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원더랜드 VS 日 퍼레이드…작지만 큰 차이 [홍종선의 명장면⑲]
영화 ‘원더랜드’(감독 김태용, 제작 영화사 봄·기린제작사, 배급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관객 수 62만 명.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중국 배우 탕웨이가 나오고 밝고 맑은 얼굴의 박보검과 수지가 연인으로 분하고 정유미와 최우식이 사랑과 우정 사이 기분 좋은 케미를 보여준다. 연기를 못한 배우는 단 한 명도 없다. 디지털 강국답게 ‘죽음 이후’를 SF판타지로 접근한 신선한 설정에 순제작비 100억 원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높였다. 게다가 감독도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아는, 진중한 연출력의 김태용이다.
무엇이 흥행 저조를 초래했을까. 단순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좀처럼 원상복귀 되지 않는 극장 현황, OTT 시대를 맞아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영화의 현주소면 충분한 이유가 될까.
삶에 대한 애착만큼 많은 이에게 지대한 관심사인 ‘죽은 다음’에 관한 이야기여서기도 하지만, 왜 이 영화가 실 관람객으로부터 6점대 평점을 받았을까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손에 쥐어지지 않아서 오래도록 뇌리의 표면에 머물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원더랜드’가 필자를 포함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를 파악해 내지 못해 갑갑하던 차. 어쩌면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지점’을 다른 영화에서 발견했다. 일본 영화 ‘퍼레이드’(감독 후지이 미치히토, 제작 바벨 라벨, 채널 넷플릭스)이다.
어느 영화가 더 매무새가 좋은지, 어떤 영화가 더 재미있는가를 말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총 180억 원이 투입되면서 영상은 화려해졌지만, 손익분기점이 290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영화에 가해진 흥행 중압감에 ‘원더랜드’가 놓친 핵심이 무엇이었는가를 짚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우선 두 영화의 설정 차이부터 보자.
우리 영화 속 ‘원더랜드’라는 시공간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또는 죽음이나 다름없이 내 일상에서 사라진 연인을 둔 사람이,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이미 부모를 잃은 사람이 ‘죽은 다음’의 시간과 공간을 대비하고 대체하여 꾸민 세상이다. 그곳은 현실 세상과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어 전화나 영상통화로 대화가 가능하고 얼굴도 볼 수 있다.
엄마(탕웨이 분)는 바쁘다는 핑계로 딸과 한 약속을 번번이 지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고 딸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의 좋은 모델을 보여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본인의 죽음을 숨기고 멀리 해외 출장 간 설정으로 해서, 딸과 약속도 잘 지키고 다감하고 열심히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모습을 영상통화로 보여준다.
여자친구(수지 분)는 코마 상태의 남자친구(박보검 분)를 잊을 수도 버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의 부재로 인해 너무나 외롭고 고단해서. 남자친구를 달나라 우주선에 파견된 설정으로 해서, 아침 기상부터 날씨에 따른 옷차림을 챙겨주고 직장 일과를 찬찬히 들어주고 힘 나는 응원마저 보태주는 자상한 배려를 영상통화로 받는다.
‘원더랜드’의 탄생은 개발자(정유미 분)의 아픔에서 출발했기에 더욱 섬세하고 촘촘하게 의뢰인과 서비스 대상자의 감정까지 살핀다. 그런 따스한 마음씨를 지닌 선배 개발자를 후배 시스템 관리자(최우식 분)가 곁에서 지키고 아낀다.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영상통화도 짐짓 남자친구인 것처럼 함께 응한다.
일본 영화 ‘퍼레이드’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혹은 무엇이라 이름 붙여졌고 어떻게 생긴 곳인지 모르지만 죽은 사람이 가야 하는 곳에 곧바로 가지 못하고,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영화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든 ‘미련’이 남은 사람들로 표현된다. 그들은 도시 외곽의 허허벌판 캠핑촌 같은 데서 함께 머물고 있다. 미련을 떨치면, 마음에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면 그제야 비로소 이 ‘중간세계’를 떠나 저승으로 가는데, 사람에 따라 며칠이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혼자 두기엔 아직 어린 아들,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고 보육원에 간 아들을 두고 저승으로 갈 수 없는 싱글맘 기자(나가사와 마사미 분)가 엉성한 캠핑촌에 합류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곳에는 이미 영화의 뒷부분을 완성하지 못한 제작자(릴리 프랭키), 부모님께 밝히지 못하고 함께 살던 연인을 홀로 남기고 죽은 야쿠자(요코하마 류세이 분), 세 남매만 두고 죽어 적어도 첫째가 출산하는 것까지는 보고 저승으로 가고 싶은 엄마로 중간세계에서도 스낵바를 하며 모두에게 밥을 먹이는 아줌마(테라지마 시노부 분), 그리고 이 모든 이의 이야기를 소설로 기록해두고 싶은 문학청년(사카구치 켄타로 분)가 있다. 그리고 새로이, 학교폭력에 견디다 못해 잘못된 시도로 코마 상태에 빠진 여자 고교생(모리 나나 분)이 등장한다.
중간세계와 현실세계는 연결돼 있어서, 이들은 ‘미련’을 해소하기 위해 현세로 시시때때로 간다. 또 한 달에 한 번, 초승달이 뜰 때 다 함께 ‘행진(제목의 퍼레이드)’을 하면서 미련의 대상과 조우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자율에 맡겨지지만, 일정한 선 정도는 지키고 미련히 해소되면 바로 저승으로 가도록 감시하고 관리하는 인물(전직 은행원, 다나카 테츠시 분)이 있다.
어느 쪽이 더 매력적 설정인가는 관객 각자의 취향에 맡기겠다. 다만 어느 쪽이 영화 내적 타당도가 크고, 견고한가는 말할 수 있겠다.
먼저 ‘원더랜드’를 관람하기 시작하면 관객은 ‘죽은 다음’임을 모른 채 잠시 착각하거나 속을 수 있다. 미래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 또는 연인 사이 저런 최첨단 ‘소통’이 가능하구나, 꽤 매력적이다. 그러나 곧 깨닫게 된다. ‘원더랜드’가 죽은 자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고, 남은 자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를.
그리고 나를 대입하게 된다. 과연 ‘원더랜드’ 서비스에 나는 가입할 의향이 있나, 그것은 생과 남은 사람에 향한 아쉬움을 덜어줄까. 시사회가 열린 날 배우들이 가입 의사에 대해 대개가 부정적으로 표명한 것은 차치하고. 영화 내적으로 이미 ‘부정적 답’이 내포돼 있다.
바이리(탕웨이 분)의 딸(여가원 분)은 찾아갈 수 없고 찾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여전히 결핍을 느끼고, 딸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바이리의 엄마(니나 파우 분)는 디지털이 만들어낸 딸의 이미지를 딸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완벽하게 자상한 우주비행사 남친(박보검 분)은 ‘솔찮게’ 위안이 되지만 남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그가 ‘가짜’임을 누구보다 정인(수지 분)이 안다. 태주(박보검 분)는 기적적으로 소생하지만, 자신을 반기지 않는 정인과 심리적 거리를 느끼고 둘의 관계는 틀어진다. 후배 현수(최우식 분)는 (정유미 분)의 영상통화 화면 속 부모님을 살뜰히 존중하며 함께 식사하지만, 그것이 단지 거리만 떨어져 있는 식탁이 아님을 안다.
‘원더랜드’가 고객에게 만족감을 주기 어려워서, 영화 또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영화가 디지털이 만능이 아님을, 섣부른 발상이 인간사회에 예상치 못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해도 좋지 아니한가. 관객이 내게 닥칠 일로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데에는, 공감을 얻지 못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원더랜드’가 진정한 사후세계, 혹은 중간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작가 단테 알레기에리의 대서사시 ‘신곡’에서 보여주는 지옥 전 단계 연옥이든, 영화 ‘퍼레이드’의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의 중간세계이든 사실 ‘실존’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사후 세계를 알겠는가. 다만 그렇게 하기로 작품 내에서 설정하고, 독자나 관객은 그렇게 믿기로 하고 작품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원더랜드’는 작품 내적으로도 ‘가상의’ 세계이다. 영화를 보고 났을 때, ‘신곡’을 읽거나 ‘퍼레이드’를 봤을 때처럼 정말 연옥이나 중간세계가 있을까, 그다음 결국 가게 되는 종착지는 어떤 곳일까, 그러면 나는 어찌 살아야 할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내 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원더랜드’에 내포된 너무나 좋은 주제 의식이 화려한 원더랜드 영상에 가려져 제대로 부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태용 감독은, 가상 세계 ‘원더랜드’에 존재하는 바이리가 가상의 캐릭터일 뿐이지만 현실 세계의 딸이 위험에 처하자 마치 죽은 엄마의 영혼이 딸을 구하듯 ‘디지털 엄마’에게도 모성이 있어 기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키는 얘기를 통해 그 무엇보다 숭고한 ‘모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또 김태용 감독은, 비록 가짜임에 분명한 원더랜드이고 그것을 만든 것도 해리 본인이지만, 아이가 부모 없이 자라는 것보다 ‘디지털 부모’ 덕에 해리가 반듯하게 자랄 수 있었음을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생명이 온전히 사회적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SF판타지에서도 본 적 없는, 한국적 정서여서 가능한 ‘특별한’ 발상이다. 안타깝게도 관객 가슴에 도달률이 낮았다. 제대로 전달됐다면 7점 이하의 평점은 없었다고 확언한다.
반면, 영화 ‘퍼레이드’의 화면에서는 가난이 보이고 설정이 다소 엉성함에도 지나온 인생과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절박한 미련, 고쳐 쓰고 싶은 절실함, 아쉬움 해소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특히 달빛마저 어두운 밤 이뤄지는 퍼레이드는 애잔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명장면이다. 영화가 표현하고 전하고자 하는 진정성의 관객 마음 도달률이 제법이다. 어쩌면 복잡다단하지 않고 ‘심플’해서 더욱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원더랜드가 기술로 세워진 가상 세계, 가짜가 아니라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중간세계, 적어도 영화 안에서는 리얼인 시공간이면 어땠을까. 과정의 작은 차이가 결과에 큰 차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받을 만한 요소를 다양하게 지니고도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음이 내 일처럼 안타까워서 해본 일고(一考), ‘원더랜드’의 숨은 미덕과 명장면을 관객이 발견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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