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4표 이탈로 균열 확산…야당, 이 틈새로 尹탄핵 맹공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서 발생한 최소 4개의 여당 이탈표로 시작된 여권의 그늘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6일 이른바 친한계 의원 20여명과 서울 종로구의 한 중식당에서 가진 만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를 앞두고 공세를 강화하는데, 단결하고 지혜를 모아서 위기를 극복하자”고 참석자들을 독려하면서도 “지금은 진짜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대표는 특히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과 명태균씨 등 김 여사를 둘러싼 새로운 의혹을 야권이 끊임없이 꺼내 드는 상황에서 당 차원의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는 고민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참석자들은 “어쨌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지금 많이 추락한 상태에서 용산이 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대통령실의 변화 없이 우리가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며 대통령실의 변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참석 의원 가운데에는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이 뭐가 더 있는지도 모르는데, 국정감사 기간에 어떤 의혹이 더 추가될지 걱정된다”는 우려를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한 대표는 “국정감사 기간에 야권이 제기하는 의혹을 조금 더 지켜보고 대응을 천천히 논의하자"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7·23 전당대회 이후 친한계 의원이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국민의힘 곳곳에선 국정감사를 앞두고 “이대로 가면 공멸”(초선 의원)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당의 단일대오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다”(추경호 원내대표)는 주장에도 여당에서 최소 4개의 이탈표가 나오자 “단일대오가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진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은 4일 본회의 전 당론으로 ‘부결’을 정하고 본회의장으로 향했으나, 김건희 특검법 투표 결과는 출석 의원 300명 중 찬성 194명, 반대 104명, 기권 1명, 무효 1명이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최소 2명이 찬성표를 던졌는데, 누군지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초유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 이후 석 달째 신경전을 반복해 온 친한계와 친윤계는 또다시 서로를 겨눴다. 친윤계는 지도부의 미온적 대응을 문제 삼았다. 추석 전,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윤계 만찬’에 참석했던 윤상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특검법은 탄핵의 문을 여는 것“이라며 “특검법 통과 후의 끔찍한 시나리오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는다면 향후 재표결에서 추가 이탈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검법의 문제점을 제대로 각성하고 야당에 대응해야 한다”며 “혹여 가결된다면, 맨 처음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것은 우리 당 지도부”라고 했다. 김민전 최고위원도 전날 한 유튜브 채널에서 “친한계가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며 “위헌 소지가 매우 많은 법안인데 찬성한 의원들이 있단 것은 우리 당의 뼈 아픈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친한계는 용산 책임론을 꺼냈다. 신지호 당 전략본부장은 “일종의 경고성 일탈 표가 나온 것”이라며 “김 여사에 대한 시중 여론이 갈수록 악화해 방어하는 데도 한계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의 진솔한 사과뿐 아니라 향후 활동 계획 등이 나와야 여당도 나름대로 명분과 논리를 갖고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실의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한 친한계 의원은 “표결 전날 한 대표와 무관하게 우리 쪽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부결표 단속에 나섰다”며 “이번에 이탈한 건 (친윤계·친한계가 아닌) 중간파 의원들일 가능성이 크다. 용산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 비윤계 의원 사이에선 “어떤 방식으로든 김 여사 문제를 일단락해야 한다”, “김 여사 사과마저 타이밍이 지나치게 늦어 소용이 없을 것” 등의 반응이 나왔다.
상황 인식과 해법을 둘러싸고 건건이 반목하는 친한계와 친윤계의 정면충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선 거론되는 뇌관은 7일 소집하는 당 윤리위원회다. 한 대표는 3일 “아주 극단에 서 있는 좌파 유튜버에게 허위 공격을 사주하는 것은 선을 많이 넘은 해당 행위”라며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에 대한 당 윤리위 차원의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당 일각에선 윤리위가 구성되면 그간 한 대표에게 비우호적이던 당 총선 백서특위(조정훈 위원장)가 일부 자료를 김 전 행정관에게 넘겨줬는지에 대해서 조사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비한계는 이런 지도부의 움직임을 두고 “친한계가 일을 키우고 있다”는 불편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4일 페이스북에서 “여당 대표가 자기를 비판한다고 감찰 지시를 한다는 건 좀생이나 할 짓. 그러다가 ‘박근혜 시즌2’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의원도 “야권의 탄핵시나리오 밑밥을 덥석 물은 꼴”이라며 “개인적 일탈을 조직적 음모니 하면서 더 키웠다. 더 이상 야당의 탄핵 시나리오에 기름 붓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친한계 핵심인 신 본부장은 “나경원 의원은 그의 진영 범죄가 개인 일탈이었다는 것은 어떻게 그리 잘 아는가. 지금은 차분하게 당의 진상조사를 지켜봐야 할 때”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날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3개국 순방길에 오른 윤 대통령의 출국길엔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홍균 외교부 1차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배웅했다. 한 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 한 대표는 10·16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를 위해 부산에 머물렀다. 한편, 양측의 갈등을 증폭시킨 김 전 행정관은 SGI서울보증 상근감사직 사퇴 의사를 주변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윤지원·김민정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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