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오명 억울한 울릉도…2.5만원이면 봄나물 잔치 열린다

백종현 2026. 4. 1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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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울릉도 저동항 식당가 모습. 관광객이 줄어 다소 썰렁한 분위기다. 백종현 기자

울릉도 관광은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2022년 방문객 46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찍었지만 3년 만에 약 25%가 줄어 지난해에는 34만명 수준에 머물렀다. 코로나 특수로 반짝 흥행했으나 부실한 서비스, 바가지요금 등 부끄러운 민낯도 함께 드러났다. 그렇다고 울릉도를 ‘가성비 낮은 섬’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억울한 구석이 있다. 울릉도만큼 개성 뚜렷한 섬도 없어서다. 무엇보다 울릉도엔 대체 불가능한 풍경과 먹거리가 있다. 다시 울릉도를 찾았다. 봄은 울릉도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울릉도 방문객 추이


봄 바다의 맛


울릉도 북면 현포전망대에서 본 현포항 일대 봄 풍경. 명이와 부지깽이 밭이 곳곳에 보인다. 백종현 기자
울릉도 바다는 거칠다. 파도가 높은 겨울에는 수시로 배가 끊긴다. 대신 겨우내 울릉도 깊은 바다에서 해산물이 단단히 살을 찌운다. 파도가 순해지는 봄이 오면 어부들이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진다. 요즘 울릉도 포구 앞 횟집은 갓 잡은 돌돔·도다리·돌문어·뿔소라 등이 수족관을 가득 채운다.

명성 자자한 독도새우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조업한다. 요즘 어획량이 줄면서, 살아 있는 독도새우는 1㎏에 30만원 이상에 거래될 만큼 가격이 뛰었다. 전문 식당에서는 대개 2인상에 15만원을 받는다.

울릉도 도화볼락(메바리). 울릉도 주민에게 가장 친숙한 생선이다. 회나 물회, 매운탕으로도 즐기고, 말렸다가 구이나 조림으로도 먹는다. 주황빛 몸과 반점, 큰 눈이 특징이다. 백종현 기자


독도새우는 울릉도 사람에게도 귀하다. 사실 섬 주민의 식탁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건 도화볼락(울릉도에선 ‘메바리’라 부른다)이다. 이맘때 섬에서는 주황빛 도화볼락이 줄지어 해풍을 맞는 풍경이 흔하다. 사동항 ‘신비섬횟집’의 이경주 사장은 “구워 먹고 쪄 먹고, 집집이 사계절 쟁여 두고 먹는 생선”이라고 말했다.

저동 ‘새바다횟집’의 홍해삼. 깊은 바다에서 홍조류를 먹고 자라 붉은 빛이 돈다. . 백종현 기자


‘바다의 홍삼’이라 불리는 홍해삼도 요즘이 제철(3~5월)이다. 깊은 바다에서 홍조류를 먹고 자라 붉은빛을 띠는 홍해삼은 일반 해삼보다 탄력이 좋고 맛이 깊다. 박국환 현포어촌계장은 “1㎏에 3만원씩 하는데, 오늘도 150㎏이 택배로 나갔다”고 귀띔했다.

신비섬횟집에서 물회(2만원)를 시켰다. 차진 도화볼락과 오독한 홍해삼이 번갈아 씹히며 입 안 가득 바다 향이 퍼졌다.

사동 ‘신비섬횟집’ 물회. 차진 도화볼락과 오독한 홍해삼이 만나 씹는 재미를 더한다. 백종현 기자

초록빛 섬 울릉도


모노레일을 타고 비탈에 올라 명이를 채취하는 울릉도 주민들. 봄이 오면 울릉도는 온통 초록으로 덮인다. 산비탈이며 해안 언덕이며 명이와 부지깽이가 빼곡하게 올라온다. 백종현 기자
봄날의 울릉도는 초록으로 빛난다. 전호·명이·부지깽이·삼나물·참고비·엉겅퀴 등 봄나물이 섬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모노레일로 가파른 비탈을 오른 뒤 명이와 부지깽이를 뜯는 곡예 같은 풍경이 울릉도에선 봄마다 펼쳐진다. 갓 뜯은 명이와 곤데서리를 맛보는 건 울릉도 여행자만 누리는 특권이다. 된장만 찍어 먹어도 입맛이 절로 돈다.
울릉도 태하의 ‘예향’. 울릉도 자연에서 뜯은 봄나물로 밥상을 차린다. 사진은 울릉도를 대표하는 봄나물 5종. 왼쪽부터 참고비‧삼마물‧명이‧부지깽이‧엉겅퀴. 백종현 기자

울릉도 봄나물에도 서열이 있다. 널리 알려진 건 명이(1㎏ 2만원 선)지만, 진짜 귀족은 참고비다. 털을 벗기고 삶고 말리는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말린 참고비 100g이 3만~4만원에 이른다. 생김새는 고사리와 닮았지만, 맛이 확실히 다르다. 울릉도 사람은 흔히 말한다. “참고비 먹다 고사리 못 먹지, 맛과 향이 떨어져 여물 같거든.”

나물의 귀족이라 불리는 울릉도 참고비. 백종현 기자

이맘때는 울릉도 어느 식당에 가든 봄나물이 깔린다. 태하의 ‘예향’에서는 엉겅퀴밥(1만9000원)만 주문해도 칡소 전골에 온갖 봄나물이 올라온다.

나리분지에는 큼지막한 나물 밭을 품은 산채 전문 식당이 여럿 있다. ‘야영장식당’에서 산채정식(2만5000원)을 주문하니 고비볶음·삼나물무침·뿔명이김치 등 봄나물 반찬이 14가지나 깔렸다. 한우보다 비싸다는 참고비를 몇 번이나 더 가져다 먹었다.

반찬 수가 많은 식당은 2인 이상 주문이 기본이다. 한정식집에서 1인 손님을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야영장식당에 산채비빔밥(1만5000원) 같은 혼밥 메뉴도 있는데, 고비 같은 고급 나물이 빠진다.

나리분지 나리촌의 산채 정식. 백종현 기자


울릉도식 파인 다이닝


① 코스모스 리조트 ‘라 울’의 조식 상차림. 도화볼락 조림, 봄나물 3종, 뿔소라 무침, 어만두, 칡소 떡갈비, 칡소 곰탕 등. ②봄나물 샐러드. ③ 칡소 스테이크와 뿔명이. ④토마토 맑은 국수. 백종현 기자
바가지요금 논란과 별개로 울릉도엔 지금 럭셔리 여행 붐이 불고 있다. 1박 50만원이 넘는 코스모스 리조트가 2018년 물꼬를 튼 뒤, 독채형 고급 숙소와 글로벌 호텔 체인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코스모스 리조트의 레스토랑 ‘라 울’의 주방을 들여다봤다. 송로버섯·캐비어 같은 고급 식재료보다 울릉도 토속 식재료가 더 많았다. 울릉도의 농가와 어가 20여 곳에서 공수한 식재료에 스마트팜에서 키운 채소를 더해 식단을 꾸린단다. 영국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출신 구진광 셰프가 두 달 전부터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2단 찬합에 담겨 나오는 아침상은 울릉도식 한정식을 받는 기분이다. 전호를 넣은 칡소불고기, 뿔소라 초무침, 볼락 어만두, 엉겅퀴 해장국 같은 반찬이 칸칸이 들어앉는다. 밥은 울릉도 고로쇠 수액으로 짓는다.

디너의 비건 7코스는 사찰음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접시마다 울릉도의 지형을 옮겨 놓은 듯하다. 튀긴 냉이와 다시마를 현미 위에 세운 부각 요리는 바닷속 해초 군락을 옮긴 것 같고, 봄나물로 울릉도를 형상화한 샐러드도 있다. 구진광 셰프는 “섬이라는 한계가 오히려 울릉도만의 개성을 또렷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 여행정보

경북 포항 여객선 터미널과 영일만항,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서 울릉도행 배가 뜬다. 후포항(울진), 강릉항(강릉)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지난해 운항을 멈췄다. 여객선마다 가격, 소요 시간, 특징이 다르다. 4월 현재 울릉도 렌터카 요금은 SUV 기준 하루 9만원 선이다. 패키지 단체여행객이 몰리는 도동은 여전히 혼밥이 안 되는 식당이 많다. 저동·사동 등 다른 지역에서는 1인 식사가 어렵지 않다. 울릉공항은 2028년 개항 예정이다.

박경민 기자

울릉도=글·사진 백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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