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는 남자마다 글러 먹었다고 말한 엄마 덕에 여지껏 싱글로 지낸다는 이 배우

이정은 (사진: NEW)
영화 <좀비딸>

좀비도 당황하게 만든 효자손. 이정은이 또 한 번 해냈다.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좀비딸>에서 그는 은봉리 마을의 핵인싸 할머니 ‘밤순’으로 분해, 능청과 인간미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연기를 선보인다. 술, 춤, K팝까지 섭렵한 할머니에게 손녀가 좀비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당황스럽지만, 이정은은 그 복잡한 감정을 절묘하게 풀어내며 관객을 울리고 웃긴다. 마트에서 간장까지 팔며 버틴 지난 시간을 지나, <기생충>의 문광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배우 이정은의 이모저모를 정리해 본다.

좀비딸
감독
출연
이윤창
평점

1. 시작은 연기가 아닌 연출이었다

연극 <진동거울> 연출자 이정은 (사진: 한양대학교 동문 매거진 '뉴스H')

이정은은 연극영화과 출신이지만, 처음엔 연기가 아닌 연출 전공이었다. 연기가 하고 싶었지만 “너는 목소리도 별로고 외모도 출중하지 않으니 연출을 하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선택한 길이었다.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했지만, 당시 연기는 그리 빛나지 않았다.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에서 간단한 대사조차 NG를 내며 카메라 공포증에 시달렸고, 오히려 연출 쪽에서 주로 활동했다. 실제로 영화 출연은 2001년 이후 한동안 없었고, 드라마 데뷔도 2013년에야 이루어졌다. 빛을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2. 마트에서 간장 팔던 ‘전대녀’

KBS2 <대화의 희열> 방송 캡처

연극 연출가가 도망친 후 제작비 마련에 나섰던 이정은. 신하균, 지진희, 우현 등 동료 배우들에게 5천만 원을 빌려 위기를 넘겼고, 그들의 이름을 항상 수첩에 적어 몸에 지니고 다녔다. 혹여 본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주변인들이 ‘은혜를 갚아달라’는 마음에서였다. 이 수첩 덕에 ‘전대녀(전대에 수첩 넣고 다니는 여자)’라는 별명도 생겼다. 이후 빚을 갚기 위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간장을 너무 잘 팔아 ‘판매왕’에 오르기까지 했다. 마트 측에서 계속 일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지만 사양했다고 한다.

3. 설경구가 다시 무대로 불러줬다

영화 <자산어보>
극단 '학전'의 주역들이 출연한 <유퀴즈 온 더 블럭> 방송 캡처

한때 극단 생활을 접고 아버지 병간호에 전념하던 시기, 선배 설경구가 찾아와 연극 <지하철 1호선> 오디션을 권했다. 이정은은 용기를 내 무대로 복귀했다. 훗날 두 사람은 영화 <자산어보>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당시 설경구가 직접 이정은을 ‘가거댁’으로 추천한 것. 두 사람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설경구라는 이름 세 글자가, 다시금 연기의 문을 열어준 셈이다.

4. 무대에서 먼저 주목받은 배우

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2008년 뮤지컬 <빨래>는 이정은을 대중에게 알린 작품이다. 주인 할머니와 여직원 역할을 맡아 4년간 무대를 지켰고, 이 작품으로 제1회 젊은 연극인상도 받았다. 뮤지컬에서 입지를 다진 후 소속사 대표는 “<빨래>에서 얻은 명성을 매체에서는 못 얻을 수 있다”며 방송 진출을 말렸지만, 그는 매체 쪽으로 진출할 것을 결심했다. 그렇게 2009년 영화 <시선 1318>, <마더> 등에 출연하며 영상 매체에 도전했고, 마침내 배우 이정은의 시대가 시작됐다.

5. 봉준호 감독이 인생을 바꿨다

영화 <옥자>
영화 <기생충>

뮤지컬 <빨래>에서의 이정은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2017년 <옥자>에서 옥자 목소리를 제안했고, 이정은은 돼지 다큐멘터리를 보며 하루 종일 소리 연구에 몰두했다. 봉준호는 그의 소리에 감탄했고, 목소리만으론 아쉽다며 얼굴도 영화에 등장시켰다. 2019년 <기생충>의 문광 역은 말 그대로 ‘인생 캐릭터’. 영화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이정은은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춘사영화제, 대종상의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이름 석 자는 드디어 전 세계에 알려졌다.

6. 주로 ‘아줌마’ 역할 이지만
실제로는 미혼

SBS <신발벗고 돌싱포맨> 방송 캡처

현실 속 이정은은 아줌마와는 거리가 있다. 1970년생인 그는 아직 미혼이다. 한때 고창석의 아내와 이름이 같아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한 예능에서는 “엄마가 결혼을 말린다”는 말로 웃음을 자아냈다. “제가 우수에 젖은 사람을 좋아하니까, 엄마는 ‘눈 보는 안목이 엉망이니 혼자가 낫다’고 하시더라”고. 사귀는 사람을 보여드릴 때마다 “글러 먹었다”고 평가한 어머니 덕에(?) 지금껏 싱글로 살고 있다.

7. 사투리 마스터지만 서울 토박이

영화 <변호인>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송강호)에게 아파트를 파는 집주인,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함안댁을 비롯해 작품마다 리얼한 사투리를 선보인 이정은은 놀랍게도 서울 토박이다. 사투리 연기를 위해 지방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직접 지역에 가서 연습한다고 한다. 매번 사투리 선생님의 녹음을 받아서 연습을 하는데 노력을 해도 완벽하게는 안되는구나 생각해 작품을 마치면 약간 번아웃이 온다고.

8. 이효리의 연기 스승

tvN <인생술집> 방송 캡처

이정은은 과거 연기 지도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 <세잎클로버>로 연기 데뷔를 앞둔 이효리에게 연기를 가르쳤다. 이효리는 즉흥성과 몰입력은 뛰어나지만, 결정적인 순간 웃음이 터지는 학생이었다고. “그래도 감수성이 풍부하고 연기를 잘할 친구였다”는 것이 이정은 선생님의 평가다. 이효리 역시 예능에서 “내 연기 선생님은 이정은 선배님”이라며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