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법
마르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그가 정보 과부하의 시대에 실질적이고 명료한 정보를 전달하여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기사는 2023년 여름에 출간된 i-D의 372호 ‘The Summer! 이슈’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여기에서 지금 바로 주문할 수 있다.
대대적인 홍보활동과 함께 뉴욕에서 시작하여 도쿄에서 끝나는 순회 쇼. 그 두 번째 챕터인 일본에서의 마르니(Marni) 쇼가 열리기 전날 프란체스코 리소(Francesco Risso)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는 명상을 하는 중이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건축가 겐조 탄게(Kenzō Tange)가 지은 기하학적인 스포츠 경기장인 요요기 국립 체육관(Yoyogi National Gymnasium)의 메인 챔버 안에 있는 새하얀 방에 고요히 앉아 있는 그의 탈색 머리 컬은 갓 손질한 듯 단정했고, 그의 태도는 차분했으며 특유의 화려한 옷차림 대신 종이를 재료로 만든 올 화이트 의상 차림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장면이다. 그가 이번 쇼 준비를 위해 자신의 주술사를 발리에서 비행기로 데려왔다고 누군가 내게 귀띔했다. 그는 지금 괜찮은 것인가?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절제와 리듬의 연습”이라고 설명했다. “상당히 엄격하게 느껴지는 것들과 창의성 사이에서 리듬을 찾는 것이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섬세하고 성찰적이며 생각을 유도하는 엄격함, 그리고 단순히 알고리즘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창의성.” 최근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뇌가 어떻게 정보 과부하에 걸리는지 탐구한 요한 하리(Johann Hari)의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 Why You Can’t Pay Attention)’을 읽은 리소는 일본인의 전형적인 덕목인 정확성, 절제, 집중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그는 첼로 연주를 취미로 배우면서 자신이 선택한 악기를 더 잘하기 위해 얼마나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는 종종 정말 중요한 것, 즉 옷으로부터 시선을 빼앗는 미끼로 사용되는 패션 업계의 넘쳐나는 속임수와 산만함에 점점 더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가혹하고 잔인한 이 감옥 같은 알고리즘과 싸우고 있다.”라고 그는 약간 지친 듯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은 우리가 만드는 것과 진정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 날 선보인 쇼는 그가 2016년 마르니를 위해 세운 청사진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영적이고 수작업으로 칠해진, 업사이클링되고 혼란스러운, 낭만과 쇠락 사이의 일종의 보헤미안적인 사랑 이야기였다. 쇼 전체가 몹시 차분했다. 넓은 쇼장은 온통 선명한 흰색 종이로 뒤덮여 있었고, 그 중심에는 리소와 같은 흰색 종이 파자마를 입은 도쿄 챔버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마르니의 음악 감독인 데브 하인즈(Devonté Hynes)가 사운드트랙을 작곡했으며, 오케스트라가 드라마틱한 드럼으로 쇼의 시작을 알렸다. 그 후 거리에서 캐스팅된 모델들이 리소가 가진 디자인 자율권을 여실히 보여주는 컬렉션을 입고 등장했다: 빨강, 노랑, 흰색, 검정 등 네 가지 주요 색상의 물방울무늬와 구근 실루엣이 병치된 그래픽적이고 노골적인 의상들이었다. 깔끔하고 직접적이며 포괄적이다. 또한 아름다운 크롬비 코트(Crombie coats)부터 깔끔한 시프트 드레스, 단추가 달린 셔츠부터 여성스러운 펌프스, LBD, 스카프, 투피스 등 진지한 옷들로 구성된 클래식한 옷장이 한층 더 어른스러워진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또한 패딩(그리고 젊은 중국 디자이너 딩윈 장(Ding Yung Zhang)과의 협업)을 통해 비율을 과장하고 풍성하고 통통한 모양으로 부풀린 후 모드풍의 날씬한 드레스 및 테일러링과 함께 선보이기도 했다.
최종 결과물은 마치 만화에서 어린아이가 상상한 어른 옷처럼 느껴졌다. 이 옷들은 하얀 종이 세트를 배경으로 2000명에 가까운 관객(다수이 좌석이 학생과 일반인에게 제공되었다) 앞에서 페이지 위의 만화, 호쿠사이(Hokusai)의 평면성, 심지어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의 슈퍼플랫(Superflat) 예술 운동과 같은 극명함과 특이성을 보였다.
그렇다면 왜 일본이었을까? 그가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와 격리된 이곳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와 소통하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예술, 건축, 문화의 규율과 깔끔한 엄격함이 자신의 새로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 1990년대 후반 마르니의 첫 번째 글로벌 전초기지가 있던 곳으로, 여전히 전체 매출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브랜드와 유니클로(Uniqlo)의 성공적인 협업은 브랜드의 미적 메시지를 더 많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리소가 도쿄에서 선보인 컬렉션은 일종의 리셋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으며, 기교는 줄이고 실속을 추구해야 한다는 패션계의 커져가는 목소리와 공명한다. 좀 더 그래픽적인 감성을 선보이며 스타일링으로 참여한 i-D의 패션 디렉터 카를로스 나자리오(Carlos Nazario)와 처음으로 협업한 마르니의 이전 뉴욕 쇼가 리소에게 시작점이 되었다. 리소는 몇 달 후 “현대인은 정보 과부하를 겪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 더 절제되거나 명확해질 수 있게끔 영향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자평했다. 책으로 가득 찬 밀라노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지금, 그의 책상 위에는 골동품 올리베티(Olivetti) 타자기가 놓여 있고 주변에는 세속적인 관심거리들이 흩어져 있어 도쿄 사무실의 결벽증적인 미니멀리즘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벽돌 벽에는 그의 컬렉션에 수작업으로 그려진 브랜딩처럼 ‘마르니'라는 낙서가 적혀 있다. “지금 세상은 모든 것이 너무 분절되어 있고 잘게 쪼개진 느낌이라 명확함이 더욱 절실한 것 같다.”
디자이너는 종종 고정되지 않은 진자처럼 흔들리는 사사로운 변덕에 따라 움직이지만, 리소의 태도를 보면 이러한 변화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사샤 레인(Sasha Lane), 크리스탈메스(Crystallmess), 팔로마 엘세서(Paloma Elsesser), 이브 투머(Yves Tumor), 딤 스펜서(Deem Spencer), 셀라(Szela), 미키 블랑코(Mykki Blanco), 미미 시우(Mimi Xiu), 모세스 섬니(Moses Sumney) 등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와의 협업을 통해 마르니 컬렉션을 선보이는 새로운 방식을 개척하면서 변화의 씨앗이 심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마르니는 이들이 자신의 집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동안 마르니 제품을 입은 모습을 촬영하도록 요청했고, 갤러리, 공연장, 패션쇼가 잠시 멈춘 시기에 작품 활동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했다.
이 작업은 텔파(Telfar)와의 작업으로 잘 알려진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바박 래드보이(Babak Radboy)의 도움을 받아 리소가 “마르니 선언문(the Marnifesto)”이라고 이름 붙인 더 넓은 프로젝트로 발전했으며, 몇 년 동안 마르니가 선보였던 기발하고 독특한 옷에 개성과 현실감을 부여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세상이 패션 하우스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던 시기에 리소의 손으로 직접 그린 날 것의 디자인(거친 가장자리 마감, 노출된 솔기, 빈티지 원단, 유치원생이 연상되는 수작업)은 급진적인 개인주의의 유쾌한 표현으로 재맥락화되어 현실에서 의미를 얻게 되었다.
리소는 “우리가 단결력을 되찾아 회복할 수 있는 순간이었고, 단결을 통해 현실의 장벽들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라고 회상한다. “당시에는 함께 뭉쳐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팬데믹 이후에도 커뮤니티의 정신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 시점에서 ‘커뮤니티’라는 단어가 마케팅 용어로 바뀌었다고 농담하지만, 그는 팔로마 엘세서, 에리카 바두(Erykah Badu)와의 캡슐 콜라보레이션을 비롯해 유니클로, 칼하트 WIP(Carhartt WIP), 심지어 벨기에 인테리어 브랜드인 세락스(Serax)와의 파격적인 파트너십 캠페인 등 마르니에서 여러 독보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리소의 작업 프로세스는 종종 친구들과 마르니 스튜디오에서 그룹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직원 간의 피라미드식 또는 자기 중심적 역학 관계를 해소해준다. 리소는 “커뮤니티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살아있는 상호작용이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내가 하는 일은 다른 방식으로는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일은 공동 작업이고 우리는 함께 일하며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큰 기쁨을 얻는다. 우리의 일은 단순히 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가져와서 포토샵(Photoshop)으로 옷에 입히는 그런 작업 방식이 아니다. 함께 작업하고 서로를 경험하는 길고 긴 대화의 일부다. 그것은 마치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과 같다.”
리소의 성장 배경은 그의 접근 방식을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버지가 가족을 바다로 데리고 간 짧은 기간을 틈타 새해 전날 사르데냐(Sardinia) 해안의 한 요트에서 태어난 리소는 폰 트랩(Von Trapp) 가문의 부모와 조부모가 다른 여러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나 기이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가족은 모두 제노바(Genoa)에 있는 아버지 소유의 건물에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리소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이 끊임없이 ‘관찰 모드’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모두 함께 살던 시기의 우리는 말 그대로 미친 공동체 같았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목소리가 큰 몇몇 가족원들 때문에 항상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이처럼 그의 성장 배경이 그가 자유분방한 글로벌 예술가 집단의 리더로 성장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친척의 옷을 가위로 자르는 사고를 치며 보낸 어린 시절은 패션계에서 경력을 쌓게 될 것을 암시하는 확실한 신호탄이었다. 열여섯 살에 피렌체로 이주한 프란체스코는 폴리모다(Polimoda)에 입학한 뒤 몇 년 후 뉴욕의 FIT로 편입했고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에서 스타 메이커로 유명한 루이스 윌슨(Louise Wilson) 교수의 지도 아래 석사 과정을 마쳤다. “나는 뉴욕에서 오래 살았고 그곳에서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이상한 미국식 억양을 가지고 있다. 교수님은 그걸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그는 회상한다. 곧 블루마린(Blumarine)에 스카우트되어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프라다(Prada)에 입사하여 브랜드 사상 가장 창의적인 10년을 팀원으로 함께 보낸 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2016년 마르니의 지휘자로 올라섰다.
루이스, 프라다(Prada) 부인, 안나 몰리나리(Anna Molinari) 등 그가 멘토로 삼은 강인한 여성들은 디자인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에 색을 입혔다. “루이스는 어떤 사물이나 영감에 대한 창의력을 오랜 시간 동안 개발해 그 대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다방면의 호기심을 충분히 키우기 전까지는 패션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라고 그는 회상한다. 그는 또 “프라다 여사는 세상과 문화, 인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있었으며, 우리는 종종 몇 달 동안 아이디어를 놓고 대화를 나누다가 일주일 만에 컬렉션을 만들곤 했다.”라며 놀라워했다. 그는 프라다 여사에게서 머천다이징의 중요성도 배웠다. “그는 아이디어 표현의 중요성, 그리고 창의성과 제품 사이에 균형을 강조했으며, 부티크에만 옷을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 옷을 전시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이 상대적으로 부수적인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모피 슬라이더, 아코디언 같은 가죽 가방, 줄무늬 모헤어 스웨터 마저 쓸어담기 위해 쇼핑객들이 마르니 매장으로 몰려드는 이유다. 처음 입사했을 때 그는 “프라다의 레시피”를 따르지 않는 대신 날것과 업사이클링을 강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이미지에 맞게 직접 만든 괴상한 DIY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여기에는 얼굴 그림, 부적 모양의 주얼리, 자유를 상징하는 스파이크 헤어, 빈티지 모피 모자, 패치워크 셔츠 등이 포함된다. 사실, 1994년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Consuelo Castiglioni)가 가족의 모피 사업에서 분사하여 설립한 뒤 대담한 프린트, 절충주의적인 색상, 예술계 인사들이 사랑하는 두툼한 액세서리로 빠르게 알려진 마르니에 그의 리브랜딩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카스틸리오니는 2013년 이탈리아 사업가 렌조 로쏘(Renzo Rosso)가 대주주 지분을 인수한 후 회사를 떠났다. 마르니는 현재 디젤(Diesel),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빅터 앤 롤프(Viktor & Rolf),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질 샌더(Jill Sander)까지 포함된 미니 패션 대기업인 온리 더 브레이브(Only The Brave)에 소속되어 있다. 다행히 로쏘는 리소가 자신의 비전을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허락했다. 그의 쇼 중 일부는 모델이 관객이 서 있는 어두운 창고를 지나갈 때 의도적으로 옷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2021년에는 모델뿐만 아니라 전체 관객에게 옷을 입히는 쇼를 열었는데, 아틀리에에서 모든 게스트에게 아카이브에서 직접 페인팅한 데드스탁 옷을 입혔다.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수작업으로 페인팅한 의상을 가리키며 ‘이걸 팔 거라고?’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마르니의 수공예 기술력 수준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우린 실제로 핸드 페인팅을 제작 공정의 일부로 구조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모든 작품에는 수작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단색 물방울 무늬와 직선으로 이루어진 마르니의 화려한 새 방향성을 가리키며 대체 감성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감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날렵해 보이는 하이웨이스트 팬츠가 사실은 니트이고, 클래식한 코트에는 반짝이는 옵 아트(Op Art) 체크가 더해졌으며, 액세서리와 옷이 조심스럽게 미스매치되어 약간은 엉뚱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리소는 이번 컬렉션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핸드 페인팅이 대체 어디로 갔는지 물어봐서 재미있었다.”라며 “핸드 페인팅이 마르니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핸드 페인팅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모든 점, 체크, 직선이 훨씬 더 섬세한 방식으로 핸드 페인팅 처리 되어 있다.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그는 방금까지 읽고 있었던 책, ‘도둑맞은 집중력'으로 돌아간다. 리소는 주의력이 결핍된 채 모든 것을 빠르게 스크롤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옷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원한다. 마르니에는 아주 작은 디테일 안에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여전히 많다.
Photography Fumiko Imano
Fashion director Carlos Nazario
Hair Holli Smith at Art Partner
Make-up Yadim at Art Partner
Fashion assistance Loreto Mancini
Hair assistance Sayaka Otama and Cindy Kamtche
Make-up assistance Paloma Romo and Joseph Rios
Casting Midland and Bobbie Tanabe (H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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