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만드는 게 최고였다! FRP를 사용한 자동차들

조회 4722024. 4. 3.

FRP 자동차의 등장

FRP는 '섬유 강화 플라스틱(Fiber-Reinforced Plastic)'이다. 플라스틱의 일종이라고 보면 간단한데, 그 무게에 비해 강도가 높고 부식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자동차에도 사용되었던 적이 있었고, 특히 가볍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카에 오랫동안 사용됐다. 단점은 비싸다는 것, 그리고 충격을 받으면 부서지면서 가루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금속 가공 기술이 발달하여 가볍게 그리고 높은 강성을 지니도록 만드는 기술도 발전해서 잘 쓰지 않는다.

그래도 오랫동안 경량화 소재로 애용된 만큼 역사적인 자동차에서 FRP 소재를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엔 그중에서 기념할 만한 자동차들을 모아보았다.

쉐보레 콜벳 사진 쉐보레

쉐보레 콜벳

1953년에 등장한 쉐보레 콜벳 1세대 모델은 독특했다. 프레임은 강철로 만들었지만, 그 프레임 위에 얹는 차체는 FRP로 제작했던 것이다. 소규모 자동차 공방이 이렇게 만드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양산 모델에 FRP를 사용한 것은 콜벳이 최초다. 그래서 경쾌하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처음에는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이때 탑재한 3.9ℓ 6기통 엔진은 최고출력이 150마력에 불과했고, 자동 2단 변속기로 인해 최고속력 시속 173km까지만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벳은 이대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았고, 1955년에는 4.3ℓ 8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95마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3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해 나름대로 주행 성능을 다듬었다. 1957년에는 4.6ℓ 8기통 엔진에 인젝션 시스템을 더해 최고출력 290마력을 발휘했고, 4단 수동변속기도 탑재했다. 1963년부터 등장한 2세대 모델은 팝업 헤드램프를 가진 쿠페 형태로 다듬어졌고, 본격적인 스포츠카로 거듭났다.

로터스 엘리트 사진 로터스

로터스 엘리트

경량화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로터스가 FRP에 손을 안 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로터스는 다른 자동차들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1957년 런던 모터쇼 무대에 등장한 '로터스 엘리트'는 금속 프레임이 하나도 없는, FRP 모노코크 구조를 가진 경량 스포츠카였다. 앞에는 더블 위시본, 뒤에는 드라이브 샤프트가 로어 암을 겸하는 '채프먼 스트럿(로터스의 창립자인 콜린 채프먼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을 사용한 4륜 독립 서스펜션이 큰 특징이었다.

차체 앞에 탑재한 1216cc 엔진은 최고출력 76마력을 발휘했으며, 당시 MG 모터에서 가져온 4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해 최고속력 시속 180km를 기록했다. 엔진 출력에 비해 성능이 우수했는데, 자동차 무게가 585kg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차는 레이스에도 활약했지만, 가격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품질이 낮았기 때문에 판매량은 적었다. 어쩔 수 없는 백야드 빌더의 한계였지만, 로터스는 그 뒤로도 경량화를 위해 오랜 기간 FRP를 사용해 왔다.

닷선 스포츠 사진 닛산

닷선 스포츠 1000

일본에서 만든 자동차들 중에서 처음으로 '스포츠카'를 내세운 모델은 1952년에 등장한 닷선 스포츠(DC3)다. 이 차는 트럭과 프레임을 공유했지만, 그 위에 지붕을 여는 형태의 4인승 차체를 얹었다. 그리고 1959년, 이 닷선 스포츠의 후계 모델로 등장한 것이 바로 닷선 스포츠 1000(S211)이다. 이 차는 일본 최초로 차체에 FRP를 적용했는데, 그 덕분에 최고출력 34마력을 겨우 발휘하는 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도 최고속도 시속 115km를 기록했다.

경량화로 인해 다른 모델보다 최고속도가 빨랐고 상대적으로 경쾌하게 주행했지만, 당시 일본 자동차 시장은 택시로 사용할 수 있는 승용차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게다가 FRP 차체는 제작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6개월에 20대를 겨우 생산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스포츠 1000은 그대로 생산을 종료했고, 이후 FRP 대신 일반 철판을 사용하고 좀 더 강력한 1.2ℓ 엔진을 탑재해 북미 수출용 SPL212를 만들었다. 이 차의 이름은 페어레이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스포츠카의 전설이 이때 시작됐다.

사브 소넷 Ⅱ

사브 소넷 Ⅱ

본래 항공기를 전문으로 만들던 사브는 1947년에 자동차 부문을 따로 만들었다. 이후 1950년부터 독일 DKW에서 2행정 2기통 엔진을 받아서 앞바퀴를 굴리는 사브 92를 만들었고, 이 차를 좀 더 개량해서 1955년에 2행정 3기통 엔진을 탑재한 사브 93을 만들었다. 그때 93을 기반으로 알루미늄 프레임에 FRP로 만든 차체를 결합하는 스포츠카를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에는 프로토타입만 만들고 끝났다. 기술이 좀 더 축적된 1966년, 사브는 드디어 양산화에 성공했고 소넷(Sonett) Ⅱ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차는 알루미늄이 아니라 강철 파이프로 만든 프레임을 갖고 있었으며, 여기에 FRP로 만든 2인승 차체를 올렸다. 최고출력 60마력을 발휘하는 2행정 3기통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했으며, 710kg이라는 가벼움으로 인해 최고속력 시속 170km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후 1967년에는 배출가스 규제에 대비해 기존 DKW의 2행정 엔진 대신 포드에서 받은 4기통 엔진을 탑재했는데, 그 결과 소넷 V4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사브가 만든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스포츠카다.

마쓰다 AZ-1 사진 마쓰다

마쓰다 AZ-1

이 차는 분명히 마쓰다에서 만들었지만 '오토잠(Autozam)'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 오토잠은 당시 마쓰다가 일본 내에 전개했던 별도의 판매 채널인데, 당시에는 같은 브랜드라고 해도 특정 판매 채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자동차가 있었다. 어쨌든 이 차는 1989년에 콘셉트카로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당시 호평을 받은 뒤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스켈레톤 모노코크'라는 이름의 독특한 프레임에 FRP로 만든 차체를 씌웠고, 멋진 걸윙 도어를 장착했다.

당시 스즈키 알토에 탑재했던 657cc 3기통 엔진을 차체 중앙에 탑재했으며, 알토 전용 5단 수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렸다. 마쓰다가 판매했던 1세대 MX-5와 거의 동등한 가속 성능을 가졌는데, 이를 통해 자동차에서 경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별도로 튜닝한 고성능 버전도 등장하는 등 많은 신경을 썼지만, 기본 사양이 150만 엔이라는 고가였고(당시에는 그랬다) 일본 내 버블이 붕괴하면서 판매는 계속 감소했다. 결국 약 5000대만 생산하고 1994년에 단종됐다.

푸마 GT  사진 푸마

푸마 GT

브라질은 한때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해 많은 규제를 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1960년대에 다수의 제조사들이 진출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독일 DKW(현 아우디)의 기술을 이용해서 1964년부터 스포츠카를 만들던 브라질 자체 제조사가 있었다. 그 회사가 바로 이번에 언급되는 '푸마(PUMA)'다. 주로 스포츠카를 만들었는데, 1966년에 DKW의 기술을 이용하고 FRP 플랫폼을 씌워서 최초로 제작했다. 이후 1967년에 DKW 브라질이 폭스바겐 브라질에 흡수되면서 폭스바겐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 등장한 푸마 GT1500은 1세대 비틀의 플랫폼에 FRP로 만든 근사한 2인승 쿠페 차체를 올렸다. 차체 뒤에 탑재한 1.5ℓ 4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60마력을 발휘했으며, 차량 무게가 680kg에 불과했으므로 최고속력 시속 150km를 발휘했다. 이후로도 플랫폼과 엔진을 조금씩 변경하면서 계속 만들어졌지만, 1980년대에 브라질 경제가 악화되면서 판매 대수가 줄었고, 결국 1985년에 공장을 폐쇄하고 말았다. 이후 다른 회사에서 재생산됐지만, 그것도 1993년에 끝나고 말았다.

알피느 A310 사진 르노

알피느 A310

1955년 창립 때부터 르노의 자동차를 베이스로 스포츠카를 만들고 성공을 거둔 회사가 바로 알피느(Alpine)다. 1962년에 출시한 A110(현재 판매하고 있는 A110과는 완전히 다른 모델이다)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1971년에 등장한 A310은 더욱 더 크고 호화로운 GT 모델에 가까운 성격을 띄게 됐다. A110과 마찬가지로 굵은 강철 관으로 만든 백본 서브프레임에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조합하고 그 위에 FRP로 만든 전위적인 형태의 차체를 올렸다.

GT 모델인 만큼 네 명이 탑승할 수 있었으며, 르노에서 받아온 1.6ℓ 4기통 엔진을 직접 튜닝해 최고출력 127마력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최고속력 시속 210km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A110보다 100kg 정도 무거운 차체로 인해 운동 성능이 좋지는 않았다. 이후 몇 년이 흐른 뒤에 최고출력 150마력을 발휘하는 2.7ℓ 6기통 엔진을 탑재했고, 그제서야 사람들이 이 차에 만족을 하여 본격적으로 구매했다고 한다. 약 1만2000대가 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페라리 308 GTB 사진 페라리

페라리 308 GTB

외형만 봐서는 잘 알 수 없겠지만, 308 GTB(GT 베를리네타)는 디노의 후속 모델이다. 1975년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금도 페라리 내에서 양산형 모델에 탑재되고 있는 8기통 엔진 시리즈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지금은 그것을 6기통 엔진으로 바꾸려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 차는 파이프 프레임에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차체를 씌웠는데, 페라리의 일반도로 주행 자동차로는 최초로 FRP를 사용했다. 그래서 무게가 1090kg에 불과했는데, 사실은 경량화 때문에 선택한 게 아니다.

페라리가 FRP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파업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철로 차체를 만들면 생산이 늦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고, FRP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1977년에 추가된 308 GTS 컨버터블 모델은 차체를 강철로 바꾸었고, 그 결과 무게가 150kg 증가했다. 엔진은 최고출력 255마력을 발휘하는 3.0ℓ 8기통 엔진을 탑재했으며, 이후 1980년에 이탈리아 내 자동차 세금 문제로 인해 2.0ℓ 엔진을 탑재한 208 GTB도 추가됐다.

알파로메오 SZ  사진 알파로메오

알파로메오 SZ & RZ

이 차는 분명히 알파로메오 브랜드로 팔렸지만, 생산은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자동차 공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자가토(Zagato)에서 진행했다. 본래 자가토가 1989년에 공개한 콘셉트카였는데, 이것을 알파 로메오가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알파로메오에서 플랫폼과 엔진을 공급했고 여기에 자가토가 FRP 차체를 씌워 만들었다. 단 지붕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이름인 SZ는 Sprint Zagato의 약어이며, 나중에 추가되는 RZ는 Roadster Zagato의 약어다.

어쨌든 이 차는 3.0ℓ 6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210마력을 발휘했으며, 5단 수동변속기를 이용해 뒷바퀴를 굴렸다. 그 공격적인 형태만큼 성능도 훌륭했으며, 최고속력 시속 245km를 발휘할 수 있었다. 자가토는 SZ와 RZ를 모두 합쳐 1993년까지 단 1000대만 생산했기에 지금은 귀한 자동차가 되어버렸다. 참고로 이후 알파로메오는 한동안 뒷바퀴를 굴리는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 전통(?)은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다.

TVR 투스칸 스피드 6 사진 TVR

TVR 투스칸 스피드 6

한 사람의 고집에 의해서 태어난 독특한 자동차 브랜드 TVR은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비운의 브랜드기도 하다. 투스칸은 그나마 운영이 안정적이었던 때에 등장한 자동차인데, 본래 1967년에 먼저 등장했고 1999년에 그 이름이 부활한 것이다. FRP를 이용해서 차체를 다듬었기 때문에 볼륨 있는 우아한 디자인이 만들어졌고, 카멜레온 컬러를 적용한 것도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도 상당히 멋있게 등장한다.

이런 소규모 브랜드들은 다른 브랜드에서 엔진을 받아오는 것이 일반적이고, TVR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른 자동차에는 포드 엔진을 주로 탑재했다. 그러나 이 투스칸은 직접 제작한 4.0ℓ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최고출력 360마력에 비해 차체 무게는 1100kg에 불과했으니 그야말로 스포츠카에 아깝지 않은 퍼포먼스를 발휘했다. 이후 개선을 거쳐 최고출력이 390마력까지 올라갔지만, 2006년에 TVR이 파산하면서 투스칸의 생산도 중단됐다.

미츠오카 오로치  사진 미츠오카

미츠오카 오로치

국내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엄연히 자동차 제조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 바로 미츠오카(光岡)다. 본래 기반이 되는 차체를 가져온 뒤 독특한 디자인을 씌워서 판매하지만, 이 '오로치'만큼은 직접 만들었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보기만 하면 슈퍼카라고 단번에 알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외형과는 달리 성능은 억눌러두고 있어 어떤 운전자라도 쉽게 다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01년에 콘셉트 모델이 등장한 이후 2006년에 첫 고객 인도가 이루어졌다.

미츠오카가 직접 만든 파이프 프레임에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탑재하고 그 뒤에 FRP로 만든 차체를 씌웠다. 단, 도어는 금속으로 만들었다고. 토요타에서 받은 3.3ℓ 6기통 엔진을 차체 중앙에 탑재하고 5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린다. 브레이크는 혼다, 에어백은 스즈키, 안전 관련 기술은 마쓰다가 맡았다. 차량 가격은 1050만 엔이나 됐지만, 400대 한정 생산 모델이었기에 가격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400대만 한정 생산되었고, 2014년에 생산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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