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서 월드컵 가는 외인…‘요르단 김민재’ 뿐이라네요

피주영 2026. 5. 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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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출신의 FC서울 수비수 야잔 알아랍. 생애 처음으로 밟는 6월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설렘이 가득하다. 강정현 기자

“산전수전 다 겪은 입장에서 긴장 같은 건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막상 개막이 다가오니 무척 떨린다. 월드컵의 중압감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다음달 개막하는 북중미 월드컵에서 생애 처음 본선 무대를 밟을 프로축구 K리그1 FC서울의 외국인 수비수 야잔 알아랍(요르단)이 솔직히 털어놓은 소감이다. 이번 대회부터 본선 참가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나면서 ‘아시아의 축구 변방’ 취급을 받던 그의 조국 요르단도 사상 최초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요르단. 그 중심엔 야잔이 있다. 뉴스1

야잔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요르단대표팀에서도 ‘수비의 핵’으로 활약 중이다. 아시아 지역 예선 내내 디펜스라인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본선 진출 과정을 이끌었다. 야잔의 월드컵 본선 출전은 K리그에도 의미가 있다. 올 시즌 K리그1(1부)·2(2부)를 통틀어 프로축구 무대에서 활약 중인 외국인 150여 명 중 월드컵 본선 출전을 예약한 선수는 야잔이 유일하다. 최근 경기도 구리시 소재 서울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그는 “생애 처음 경험하는 월드컵에서 조국 요르단은 물론이고 K리그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나설 것”이라면서 “내친김에 월드컵 사상 첫 승을 반드시 경험하고 돌아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지난 2024년 서울 유니폼을 입은 야잔은 탄탄한 체격 조건(1m88㎝ 90㎏)과 폭발적인 스피드, 전방으로 향하는 날카로운 패스를 겸비한 다기능 수비수다. K리그 팬들은 한국축구대표팀 수비 기둥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며 ‘요르단 김민재’라 부른다.

야잔은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메시와의 대결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강정현 기자

올 시즌 야잔이 이끄는 서울의 포백 수비 라인은 K리그1 12개 팀 중 최소 실점(12경기 9실점)을 기록 중이다. 탄탄한 수비를 앞세운 서울은 1983년 창단 이후 최초의 개막 4연승을 포함해 시즌 초반 12경기를 8승 2무 2패로 마치며 승점 26점으로 리그 선두에 올랐다. “지난 2016년 이후 10년 만에 우승에 도전할 적기”라는 이야기가 구단 안팎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야잔은 “월드컵을 준비하느라 소속팀 성과를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K리그1 우승’과 ‘월드컵 1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쪽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반 순항 중인 서울의 우승 도전과 달리 요르단이 월드컵 첫 승으로 가는 여정은 지극히 험난할 전망이다. 본선 J조에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 ‘다크호스’ 오스트리아, ‘아프리카의 강자’ 알제리 등과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요르단이 3전 전패로 일찍 보따리를 쌀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야잔(왼쪽)은 요르단 축구 꿈나무들에게 영감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EPA=연합뉴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의 맞대결을 포함해 부담스런 승부를 줄줄이 앞뒀지만, 야잔의 생각은 다르다. “메시가 수퍼스타라는 건 인정한다. 그래도 축구는 일대일이 아니라 11대11로 맞붙는 스포츠”라 언급한 그는 “헝그리 정신을 앞세워 ‘원 팀’으로 똘똘 뭉친 요르단도 얼마든지 기적을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꺾는 장면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우리라고 사고 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수비수지만 세트피스 찬스에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골도 곧잘 넣는 그는 “월드컵에서 요르단 축구 역사에 남을 득점의 주인공이 되어도 근사할 것 같다”면서 “기왕 골을 넣는다면 상대팀이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였으면 좋겠다”며 껄껄 웃었다.

잠시 흐뭇한 상상을 즐기다 이내 냉철한 수비수 표정으로 돌아온 그는 “대진표를 보니 한국과 요르단이 모두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16강에서 마주할 가능성이 있더라”면서 “요즘 매일 밤 꿈의 무대에서 두 팀이 맞붙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잠든다”며 거듭 미소 지었다.

구리=피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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