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세계 교회사] “당신에게 예루살렘은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더미션 독자 여러분,
어느덧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4개월간 더위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기록적인 더위를 경험했음에도 이제 곧 찬바람이 불고 눈이 오면 다 잊어버릴까요. 저는 또 다시 여름을 기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참 간사한 것 같습니다. 내 몸에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어쩔 수 없는 욕구 지향적이고 본능적인 삶을 버릴 수가 없나 봅니다. 그래도 어제 서울 하늘은 참 놀라웠습니다. 한국 가을 풍광이 이렇게 예쁘고 찬란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을 도화지 삼아 수많은 구름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은 형국이었습니다. 눈부신 하늘과 풍경에 눈 호강을 실컷 하다가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올해도 3개월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주변에 보면 연초부터 ‘챌린지’를 묵묵히 수행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취미면 취미...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챌린지가 무엇이든 미루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꼭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멈춰 있었다면 다시 일어나 시도해보면 어떨지요.
시절이 하 수상합니다.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갈등이 파도를 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 위에서 행동하면서도 우리 자신을 더 단단히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번 주에도 세계 교회 역사 속에는 다양한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소중한 역사를 써가는 한 주일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후 1174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함께 지배하는 술탄이 된 살라딘은 팔레스타인의 기독교 국가를 동쪽과 남쪽에서 압박했고 향후 10여년에 걸쳐 기독교인 군대와 간헐적으로 전투를 벌였지만 승부는 쉽사리 나지 않았습니다.

1185년에 보두앵 4세가 사망한 직후 예루살렘 왕국에서는 그의 매제이며 기회주의자인 기 드 뤼지냥이 약삭빠르게 왕위를 차지함으로써 지도자들 간의 내부 갈등이 증폭되었습니다. 이때를 틈타 살라딘은 성전(지하드)을 선포하고 팔레스타인의 기독교 국가를 향한 총공세를 펼칩니다. 1187년 6월 3일, 살라딘이 이끄는 무슬림 군은 하틴 전투에서 더위와 갈증으로 무력해진 기독교인 군대를 대파했고 이 기세를 몰아 아크레 베이루트시돈 등 기독교 국가의 주요 도시를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1187년 10월 2일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로 유명하지만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는 메카와 메디나에 이은 3대 성지 중 하나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곳에서 승천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살라딘은 이곳을 방어하던 기독교인과 협상을 벌인 끝에 무혈 입성했습니다. 무슬림 측에서 보자면 무려 88년 만의 감격적인 탈환이었습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프랑스 출신 영주 고프리의 아들 발리앙은 이슬람 군대와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뒤 살라딘에게 묻습니다. “예루살렘은 무엇인가.” 살라딘은 답합니다.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 예루살렘은 이후 이집트 맘루크시대(1250~1517)를 거쳐 1517년 튀르키예의 오스만 세력이 이후 400년간 자신의 영토로 삼습니다.
미국 역사에 등장하는 광란의 세일럼 마녀 고발 사건은 당시 세일럼 사춘기 소녀들이 부두교 가르침에 열중하고 있는 몇 명의 서인도제도 출신 하녀를 마녀라고 고발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청교도 중심의 신자들이 모여 사는 타운 전체에 괴상한 히스테리가 번졌고 대다수가 여성인 150여명이 마녀로 고발됐습니다. 이후 주민들이 처형되면서 최초 마녀 고발을 시작했던 소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취소하고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실토했습니다.
마녀사냥은 세일럼에만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1690년대 초 다른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확산됐는데 마녀로 고발당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중년 여성으로 자녀가 적거나 없는 과부였습니다. 또 대개 사회적 신분이 낮은 데다 가정에 문제가 있으며 다른 죄로 고발을 당했고 이웃이 형편없다고 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재산을 모은 여성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청교도 사회가 요구하는 성 규범에 도전한 결과가 되어 피해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역사가들은 마녀사냥은 뉴잉글랜드 사회가 매우 종교적인 사회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뉴잉글랜드인들은 사탄의 힘을 믿었다고 합니다.
1789년 10월 3일 조지 워싱턴이 11월 26일을 헌법 비준에 대한 국가적 감사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1863년 같은 날, 에이브러햄 링컨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정합니다.
1582년 10월 4일 스페인의 신비주의자이자 개혁적인 카르멜 수도회의 창시자인 아빌라의 테레사 수녀가 사망합니다. 영적 훈련의 모델이었던 그녀는 예수의 환상을 경험하고 자서전을 비롯한 여러 신비주의 서적을 저술했으며 행정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습니다.

에드워즈는 신학자이자 철학자, 설교자, 인디언 원주민들의 선교사입니다. 1703년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1716년 13세의 나이로 예일대에 입학, 1720년 17세 때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합니다. 그는 1722년 8월부터 뉴욕에 있는 장로교회의 목사로 사역을 시작했고 1724~1726년까지 예일대의 개인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에드워즈는 1726년 8월 자신의 외조부인 솔로몬 스토다드가 목회하고 있던 노스햄튼 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해 사역하다가 1729년 외조부의 뒤를 이어 담임목사로 사역합니다. 그는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모든 사람이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구원관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함, 구원예정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 등 전통적 청교도 교리를 강조했습니다.
이후 1750년 성찬 참여 자격 논쟁으로 해임당하기까지 에드워즈는 두 차례에 걸친 영적 부흥과 대각성을 그의 목회지에서 경험하게 되고(코네티컷 강 계곡 부흥, 1차 대각성운동), 부흥과 대각성운동의 웅변자가 됩니다. 그의 지옥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할 정도였습니다. 에드워즈는 1751년 매사추세츠 스톡브리지에서 지역교회 목사 겸 인디언 선교사로 다시 사역을 시작했으며 1758년에는 뉴저지 대학(프린스턴대학 전신) 학장으로 청빙 받아 부임합니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22일 천연두 예방접종의 부작용으로 안타깝게 죽음을 맞습니다.
1744년 10월 5일 가정교사를 비판하고 금지된 부흥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예일대에서 쫓겨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뉴저지의 서스케한나 강을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합니다. 조너선 에드워즈의 ‘브레이너드 전기’는 기독교 선교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윌리엄 캐리는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1536년 10월 6일 당시 법률에 반해 영어로 된 최초의 기계 인쇄 신약성경을 번역하고 출판한 영국의 개혁자 윌리엄 틴데일이 목이 졸려 죽습니다. 그의 시신은 화형에 처해집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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