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불면증 악순환의 고리 끊으려면?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 2024. 10. 1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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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 우울증클리닉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수면장애는 우울증에 흔히 동반되는 증상이다. 우울증 환자의 60~90%가 불면증을 앓는다. 만성 불면증 환자의 20~25%는 주요우울장애를 갖고 있다. 수면장애가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정상인에 비해 4배 정도 높아진다. 우울증이 호전되면 불면증도 같이 좋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우울증에서는 벗어났는데도 불면증이 후유증처럼 남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리면 평소처럼 자도 피로가 회복되지 않는다. 아침에 기상해도 상쾌한 느낌이 없다. 꿈을 많이 꾸고, 꿈이 실제 경험처럼 생생하게 남는다. 가족이 보기엔 잘 잔 것같아 보여도 우울증 환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 잠도 못 자고 밤새 사나운 꿈에 시달렸다”며 괴로워한다. 이런 현상은 서파수면은 줄고 렘수면이 늘어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수면에는 서파수면(slow-wave sleep)과 렘(REM)수면이 있다. 서파수면은 대뇌피질이 활동을 멈추고 꿈을 꾸지 않는 깊은 수면을 일컫는다. 렘수면은 좌우로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얕은 수면이다. 이때 꿈을 꾼다. 서파수면이 부족하면 뇌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고 신경세포 손상이 누적된다.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에너지 이용을 줄이고 잠자기 좋은 상태로 만든다. 밤 1~2시에 멜라토닌이 최고조로 분비되고 새벽 6시경에는 농도가 떨어진다. 이 시간 동안 깊은 수면을 취하게 되고, 심신의 피로도 회복된다. 우울증 환자가 한 밤에도 스마트폰 영상을 계속 보면서 깨어 있으면 멜라토닌의 건강한 작용이 방해 받는다. 새벽녘에 잠들면 아무리 길게 자도 푹 잤다는 느낌을 못 얻는다. 야행성 생활 습관은 우울증의 온상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24시간 주기로 정확히 돌아가지 않는다. 실제로는 이보다 조금 긴 24.18시간이다. 왼쪽, 오른쪽 눈에서 뻣어나온 시신경이 뇌에서 교차하는 지점 바로 위에 위치한 시교차상핵은 태양 빛에 감응해서 매일 아침마다 생체리듬을 24시간으로 재조정한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제때 밥을 먹고, 날이 어두워지면 쉬다가 잠자리에 드는 일상 루틴은 생체시계 활동과 맞물려있다. 건강한 생활리듬이 유지되지 않으면 생체시계가 오작동한다. 밤에는 깨어 있고, 낮에는 햇빛을 적게 쬐면 생체 리듬이 망가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피로는 회복되지 않고 활력이 재충전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햇빛이 망막에 들어오면 뇌는 낮 생활에 적합한 상태로 조절된다. 의식은 또렷해지고, 근육은 긴장하고, 감각도 선명해진다. 코티졸이 분비 되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은 심신의 에너지 원인 포도당을 뇌가 즉각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밤 동안 낮아졌던 코티졸 농도가 오전 6~8시에 치솟는다. 우울증 환자가 기상 후에도 침대에 누워 있으면 활기를 일으키는 코티졸의 혜택을 누리지 못 하니 무기력을 떨쳐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우울증 환자에게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지키고, 잠에서 깨면 괜한 고민에 빠져 있지 말고 곧바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정해두고 실행하라”고 강조한다. 기상하면 곧장 샤워기 아래로 가거나, 침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괜찮고, 침대에 누운 채 윗몸 일으키기를 열 번만 해보는 것도 꽤 좋은 하루의 시작이다. 낮에는 햇빛을 충분히 쬐고 저녁 시간에는 심신의 이완을 도와주는 활동을 한다. 산책, 명상, 요가, 반신욕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면 된다. 규칙적인 운동은 불면증의 개선뿐 아니라 우울증 치료에도 확실하게 되움이 된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우울증에 동반된 불안이나 반추 때문이라면 이런 증상이 조절되어야 불면증도 좋아진다. 불면증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심리적 원인 중 하나는 수면에 대한 불안이다. ‘오늘 밤에 또 못 자면 어쩌나. 밤 동안 시달릴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내일은 또 얼마나 괴로울까!’하고 걱정하면 잠은 더 안 온다. 반대로 수면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는 것도 금물이다. ‘나는 무조건 8시간 자야 한다.’라고 수면 시간에 집착하는 것도 안 좋다. ‘다른 사람은 머리만 바닥에 대면 자는데, 나만 못잔다’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면 곤란하다. 수면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누구나 불면에 시달릴 수 있다. ‘하루 정도는 못 자도 상관없다’라는 담담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잠들기 전에 자신에게 ‘내 영혼아, 오늘 하루 수고했다. 험난한 세상살이 오늘도 잘 이겨냈어’ 하고 위로를 건네는 것도 좋다.

불면증이 심하면 약물 치료를 받는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더라도 불면증이 개선되지 않으면 우울증이 잘 낫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면제를 무턱대고 복용하는 건 좋지 않다. 야간에 불안증이 심해져서 잠까지 안 온다면 안정제가 수면제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 수면 효과가 있는 항우울제를 활용할 수도 있고, 멜라토닌 제재를 병용하는 것도 치료법이다.

불면증이 개선되면 수면을 도와주기 위한 약제는 중단해도 되지만 항우울제는 우울증이 완전히 좋아진 다음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가끔 우울증 환자가 자신은 잠만 잘 자면 우울증도 좋아질 수 있다면서 처방한 항우울제는 놔두고 수면제만 복용하거나, 불면증이 좋아지면 항우울제까지 임의로 끊어버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우울증도, 불면증도 완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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