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PD가 어린 시절 만화를 통해 배운 것들

박찬 2026. 5. 1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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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서 작가컴퍼니 본부장이 생각하는 좋은 웹툰 IP의 단서, 그리고 그것을 설계하기 위한 믿음과 리듬.
김은서 웹툰사업본부 본부장 / 웹 콘텐츠 전문 에이전시 작가컴퍼니 JC미디어 웹툰사업본부장. 〈중증외상센터 : 외과의사 백강혁〉 〈첫정〉 〈나만의 고막남친〉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 〈슈퍼스타 천대리〉 등을 제작했다.

Q : 스스로 웹툰 PD를 ‘IP를 만드는 프로듀서’라고 표현한 적 있다. 맡고 있는 직무를 소개하자면

A : 웹툰이라는 IP를 기준으로 보면, 기획부터 제작, 연재,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함께 보는 역할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그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독자에게 닿고, 또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는 일이다.

Q : 웹 콘텐츠 에이전시인 만큼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오는 환경일 텐데, 스스로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어떻게 유지하나

A : 오히려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한 번쯤 멈춰 서서, 예전에 좋아했던 작품들을 다시 펼쳐본다. 왜 좋았는지, 어디에서 감정이 움직였는지를 다시 짚다 보면 흐릿해졌던 선정 기준이 또렷해진다.

Q : 웹툰 PD를 ‘아이돌을 만드는 프로듀서’에 비유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좋은 IP란 어떤 상태의 ‘원석’을 정의할까

A : 다양하다. 이미 빛나고 있는 작품도 있고, 아직은 조용히 가능성만 품고 있는 작품도 있다. 둘 다 좋은 원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바라보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이미 빛을 내고 있다면 그 매력을 더 멀리 보내는 쪽에 집중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 빛이 보이도록 시간을 들인다.

Q : ‘이 웹툰은 잘 된다’고 판단하는 단서 같은 게 있는지

A : 설명이 아니라 설득이 되는 순간이 있다. 이야기를 이해하는 걸 넘어서, 어느새 그 인물의 감정에 따라가고 있을 때. 캐릭터의 욕망이 분명하고, 그 욕망이 다음 장면을 자연스럽게 끌고 갈 때, 그 흐름 안에 독자도 함께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Q : 인기작의 프리퀄 〈중증외상센터 : 외과의사 백강혁〉의 연재를 담당했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이후와 프리퀄을 거치며, ‘백강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A : 프리퀄부터 시리즈를 만났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초기의 백강혁은 기능적으로 완성된 캐릭터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연기와 연출이 더해지면서 감정의 결이 보강됐고, 훨씬 더 사람다운 밀도로 다가왔다. 그가 짊어진 무게와 사명감도 한층 선명하게 느껴졌고. 반면 내가 담당한 프리퀄에서는 더 날것에 가까운 백강혁을 볼 수 있다. 거칠고 인간적인 선택들이 드러나면서, 지금의 백강혁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Q : 〈중증외상센터 : 골든 아워〉 또한 웹 소설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 웹 소설의 웹툰화를 결정할 때 어떤 식으로 장면이 떠오르나

A :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컷 단위로 이어지는 흐름이 떠오른다. 특정 장면이 자연스럽게 분해되면서 웹툰처럼 연결되는 느낌이 들 때, 이건 매체에 잘 맞는 이야기라고 판단한다. 특히 감정이 살아 있는 포인트나 임팩트 있는 장면이 구체적인 컷으로 그려질 때 확신이 생긴다.

Q : 웹툰은 주간 연재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리듬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있을까

A : 두 가지다. 하나는 한 화 안에서 독자가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완결감이 있는지. 단순히 끊기는 게 아니라, 하나를 봤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엔딩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다. 억지로 끊는 게 아니라, 서사와 감정의 흐름 안에서 이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질 때 리듬이 살아난다.

Q : 요즘 독자들이 강하게 반응하는 ‘이세계’ ‘빙의’ ‘회귀’ 같은 서사는 어떻게 보나

A : 일시적인 유행이라기보다는 더 깊은 감정에서 나온 흐름이라고 본다. 현실은 쉽게 답답해지고,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해답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 지점에서 콘텐츠는 일종의 해소 역할을 한다. 이세계나 회귀 같은 설정은 그 답답함을 빠르게 풀어주는 장치이기 때문에 강한 반응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Q :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순간은 언제인가

A : 당연히 재미있는 원고를 만났을 때다. 특히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작품이 독자 반응으로 이어질 때 만족감이 크다. 개인적인 감각과 시장의 반응이 맞닿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게 된다.

Q : 마지막으로, 지금 웹툰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세계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어린 시절 만화를 통해 많은 걸 배웠다. 기쁘고 슬픈 순간을 함께 겪으면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 기억이 이 일을 시작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래서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께도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처음 이 일을 좋아하게 만들었던 마음을 오래 가져갔으면 한다. 그 마음이 결국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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