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불러줘" 할머니의 직감…수양딸은 임종 자격 없었다

이은주, 선희연 2024. 10.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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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더중앙플러스 - 눈물콧물 요양보호사 24시

「 우리는 모두 늙고, 언젠가 죽습니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그때 만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요양보호사입니다. 삶과 죽음이 바쁘게 교차하는 공간에서 요양보호사는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들의 섬세한 관찰과 따뜻한 시선을 통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눈물콧물 요양보호사 24시' 시리즈의 한 편을 전문 무료로 공개합니다. 참고로 이번 편은 이은주 요양보호사가 마주한 '가장 슬픈 임종'입니다. 가족, 친지를 직접 돌보고 있거나 요양원에 모신 분이라면 이 시리즈가 공감과 위로를 전할거라 생각합니다.

▶ 눈물콧물 요양보호사 24시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31

" 안 될 것 같아, 119를 불러줘요. "
밤 기저귀를 갈려는 나를 올려다보며 김소정(가명·74) 어르신이 말했다.

벌써 한 달째 기저귀를 갈 때마다 검은 변이 보였다. 어르신은 말기 암이었다. 더 이상 치료를 원치 않아 석 달 전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옮긴 상태였다. 어르신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자신이 떠날 순간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독거노인이었다.

찾는 사람이라곤 이전 병원에서 그를 돌봤던 요양보호사뿐이었다. 기댈 곳 없던 어르신은 그 보호사를 '딸'이라고 불렀다. '딸'은 종종 순대나 치킨을 사왔다.

일러스트=이유미 디자이너

전화를 걸기 전 나는 잠시 망설였다. 119를 불러야 할지,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닌데 그 보호사에게 새벽 전화를 넣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허둥지둥 요양원 센터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센터장은 호적상 가족이 아니면 119에 연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한 주택가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옛날식으로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요양원이었다. 들것에 가벼운 몸이 가뿐히 들려, 집 현관을 빠져나갔다.

문단속을 하고 어르신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었다. 담장 넘어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는 구급차의 불빛을 바라봤다.

“안 될 것 같아. 119를 불러줘요.”
그것이 어르신과 마지막 대화였다.

텅 빈 침대 곁에서 귀뚜라미가 울었다.
모기장으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김소정 어르신의 임종을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혈연 중심의 가족 사회'에서 수양딸에게 임종의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르신을 홀로 떠나보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결국 유품을 정리하는 것은 내 몫이 됐다. 어르신이 남긴 것은 남루했다. 대부분 쓰레기봉투로 들어갔지만, 그의 빛바랜 사진들은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집으로 가져와 한 장 한 장 마음을 담아 태웠다.
'좋은 곳으로 가시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한 탓에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고, 쏟아낸 눈물 탓에 얼굴은 푸석했다.

여러 날 악몽을 꿨다.
그 후로도,
어르신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요양보호사는 돌보던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며칠씩 아프다.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긴장한 몸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손 소독제를 자주 쓰면 손이 뻣뻣해지듯, 죽음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공허해진다. 비닐봉지가 떠다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긁히는 기분이 든다.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사진 Unsplash


가족에게 임종을 알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박점례(가명·72) 어르신은 낮잠을 주무시는 일이 거의 없다. 항상 밖으로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간이 칸막이로 가려두고 있었다. 심심하면 다른 방을 돌다가 서랍 속 옷가지 꺼내기를 반복하는 게 어르신의 일과였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들고 온 간식을 침대 협탁에 놓았다. 어쩐지 가여운 기분이 들어 뺨을 손등으로 쓸어드리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어르신 코 가까이 귀를 가져간다.
숨소리나 이렇다 할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돌아가셨구나.

임종 소식을 듣고 아들이 달려왔다.
돌아가신 걸 못 본 아들이 침통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왜 이제 알렸지요. 죽음을 못 깨달았나요?”

그동안 어머니를 돌봐줘서 수고했다는 말 대신 원망 섞인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을 때렸다. 이럴 때는 요양보호사의 책임과 의무만 강조되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가족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을 못 지켰다는 마음과 쓸쓸하게 가셨을 거라는 생각에 괴로움이 클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임종을 못 지킨 자녀들이 '임종 후유증'을 겪는 것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가족분들이 이것만은 알아주시면 좋겠다.

어르신들의 죽음은
요양보호사인 나에게도
큰 슬픔이라는 걸.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의 말년을 지근거리에서 돌보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가족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애통하고 애달프다.

심지어 애도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밀려오는 감정을 묻어둔 채 다른 어르신을 돌봐야 하는 게 현재 돌봄 구조의 현실이기도 하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생의 끝에서 모두가 나답게 죽을 수 있기를,
그런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법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나의 결정을 존중 받는 법적 제도다. 연명 의료를 받고 싶지 않다면, 미리 작성해두는 게 좋다. 반드시 본인이 작성해야 하며,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 받은 등록기관에 방문해 제출할 수 있다. 가까운 등록기관은 연명의료정보포털(www.LS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 자체는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있는 440여곳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연명의료를 거부했다 하더라도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계속 치료 받게 될 수 있으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뒤엔 가족에게 내용을 공유하는 게 좋다.

「 “추워 안아줘” 치매 노모의 말…난 요양원서 매일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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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 노인 손톱 밑에 낀 변…그의 존엄은 휴지 한 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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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요양원, 걸어 나갔다…소변줄 할머니 ‘고추장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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