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과 청룡, 빈손이 이해 안 가는 이병헌의 2025년 활약상

제61회 백상예술대상 이병헌 (사진: JTBC중계 영상 캡처)

2025년 상반기, 그 이름값을 증명한 배우가 있다면 단연 이병헌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와 시즌3, 영화 <승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영화 <킹 오브 킹스>까지, 플랫폼과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 활약을 펼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반기를 대표하는 국내 시상식 두 곳,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는 트로피를 놓쳤다. 빼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수상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빠진 사실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뜨거웠지만 외면당한 이병헌의 행보를 되짚어 봤다.


'조훈현 그 자체'였던 <승부>
흥행과 연기 모두 완승

영화 <승부>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영화 <승부>에서의 연기다. 이병헌은 바둑계의 전설 조훈현 9단을 연기하며 다시 한번 극장을 사로잡았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그는 절제된 감정선과 단단한 집중력으로 인물을 완벽히 구현했다. 관객은 그를 통해 조훈현이라는 인물의 승부욕과 고독, 제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후반, 유아인이 연기한 이창호와의 대국 장면은 “숨소리 하나까지 설계된 몰입감”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강렬했다.

영화 <승부>

흥행 성적도 이에 걸맞았다. 사생활 논란으로 유아인의 프로모션 부재, 전통적 비수기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승부>는 215만 관객을 모으며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2025년 상반기 기준 흥행에 성공한 몇 안 되는 한국 영화로 기록됐다. 그럼에도 백상예술대상에서는 <파일럿>의 조정석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이병헌은 트로피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3
글로벌 존재감의 상징

<오징어 게임> 시즌2

시리즈 부문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단연 압권이었다. 이병헌은 시즌2에 이어 시즌3에서도 ‘프론트맨’ 황인호 역으로 등장해 스토리의 핵심 축을 맡았다. 죽음을 통제하는 차가운 권력자에서,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로의 전환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캐릭터에 인간적 결을 더했다. 눈빛으로 드러내는 내면과 조용히 폭발하는 감정 연기는 시즌 전체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3

특히 시즌3에서는 이정재가 연기한 성기훈과 정면으로 대치하며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하는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이 시리즈는 전 세계 넷플릭스 TV 부문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오징어 게임>의 파급력을 입증했고, 그 중심에 이병헌이 있었다.

 목소리 하나로 압도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킹 오브 킹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귀마'

배우로서의 경계를 허문 작품도 있다. 바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영화 <킹 오브 킹스>다. 전자에서는 K-팝 스타들이 악령과 맞서는 오컬트 액션에서 ‘귀마’라는 빌런 캐릭터를 맡았다. 안효섭이 연기한 주인공 진우를 압박하는 악의 화신을 구현하며, 한국어와 영어 더빙을 모두 소화해 글로벌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목소리만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남긴 이병헌은 이 작품으로 애니메이션 더빙이라는 새로운 지평에 발을 디뎠다.

영화 <킹 오브 킹스>

최근 개봉한 영화 <킹 오브 킹스>에서도 그는 목소리 연기를 이어갔다. 이 작품은 예수의 삶을 찰스 디킨스의 시선으로 풀어낸 서사로, 북미에서 이미 800억 원의 수익을 거두며 주목받았다. 이병헌은 디킨스의 목소리를 맡아 신념과 감정을 동시에 전하며 또 하나의 인생작을 만들었다. “불교 신자지만,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선택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시상식은 외면했지만
대중은 인정하는 이름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시리즈어워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 <승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

이처럼 상반기만 해도 이병헌은 OTT와 극장, 실사와 애니메이션 등 장르를 넘나들며 5편의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그중 두 작품은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1위를 차지했고, 한 작품은 손익분기점을 넘긴 흥행을 거뒀으며, 두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영역에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제4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이병헌 (사진: KBS 중계 영상 캡처)

그럼에도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는 모두 빈손이었다.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승부>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트로피는 <파일럿>의 조정석에게 돌아갔고,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도 수상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특히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이병헌의 예전 춤 영상이 무대에 활용되자, 일부에선 “오프닝에만 이용당한 게 아니냐”는 씁쓸한 반응도 나왔다.

제61회 백상예술대상 이병헌 (사진: JTBC 중계 영상 캡처)

하지만 정작 본인은 늘 진심이었다. 백상예술대상에서는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품격을 지켰고,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는 후배의 무대에 너그러운 미소로 응답했다. 트로피보다 더 빛나는 건 그런 순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끝나지 않은 2025년의 기록

영화 <어쩔수가없다>

2025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반기에는 박찬욱 감독과 21년 만에 호흡을 맞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공개될 예정이다. 해고된 가장의 고군분투를 다룬 이 작품은 베니스국제영화제 진출 가능성도 거론되며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병헌 (사진: BH엔터테인먼트)

단단한 몸짓, 조용한 연기, 깊은 울림. 이병헌은 상을 떠나 시대가 가장 먼저 찾는 배우다.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시리즈어워즈가 외면했을지 몰라도 2025년은 분명히 이병헌의 해다.

나우무비 심규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