누군가가 ‘장군처럼 강력한 존재’라고 여겨 동장군이라고 부른 것이죠. 무엇보다 동장군은 동아시아의 표현, 카즈마가 있는 판타지 세계에서 등장할 리가 없습니다. 근데 카즈마 앞에 나타난 동장군은 일본의 전통 갑옷을 입고 칼을 든 모습이었죠. 아무리 생각해도 검과 마법,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 세계엔 어울리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이 판타지 세계의 정령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그들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뭔가를 생각하면 그대로 바뀐다는 거죠. 이곳 사람들이 밖에 나가려 하지 않는 추운 겨울에 나다닐 수 있는 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오면서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된 사람들 즉, 일본인뿐입니다. 설정상 다수를 이루는 이(異)세계인, 일본에서 온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가 이렇게 생각했죠. ‘야~너무 추운데, 정말로 동장군이 왔나 봐.’ 그 결과 이곳에 본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몬스터, 동장군이 탄생했습니다. 덕분에 ‘눈의 정령 퇴치’라는 의뢰는 아무도 수행하지 않게 되었고, 겨울을 빨리 끝낼 기회가 사라져 버렸죠. 눈의 정령을 퇴치하다 보면 동장군이 나타나니까요. 한 사람(어쩌면 여러 사람의) 엉뚱한 생각이 겨울을 더욱 길고 혹독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세계 각지에는 동장군 같은 존재가 있어요. 가령, 추운 날씨로 유명한 러시아와 동유럽에는 겨울의 영혼이라 불리는 모로즈코가 있죠. 러시아어로 서리를 뜻하는 모로즈(Moroz)에서 비롯해, 이름 그대로 작은 서리를 뜻합니다. 모로즈코는 보통 나이 든 남성으로 묘사되지만, 겨울의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해요. 보통 서리와 눈으로 장식된 푸른 옷을 입고, 모피로 된 모자와 부츠를 걸쳤다고 하죠. 추운 겨울의 상징인 만큼, 성격은 잔인하고 가혹하며 눈과 얼음을 만드는 능력을 지녔고 마법의 지팡이로 세상을 얼려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존재, 가히 ‘동장군’이라는 말에 어울리죠. 실제로 러시아와 관련하여 유럽에서도 동장군이라는 표현이 탄생합니다.
1812년, 유럽을 지배하던 나폴레옹은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어요. 러시아군은 직접 싸우지 않고 마을과 도시에 불을 지르고 후퇴합니다. 초토 작전을 진행한 것이죠. 결국 나폴레옹은 철수를 결정하지만, 이미 늦은 것이었습니다. 철수하던 당시 겨울이 밀려왔고, 얼어붙은 땅에서 병사들은 죽어갔죠. 당시 러시아에선 이 추위를 ‘제너럴 프로스트(서리 장군)’, 또는 ‘제네럴 윈터(겨울 장군)’라 부르며 겨울이 러시아를 지켰다고 여겼습니다. 그 표현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널리 사용되죠.
이처럼 겨울은 무서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잔인한 것처럼 보이는 모로즈코에게는 또 다른 일면이 있죠. 어느 추운 겨울 한 소녀가 계모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숲을 떠돌던 소녀는 모로즈코를 만났죠. 모로즈코로부터 매서운 냉기가 밀려왔지만, 소녀는 그 상황에서도 공손하고 겸손하게 그를 대했고 소녀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한 모로즈코는 소녀를 따뜻하게 해주고 금과 보석을 선물하죠. 반면, 욕심 많고 무례한 계모가 모로즈코를 만났을 때, 그는 무례하게 굴어 벌을 받았습니다. 무례하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겸손하고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이 같은 모로즈코의 전설은 러시아의 산타인 서리 할아버지, 데드 모로즈(Ded Moroz)에 계승되었습니다. 파란색의 코트에 모피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데드 모로즈는 손녀인 눈소녀, 스네구로치카(Snegurochka)와 함께 새해 축제를 찾아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악한 아이에겐 벌을 내린다고 하죠. 동장군을 만난 카즈마의 동료는 말합니다. “동장군은 자애롭다. 사과하면 분명 용서해 줄 것이다.”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이라는 작품 이야기입니다.
올해는 전보다 훨씬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해요. 여러모로 힘들겠지만, 건강하고 즐겁게 한 해를 마무리하시길 기원합니다. 데드 모로즈, 동장군의 축복이 함께하길.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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