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에 그려진 검은 X...한국 예로 들며 처벌하겠다는 일본
[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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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7월 참정당 선거 유세에 등장한 엑스가 그려진 일장기. 참정당의 배타주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이같은 일장기를 들고 나와 화제가 됐다. '거짓말쟁이', '차별집단'이라는 팻말을 든 시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
| ⓒ 참정당 유튜브 캡처 |
"지금까지 국기를 손상해도 처벌이 없었다고?"
신문을 보던 내가 깜짝 놀라 말하자, 옆에 있던 일본인 남편은 "한국은 처벌이 있어?"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태극기는 단순한 깃발 이상의 존재다. 학창 시절 아침 조회 때는 국기에 대한 경례 시간이 있었고, 교내 태극기 게양 당번도 정해져 있었다. 태극기를 대할 때면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역사와 그 역사를 지켜낸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태극기를 훼손하는 모습을 보면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자국의 상징인 태극기를 훼손하는 것을 법으로 제재하고 있다. 형법 제105조에 규정된 '국기·국장모독죄'다. 이 법에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한 사람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등이 규정되어 있다.
한국의 상황이 이러니, 나는 막연히 일본 또한 국기 손상에 대한 법적 제재가 있으리라 짐작해 왔다. 하지만 의외로 현재 일본에서는 국기를 훼손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신 타인 소유의 국기나 공공기관의 국기를 무단으로 손상했을 때에 '기물파손죄' 등이 적용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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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장기를 달고 운행하는 일본 버스 |
| ⓒ 위키미디어 공용 |
물론 학교나 시청 등의 공공기관에는 일장기가 게양돼 있다. 택시나 버스, 전철 등이 작은 일장기를 꽂고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택에 국기를 거는 일본인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만약 이웃에 그런 집이 있다면, 현지인들마저도 경계심을 갖고 지켜볼지도 모른다. 그만큼 일본 국민들은 국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생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국기를 둘러싼 한일 간의 이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양국이 걸어온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 태극기가 독립과 민주화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도구라면, 일본인들에게 일장기는 전쟁과 군국주의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과거 일본은 일장기 아래에서 이웃 국가들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겼고, 자국 젊은이들 또한 전장으로 내몰았다. 전후 일본 사회가 일장기와 거리를 두어 온 배경에는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일본의 패전 이후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마저 90대 이상의 고령자가 되었다. 일본 사회에 존재했던 전쟁에 대한 반성이나 국가 권력에 대한 경계심은 점점 옅어져가고 있다.
전후 일본 사회를 지탱해 온 평화주의에도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현 정권 들어 헌법 9조 개정 논의가 다시 힘을 얻는 것은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껏 소극적이었던 일장기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기손괴죄'는 다카이치 사나에 현 일본 총리의 숙원 과제이기도 하다. 그는 자민당 소속 의원이던 지난 2012년부터 해당 법안의 입법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당 내외의 반대로 그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어 왔다.
이 법안을 다시 꺼내 든 것은 2020년 창당된 '참정당'이라는 신흥 보수 정당이다. 이들은 '일본인 우선'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애국심 교육 강화'와 '외국인 규제 강화' 등 민족주의 성향의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보수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참정당은 지난해 치러진 참의원 선거의 가장 큰 승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존 1석에 불과했던 의석수를 15석 규모로 늘리며 단숨에 일본 정치권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다. 동시에 이들의 선거 유세에는 배척주의적 정책에 반대하며 '거짓말쟁이', '차별주의자'라는 팻말과 함께, 엑스(X)가 그려진 일장기를 들고 항의하는 시민들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선거 이후 참정당의 가미야 소헤이 대표는 "유세를 방해하기 위해 X 표시가 된 일장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라며 일장기 훼손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을 참의원에 제출했다. 법안에는 '일본에 모욕을 가할 목적으로 국기를 훼손하는 경우 2년 이하의 금고형 또는 벌금형'을 부과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덕분에 다카이치 총리는 숙원을 성취할 기회를 얻었다. 보수 성향의 의원이 과반이 넘는 현 국회라면 '국기손괴죄'가 통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당은 재빠르게 국기손괴죄에 관한 프로젝트팀(PT)을 꾸리고 법안 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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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충일인 6일 서울시 노원구에서 열린 2026 노원기차마을 축제를 찾은 어린이가 태극기 바람개비를 구경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외국의 사례도 적극 홍보하고 있다. 그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들은 "같은 아시아에 속한 이웃 나라 한국도 자국 국기를 철저히 보호하는데, 일본은 왜 방치하느냐"며 여론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 법안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무엇이 국기를 '손상'하는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국가를 향한 비판이나 항의를 억제하는 일종의 '사상 검열'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자민당은 6월 들어 기존의 법안을 수정해 처벌 대상이 되는 국기를 '천 또는 종이로 제작, 국기봉 등에 걸어 표시하는 것'으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이나 AI로 만든 창작물, 회화 속 일장기의 훼손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국기손괴죄가 국가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위축시킬 수 있다"라고 말한다. "외국 국기 훼손을 처벌하는 것은 국제 분쟁을 막기 위해 필요하지만, 자국 국기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기 훼손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나 역시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온 '국기손괴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국가의 상징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동시에 국민이 가진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국가의 상징은 그 자유보다 우선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국기손괴죄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존재하는 가운데, 자민당이 법안 제정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앞으로도 일장기에 엑스를 그려 국가를 향한 항의의 뜻을 표현할 수 있을까? 국기손괴죄는 전후 일본 사회가 유지해 온 국가와 개인 간의 거리를 재조정하는 중요한 좌표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해당 법안의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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