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없다, 할 만큼 했다"…'영원한 재야' 장기표 별세
‘영원한 재야’로 불리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78세.
장 원장은 이날 오전 1시 35분쯤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담낭암 투병 중이던 고인은 발견 당시 4기였으며 입원 한 달 만이다.
장 원장은 50년이 넘는 긴 기간 학생· 노동· 재야민주화운동 등 온몸으로 투쟁해온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1945년 경남 밀양군 상남면에서 태어나 김해군 이북면 장방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고인은 서울대 재학시절인 1970년 11월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분신자살 소식을 접하고 서울대학교 학생장으로 치르겠다고 가족에게 제의하며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유신체제와 군부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계속한 그는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1970~80년대에 수차례 복역하기도 했다.
고인은 재야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해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이후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선거, 17·19·21대까지 총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미래통합당) 후보로까지 옮겨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도 출마를 선언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영원한 재야’로 불린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지난 7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담낭암 말기’로 투병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며칠 전에 건강상태가 안 좋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담낭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되어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적었다.
이어 “당혹스럽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한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했다. 그는 “자연의 순환질서 곧 자연의 이법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사람이기에 자연의 이법에 따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장 원장은 “과도한 양극화와 여기에서 오는 위화감과 패배의식, 그리고 높은 물가와 과다한 부채, 여기에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온갖 사건 사고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라며 “하지만 앞으로 더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 있는 터에 이를 극복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정치는 그야말로 무지의 광란이라 불러 마땅할 팬덤정치가 횡행해,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걱정스럽기 그지없다”며 “단지 물극즉반(物極則反·극에 도달하면 원위치로 돌아온다), 곧 사물이 극단에 치우치면 반드시 대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거늘 이를 극복할 대반전이 일어나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74)씨와 딸 하원, 보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 오전 5시, 장지는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후 3시30분쯤 장례식장에서 민주주의 발전 공로로 추서된 국민훈장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조문이 시작된 오후 2시 빈소에 화환을 보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장기표 선생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우리 시대를 지키신 진정한 귀감이셨다”며 “장기표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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