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움켜쥔다고 내 것 되진 않더라” 수입 절반 기부하는 CEO의 나눔철학

2026. 5. 14.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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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부자들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 인터뷰

이진민 대표는 기아대책의 고액기부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에 2018년 위촉됐다. 이건송 기자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막내딸을 옆에 앉혀두고 말했다.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건 치사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아버지는 근검절약과 공동체 의식을 삶의 원칙처럼 여겼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건 ‘남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라며 누구보다 엄격하게 시간을 지키도록 했다.

모든 수입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는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는 “아버지에게 받은 영향과 더불어 기독교적 신앙에서 비롯된 사명과 철학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광고 카피라이터, 여성포털 마이클럽 창립 멤버, 천연화장품 브랜드 창업자로 이어진 삶의 선택들에도 ‘남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깔렸었다고 했다. 이 대표를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 아이소이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성공보다 사명감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꺼냈다. 평생을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보냈지만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것”이라고 말했다.

Q : 수입의 절반을 기부한다고요.

A : “딱 절반. 월급날이 되면 입금액의 50%를 기부해요. 수입이 발생하는 즉시 계산해서 송금하는 게 원칙이에요. 조금씩 비율을 높여왔어요. 30%, 40%, 이제 50%가 됐어요. 여러 기관에 기부금을 보내고 나면 해야 할 일을 하나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기부하면서 돈에 대한 집착도 줄고 심리적 자유를 얻었습니다.”

Q : 어린 시절 영향을 많이 받으신 건가요.

A : “아버지의 영향도 있지만, 기독교적 세계관도 영향을 미쳤죠. ‘남과 함께 살아야 한다.’ 내가 잘사는 데는 남의 공이 분명히 있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자랐어요.”

Q : 광고업계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죠.

A : “금강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했어요. 그때 여자들은 차장 승진도 잘 못 하던 시절이었어요. 제가 노조 여성위원장도 했거든요. 여자들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계속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녔죠. 그러다 제일기획으로 옮겨 애니콜 광고를 맡게 됐어요.”

Q :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애니콜 광고는 지금도 많이 회자됩니다.

A : “1995년 무렵 모토로라 점유율이 80%가 넘었어요. 그런데 소비자들이 진짜 원하는 건 ‘잘 터지는 휴대폰’이더라고요. 조사 보고서에는 ‘고감도’ 같은 표현이 있었는데 저는 산이 많은 한국 지형에서 통화가 잘 되는 게 핵심이라고 본 거예요. 그래서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콘셉트를 제안했죠. 그리고 광고가 나가고 반응이 폭발했어요.”

Q : 마이클럽 시절 ‘선영아 사랑해’ 캠페인도 유명합니다.

A : “직접 기획한 건 아니었어요. 당시 광고 대행사에서 제안받은 자리에서 스쳐 지나가던 아이디어였는데, 듣자마자 ‘그거 되겠다’ 싶었죠. 그때 광고가 지금으로 치면 바이럴이고 티징이었어요. 당시엔 인터넷 광고에 돈을 수백억씩 쓰던 때였는데, 우리는 돈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골목마다 붙은 ‘선영아 사랑해’ 문구를 보고 사람들이 검색해서 마이클럽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서버가 터질 정도였어요.”

Q : 승승장구하던 시기 회사를 떠났습니다.

A : “사실상 잘린 거죠. 그때 굉장히 충격이 컸어요. 내가 회사를 위해 이렇게 살았는데 주인이 아니었다는 걸 처음 실감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경험이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어요.”

Q : 돈에 대한 생각도 그때 달라졌나요.

A : “그렇죠. 예전에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돈은 내가 움켜쥔다고 내 것이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마이클럽에서 나온 뒤 집에 현금이 하나도 없었던 적도 있었어요. 딸 저금통 깨서 생활하고, 은행 가서 마이너스 통장 신청했다가 거절당하고. 그런 경험을 하면서 오히려 돈에 덜 얽매이게 된 것 같아요.”

Q : 그런데도 기부나 나눔은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A : “그냥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아요. 거창하게 ‘기부해야지’라기보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제 피부가 정말 안 좋았는데 천연화장품을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혼자만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 거예요.”

Q : 회사 수익금 일부로 케냐 우물 지원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A : “바쁜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일상을 멈추고 차 한잔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케냐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퍼플티’를 알게 됐죠. 그걸 계기로 화장품과 차 브랜드인 ‘티퍼런스’를 만들게 됐어요. 케냐에서 원료를 가져오는 만큼 다시 그 지역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수익금 일부를 기아대책을 통해 케냐 우물 지원 사업에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Q : 돈에도 ‘좋은 돈’과 ‘나쁜 돈’이 있다고 했습니다.

A :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을 살리고 돕는 데 쓰이는 돈은 착한 돈이고, 사람의 불안과 욕망을 자극해서 버는 돈은 나쁜 돈이라고 생각해요. 화장품 업계도 과장하거나 겉으로만 친환경인 척하는 ‘그린워싱’이 많아요. 저는 소비자를 속이는 방식으로 돈 벌고 싶지 않았어요. 돈을 버는 방식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아이소이 역시 그런 철학 아래 운영되고 있어요. 유해성이 의심되는 성분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죠.”

Q : 주변에도 기부를 권하는 편인가요.

A : “누군가에게 작은 영향이 될 수 있다면 하는 편입니다. 아이들도 기부를 자연스럽게 하더라고요. 제가 억지로 시킨 건 아니에요. 어려서부터 엄마가 기부하는 걸 보고 자랐잖아요. 용돈을 받으면 자기도 일부를 기부하고 싶다고 하고, 어디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요. 그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직원들도 기부에 적극적이에요. 기아대책을 통한 매칭그랜트 기부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직원들도 참 많습니다.”

Q : 기부를 오래 이어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뭔가요.

A : “두려움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사업이 흔들리면 불안했고 돈이 줄어들면 겁이 났거든요. 그런데 계속 나누다 보니까 오히려 덜 무서워요. 돈이 많아서 안정적인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분명해지니까 안정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문일요 더버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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