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권 추격하는 중국...미국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장면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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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 경제권의 연구개발비 총지출 현황 |
| ⓒ 경제협력개발기구 |
눈에 띄는 숫자는 중국이었다.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중국의 연구개발 지출은 미국을 따라잡았고, 일부 계산에서는 넘어선 것으로 평가됐다. 물론 시장환율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미국은 여전히 앞서 있다. OECD도 2024년 중국의 연구개발비가 시장환율 기준으로는 미국의 약 절반 수준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그 단서가 변화의 의미를 지우지는 못한다. 중국의 연구개발비는 2004년 시장환율 기준으로 미국의 8% 수준이었지만, 2014년 44%, 2024년에는 50% 수준까지 올라왔다. 구매력 기준으로는 이미 미국과 같은 1조 달러 체급에 들어섰다.
중국의 추격은 이미 진행 중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다. 중국을 막겠다는 정치가 연구비를 줄이고, 과학기관을 압박하고, 국제 연구협력을 의심하면서 미국 과학의 기반을 스스로 흔들고 있다.
미국 과학의 힘은 시장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 반도체, 위성항법장치, 코로나19 당시의 mRNA 백신 같은 성과는 천재 기업가 몇 명의 작품이 아니었다. 연방정부의 장기 연구비, 대학 연구실, 국립 연구기관, 군사와 민간 연구의 연결, 외국인 연구자, 실패를 허용하는 학문 문화가 함께 만든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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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위치한 국립과학재단(NSF) 본부. 미 의회와 대통령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NSF 정책을 수립하는 국가과학위원회(NSB) 위원들이 예산 삭감에 반대한 후 전원 해임 통보를 받았다. |
| ⓒ AP 연합뉴스 |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비가 멈추면 실험도 멈춘다. 실험이 멈추면 박사과정 학생과 박사후연구원, 젊은 연구자의 경력이 끊긴다. 한 번 끊긴 연구 경력은 예산이 다시 늘어난다고 곧바로 복구되지 않는다.
과학은 공장을 잠시 세웠다가 다시 돌리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연구실에는 장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에 붙은 기술, 실패의 기억, 동료 사이의 신뢰, 오랜 실험에서 쌓인 판단이 함께 있다. 문서로 완전히 옮길 수 없는 지식이 연구실 안에 산다.
군사기술, 감시기술, 우주개발, 반도체, 인공지능은 정치권력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된다. 국경을 지키는 힘, 적을 감시하는 능력, 산업 성과의 숫자, 국가 위신의 상징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은 권력의 명령 체계와 쉽게 결합한다.
기초과학은 다르다. 당장 쓸모를 증명하지 못할 때가 많고, 실패를 거쳐야 하며, 긴 시간을 요구한다. 연구비를 넣는다고 다음 선거 전에 성과가 나오지도 않고, 권력자가 원하는 결론을 미리 내놓지도 않는다.
그래서 극우 정치는 기초과학을 불편해한다. 극우의 문법은 충성, 통제, 즉시성, 적과 아군의 구분으로 움직인다. 과학은 그 반대편에서 작동한다. 의심하고, 검증하고, 반박하며, 국경을 넘어 동료의 평가를 받는 방식이다.
과학자는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가 아니다. 좋은 연구자는 권력자의 말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이 점에서 과학의 자율성은 권력을 불편하게 만든다.
반지성적 정치는 이 불편함을 낭비의 언어로 바꾼다. 연구자는 국민 세금으로 먹고사는 특권층으로 몰리고, 대학은 이념의 온상으로 의심받으며, 국제 공동연구는 안보 위험으로 축소된다. 과학의 자유는 어느새 불충의 언어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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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국빈 방문 도착 행사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의 찰스 3세 국왕이 함께 서 있다. |
| ⓒ AP 연합뉴스 |
관세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수출 통제는 상대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새로운 지식이 태어나지는 않는다. 지식은 연구실에서 나오고, 연구실은 돈과 사람, 자유와 시간, 실패를 견디는 제도 위에서 움직인다.
트럼프식 정치는 이 순환을 거꾸로 흔든다. 중국을 견제한다고 말하면서 연구비를 줄이고, 과학기관을 압박하고, 외국인 연구자와 국제 협력을 의심한다. 상대를 막기 위해 자기 무기를 먼저 버리는 꼴이다.
패권은 전쟁터에서만 무너지지 않는다. 군함이 줄고, 동맹이 흔들리고, 달러의 힘이 약해질 때만 패권이 늙는 것이 아니다. 연구실이 비고, 대학원이 위축되고, 젊은 과학자가 떠날 때 패권은 이미 안에서부터 늙기 시작한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깥의 중국만이 아니다. 더 위험한 장면은 미국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상위 대학, 연구기관, 기업, 자본, 인재의 축적을 가진 나라다. 그런데 트럼프의 미국은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잃어버리고 있다.
미국을 앞서게 만든 것은 관세가 아니었다. 국경 장벽도 아니었고, 적을 향한 분노도 아니었다. 긴 시간의 기초연구, 열린 대학, 세계 인재의 유입, 실패를 견디는 연구비, 권력보다 증거를 앞세운 과학 문화였다.
중국의 연구개발비보다 미국이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자신을 강하게 만든 조건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권은 군함보다 연구실에서 먼저 늙는다. 트럼프의 미국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국의 속도가 아니라, 과학을 믿지 않게 된 자기 자신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https://www.oecd.org/en/data/insights/statistical-releases/2026/03/oecd-overall-rd-growth-stable-government-rd-budgets-decline-and-reorient-towards-defence.html?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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