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바지 '그녀'가 몰고 온 열풍.. 강남이 들썩였다 [도시연구자 경신원의 '집' 이야기]
[경신원 기자]
1980년 임권택 감독은 사회고발 블랙 코미디 영화 <복부인>을 제작해 광복절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주연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한혜숙이 맡았고, 서울에서만 1만 5761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생활비 문제로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주인공(한 여사)이 운 좋게 아파트 입주 청약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500만원이라는 큰돈을 벌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복부인이 된 한 여사는 토지사기단과 함께 부동산 투기에 가담해 거액의 재산을 모으게 되지만, 결국 사기단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경찰에 연행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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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권택 감독의 영화, <복부인> 포스터 |
| ⓒ 임권택 |
영화 <복부인>의 결말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복부인은 강남의 투기 현장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녔다. 종종 복부인의 상징처럼 표현되는 '빨간 바지'는 연희동의 '그녀',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를 빗대는 표현이었다. 이들은 '어떤' 지역이 '언제' 개발되지 미리 아는 듯했다. 복부인들이 휩쓸고 간 지역은 어김없이 땅값이 올랐고 그녀들은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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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3-1979 강남지역의 지가상승 1963-1979 강남지역의 지가상승 |
| ⓒ 강남구지(1993) |
정기수(1990)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50가구 이상의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자는 공개 분양해야 한다"는 주택건설촉진법을 무시하고 정부 관리,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 고위급 인사들에게 주변 집값의 50% 수준으로 특혜 분양을 했다. 현대아파트는 분양과 동시에 5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당시 분양가가 1평당 (3.3 m2) 44만원 정도였다고 하니, 30평 이상의 아파트 한 채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이 프리미엄으로 붙은 것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는 4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아파트 값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1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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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종합버스터미널 임시 준공 1976년 9월 1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완공되어 구자춘 시장과 운수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장되었다. 4개월 만에 급조된 고속버스터미널은 5만평의 허허벌판에 세 개의 승차장과 300평 규모의 공동정비고가 전부였다. |
| ⓒ 서울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
1975년 당시 강남구의 면적은 상당히 커서 오늘날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모두 포함했다. 이듬해인 1976년 반포동, 압구정동, 청담동, 도곡동이 '아파트 지구'로 지정됐다. 1970년대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게 되었고, 집다운 집에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팽배했다. 주택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주택건설 10개년 계획' (1972-1981), '국민주택건설촉진법'(1973) 등이 제정되었고 집합주택 단지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순자 아주머니
반포주공아파트는 1973년 대한주택공사가 건설한 최초의 주공아파트 단지였다. 총 99개 동으로 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평형도 22평부터 62평까지 매우 다양했다. 국내 최초로 복층 설계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난방시설도 설치한 최신형 아파트였다. 분양 당시 반포주공아파트의 이름은 서울의 남쪽에 있는 아파트라는 의미로 '남서울 아파트'였다. 분양 광고에는 서울의 사대문 안인 남대문과 서울시청에서 멀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머니의 친구분인 순자 아주머니도 반포주공아파트 분양광고를 보고 찾아 갔다가 동창들 가운데 가장 먼저 강남으로 이주하셨다. 오랫동안 불편한 단독주택에만 살다가 처음 본 아파트의 현대식 시설과 깔끔한 단지 환경에 반해 22평형을 400만 원가량에 계약하셨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가장 작은 평형이었지만, 70대 중반이 되어서도 계약하던 날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았던 순자 아주머니는 다른 동창들보다 빨리 집을 장만해 부러움과 시샘을 한 몸에 받으셨다. 22평형 아파트를 사고 난 이후에도 억척같이 돈을 모아 2년 만에 반포주공아파트 32평을 1000만원에 매입해 이사하셨다. 그리고 3년 뒤, 그 아파트를 1980년 3000만원에 매매하고 대치동에 미분양된 청실 아파트 43평을 3600만원에 매입해 전세를 준 뒤 특파원으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3년 만에 3배가 오른 것이다. 반포주공아파트는 대학교수들이 많이 살아서 교수 아파트로 불리던 고급 아파트였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해를 거듭할수록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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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
| ⓒ 권우성 |
밀레니얼을 설득할 근거
1990년대 초반 사람들은 강남의 낡은 아파트를 버리고 너도 나도 꿈의 신도시, 특히 제2의 강남인 분당으로 향했다. 1년 이상 앞당겨져 완성된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에 따라 우리나라 총 주택(1989년 기준 645만 호)의 33%가 지어졌다. 연평균 10% 이상의 높은 인구성장률을 기록하던 서울의 인구가 1990년에서 1995년 사이에 -3.6%로 처음으로 감소했다. 주택가격도 1991년을 기점으로 처음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주택 가격 상승률이 -2.1%, 서울은 -0.5%를 기록했다. 주택보급률도 1991년 74.2%에서 1997년 92%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비단 주택공급의 확대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신도시에 대한 열망은 강남을 떠날 만큼 강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규제뿐만 아니라 '전국의 돈을 끌어들이는(고재학, 2018)' 강남이 갖고 있는 지역적 가치를 비강남권이, 비수도권 지역이 갖도록 하는 것이다. '제 2, 제3의 강남 만들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영끌까지 해가며 강남진입을 서두르는 X세대와 밀레니얼들에게 굳이 강남에 살지 않아도 될 이유가, 그들을 설득할 타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고재학, '강남 아파트'라는 괴물 <한국일보> 2018. 7. 2.
정기수, 부의 '명문' 압구정동, 그늘 없는 아파트촌 <시사저널> 1990.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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