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도 질색하던 아이의 놀라운 변화, 지렁이를 드네요
지금, 여기 서울 한복판에서 '공동육아'라는 이름으로, 서로 돌봄하는 어린이집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참나무 어린이집입니다. 참나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운 부모들이 공동육아의 살이와 공동체의 복원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이 글은 참나무어린이집의 부모 조합원, 무지개가 쓴 글입니다. 첫째아이는 참나무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다니며, 지금은 둘째아이를 참나무에서 키우고 있는 4세방 엄마 무지개(김규리)입니다. <기자말>
[김규리]
"학원에는 안 다녀요."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첫째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이 아닌 마을방과후에 갑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4살부터 7살까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는 아직 한 번도 학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직장동료나 친구들이 "아이는 오후에 학원 뭐 다녀?" "운동이나 공부 뭐 시켜?"하고 물을 때면 난감합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마을방과후'가 무엇인지, 왜 우리 가족과 아이들에게 좋은 곳인지 잘 설명하려 애써보지만, 늘 쉽지 않습니다.
학원 대신 가는 곳... 내 아이가 진짜 배웠으면 하는 것들
저희 집 두 아이는 부모가 일하는 동안 공부나 운동을 배우러 학원에 가지 않는 대신 '터전'에서 생활합니다.
'터전'은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초등 마을방과후를 부르는 말입니다. 8살 첫째 아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마을방과후에, 4살 둘째 아이도 형을 따라 3살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 마을방과후로 가는 첫째 아이와 친구들 초등학교 1학년의 3월이 지나면, 학교가 끝난 후에 아이들끼리 손을 잡고 마을방과후로 갑니다. |
ⓒ 도토리마을방과후 |
"공동육아의 어린이 상은 '독립적이면서 관계적인 어린이'라 할 수 있다. 독립적이면서 관계적이라는 것은 사회 속에서 개인이 존중받으며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과 사회가 만날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이 '매일'의 삶 속에 담겨야 한다." - <공동육아, 더불어 삶>,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2020
"엄마, 나 할 수 있어."
▲ 마당 모래놀이 어린이집에 마당이 있어 모래놀이와 물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아방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이장소입니다. |
ⓒ 참나무어린이집 |
혼자서 옷을 입고 벗는 법, 벗은 옷을 접어 정리하는 법, 낮잠 이불을 펴고 개는 법, 스스로 밥을 먹는 법, 다 먹은 밥상을 정리하는 법, 제철 채소와 새로운 반찬을 골고루 맛보는 법, 놀고 난 장난감을 정리하는 법 등 터전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해나가는 것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선생님들은 아이가 해낼 수 있도록 끝까지 알려주고 기회를 주며, 힘들 때는 친구나 선생님에게 도와달라 말할 수 있는 법도 알려줍니다. 오히려 집에서 급한 마음에 엄마인 제가 먼저 다 해줘버리는 것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혼자 하는 힘이 생긴 아이들은 동생들을 돕는 역할도 맡습니다. 나들이 나갈 때면 6세, 7세 아이들이 동생들과 손을 잡고 나섭니다. 작은 아이가 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럽습니다.
첫째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 요일을 정해 동생들 점심 밥상을 닦고 숟가락을 놓아주는 활동을 하는 걸 보았습니다.
집에서는 볼 수 없던, 아이의 의젓한 모습에 감격하며 '이런 게 생활문화교육이구나. 아이가 진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 짝손 잡기 나들이를 갈 때마다 아이들은 짝손을 합니다. 자기보다 어린 연령의 동생 손을 잡아주는 것이 짝손의 룰입니다. |
ⓒ 참나무어린이집 |
어떤 해에는 모내기를 하고 벼에서 수확한 쌀로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몇 알 안되는 쌀알이었지만 아이들은 밥상에 음식이 오기까지 자연의 순환과 기다림을 배우고 느꼈을 것입니다.
아이는 절기마다 농사 때 했던 일들을 집에 와 얘기해 주었습니다. 나무젓가락으로 배추벌레를 잡았다고도 하고, 수확한 고추를 맛보았는데 "많이는 안 맵고 쪼끔 매웠다"라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죠.
▲ 자. 이제 감자를 캐볼까 꼬마 농부들이 감자를 수확하기에 앞서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
ⓒ 참나무어린이집 |
김장을 마치고 나면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나누어 먹습니다. 어린이집에 와서 처음 김장을 해보는 부모들이 태반입니다.
작년에는 장 담그기도 배웠습니다. 아이들도 하는데 부모인 우리가 몰라서 되겠냐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도전했습니다. 태어나 된장, 간장을 만들어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지만, 이제는 '직접 장도 담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 장가르기 엄마아빠들과 2년째 장담그기 소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햇볕 좋은 봄날, 장을 가르는 날 입니다. |
ⓒ 참나무어린이집 |
동네 곳곳에 놀이터도 많습니다. 가끔은 동네 책방에도 놀러 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집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집엔 어떤 꽃과 나무가 자라는지 구경도 합니다. 월드컵공원이나 난지천공원 등으로 긴 나들이를 가기도 합니다.
▲ 새터산에서 나무집을 짓는 아이들과 놀이를 상의하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소중한 나들이 장소가 되어주는 새터산입니다. |
ⓒ 참나무어린이집 |
▲ 겨울 나들이 눈이 온 다음 날은 눈놀이를 갑니다. 새터산에서 쌀포대로 눈썰매도 타 봅니다. |
ⓒ 참나무어린이집 |
"이건 형아들이 만든 나무집이야."
"이 나무에는 선생님이 봐주면 올라가 볼 수도 있어."
"새터산에는 소나무가 많이 있어."
"엄마, 이건 까마중 열매야. 그리고 이건 회양목이야. 우리는 부엉이 열매라고 불러. 팔에 찌르면 조금 따가운데 진짜 그런지 해볼래?"
등하원하며 지나는 홍제천변이나 동네 골목에 핀 꽃들을 보면 엄마도 얼른 보라며 아이들이 저를 부릅니다. 아이들이 길가의 꽃과 나무 이름을 알려준 덕분에 저도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이로움을 마음껏 표현하는 건 아이들만이 가진 큰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그 재능을 아낌없이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어린이집 떠나기 싫어하는 둘째 아이
오후 6시, 둘째 아이를 데리러 가면 열심히 놀고 있던 아이는 엄마를 보고 놀라며 일단 모른체합니다. 제가 "집에 가자~" 하면 기다렸다는 듯 아이는 "엄마, 나 아직 덜 놀았어. 10분만 더 놀고 갈래"를 외칩니다.
▲ 엄마아빠의 아마활동(일일교사활동) 1년에 1-2회정도 엄마아빠가 아마활동이라는 일일교사역할로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냅니다. 다른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되고, 내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사진은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같이 놀고 있는 제 옆지기 보노의 모습입니다. |
ⓒ 참나무어린이집 |
아이들은 공동체 생활 안에서 따로 또 같이 노는 방법을 자연스레 경험합니다. 특히 같이 재밌게 놀기 위해서는 다른 친구의 말도 귀담아듣고, 놀잇감을 함께 나눠써야 하며,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걸 익힙니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돕는 교사가 함께 하는 놀이 안에서, 아이들은 나의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도 합니다. "나는 00가 불편해", "사과해 줘"와 같이 부정적인 마음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미안해", "괜찮아", "고마워", "같이 놀자" 등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황을 풀어나가면서 의사소통 기술과 사회성도 기릅니다.
교사는 놀이를 제안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이들의 주도적인 놀이를 지켜봐 주고 필요에 따라 개입하여 확장해 줍니다. 혼자만의 놀이에 몰두한 아이의 영역과 흐름을 지켜주려 애쓰시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 하는 새로운 놀이가 어려워 피하기도 하지만, 또 어깨너머로 친구나 언니, 오빠들을 관찰하고 익히며 차근차근 도전하고 시도합니다.
▲ 직접 만든 책 전시회 아이들이 매일 같이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며, 책을 만드는 놀이에 흠뻑 빠져있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사가 아이들에게 '너희가 만든 책으로 전시회를 열자'고 제안했고 아이들과 준비한 후에 깜짝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아이들의 주도와 흐름으로 이어지는 자유놀이의 예입니다. |
ⓒ 참나무어린이집 |
얼마 전, 7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대화를 하던 중 지금 자기 아이가 태권도, 수영, 미술 등 종일 '노는 학원'만 다닌다며 영어나 수학 학원 중 뭐부터 보낼지 고민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차마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게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영유아기에 마음껏 뛰어놀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공동체 안에서 질서와 규칙을 익히고,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면 좋겠습니다.
혼자 열심히 하면 되는 공부는 학령기에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성, 공감 능력, 소통 능력은 아이가 자라고 나면 훨씬 배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함께하는 부모들, 교사들과 서로 많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안전하고 안심되는 관계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저희 집 아이들을 가까이 지켜봐 주면서 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줍니다.
저 역시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보고 대합니다. 아이들도 공동체 안에서 매일 만나는 저, 무지개를 믿고 편안하게 대해줍니다.
공동체가 사라져가는 고립의 시대에서 저희 가족은 공동체 안에서 부대끼며 삽니다. 저는 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하는 아이들이, 부모들이, 교사들이 서로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해서 더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더 많은 아이들, 교사들, 부모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놀면서 자라고 살면서 배운다'는 걸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부모들이 불안해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부디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와글와글 공동육아' 연재 읽기]
①아버지와 다르게 살려고 여길 선택했습니다 https://omn.kr/2aaoc
②아이들 안 반기는 세상, 근데 여기는 좀 다르네요 https://omn.kr/2abms
③"우리 망했나 봐"... 손잡고 울먹이던 부부의 변화 https://omn.kr/2abng
④졸업식날 아이보다 부모들이 펑펑 우는 곳, 여깁니다 https://omn.kr/2abcx
⑤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아닌 '나'로 육아하는 곳 https://omn.kr/2ac5p
덧붙이는 글 | 첫째 아이가 졸업하고 둘째 아이가 다니고 있는 참나무어린이집이 오는 10월 19일(토)에 2025년 신입생 등원설명회가 열립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문의와 참여를 기다립니다. http://chamnamo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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