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휴대폰 수거 인권침해 아니다? 실망스런 인권위 그리고 언론
[고영주 기자]
▲ 취임사 하는 안창호 인권위원장 안창호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이 9월 9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인권위원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고교 휴대전화 수거 "인권침해 아냐"…10년 만에 판단 바꾼 '안창호 인권위'(한겨레)
유네스코는 최근 '세계교육현황보고서'의 휴대전화 관련 자료 항목에서 "전세계적으로 13%의 국가가 법률을 통해, 14%의 국가가 정책을 통해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며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로부터 학생들을 마냥 보호하는 것은 그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 미래를 염두에 둬서 보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살펴보고,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조절하고 적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강조는 필자)
문제의 보고서는 지난해 7월 발표된 <세계 교육 모니터링 보고서 2023 교육 분야에서의 기술: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GLOBAL EDUCATION MONITORING REPORT 2023 Technology in education: A TOOL ON WHOSE TERMS?)>이다. 이 보고서의 내용이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 혼란스럽다. 보고서를 직접 확인해 봐야 알 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자가 보고서의 주장에 더 가깝다.
금지는 능사가 아니라는 보고서의 논조
보고서가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권고했다는 해석에 기울어진 기사들이 주로 인용하는 내용은 기술에 대한 거버넌스와 규제를 다룬 부분에 들어 있다. 이는 학생을 우선에 두게 되면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은 논쟁적이지만 규제는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이 보고서의 한국어 요약본에도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가 필요보다 부족하다는 뉘앙스로 기술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바일 기기에 근접하는 것만으로도 학생을 산만하게 만들어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14개국에서 나타났지만,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 국가는 4곳 중 1곳도 되지 않는다.")
"데이터 프라이버시, 안전과 복지에 대한 우려들이 또한 학교 내 기술 사용 특히 어린 나이의 학생들의 사용에 대한 논쟁을 뒷받침하고 있다. 학교내 스마트폰 사용은 논쟁적이다.(필자 강조) 벨기에(Baert et al., 2020), 스페인(Beneito and Vicente-Chirvella, 2020) 그리고 영국(Beland and Murphy, 2016)의 연구들에서는 학교 내 휴대전화 금지가 특히 낮은 성적의 학생들에게서 학업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Concerns over data privacy, safety and well-being also underpin debates about the use of some technology in schools, especially by students at young ages. The use of smartphones in schools is contentious. Studies from Belgium (Baert et al., 2020), Spain (Beneito and Vicente-Chirivella, 2020) and the United Kingdom (Beland and Murphy, 2016) show that banning mobile phones from schools improves academic performance, especially for low-performing students.)
이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거의 넷 중 하나의 국가가 이러한 금지 방침을 법률 또는 정책으로 도입하고 있다. 특히 13%의 나라들에 휴대전화를 금지하는 법률이 있고, 14%에 휴대전화를 금지하는 정책이 있다.
▲ Cellphone Skype on laptop |
ⓒ tirzavandijk on Unsplash |
"기술 통합이 학습을 향상시키지 못하거나, 학생의 복지를 악화시킨다면 학교 내 기술 금지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학교 내에서 기술을 이용하여 학습하는 것과 이에 수반되는 위험성은 금지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다.(필자 강조) 첫째, 학교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은 허용되지 않는지에 대해 정책은 명확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행동에 있어 명확성과 투명성이 없다면 학생은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이런 영역에서의 결정은 적절한 증거가 뒷받침되는 대화를 필요로 하며, 학생의 학습과 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둘째, 이런 새로운 기술들이 학습에서 하는 역할에 대한 명확성과 학교에 의한, 그리고 학교 내에서의 그 기술의 책임감 있는 사용에 관한 명확성이 있어야 한다. 셋째, 기술 사용으로 인한 위험과 기회를 배우고, 비판적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과 함께, 그리고 기술 없이 살아가는 법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로부터 학생들을 차단하는 것은 그들을 불리한 입장에 빠뜨릴 수 있다. 이러한 이슈들을 미래를 향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며, 세계의 변화에 맞춰 조정하고 적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문: Banning technology from schools can be legitimate if technology integration does not improve learning or if it worsens student well-being. Yet, working with technology in schools, and the accompanying risks, may require something more than banning. First, policies should be clear on what is and is not permitted in schools. Students cannot be punished if there is no clarity or transparency on their required behaviour. Decisions in these areas need conversations supported by sound evidence and involve all those with a stake in students' learning. Second, there should be clarity on the role these new technologies play in learning and on their responsible use by and within schools. Third, students need to learn the risks and opportunities that come with technology, develop critical skills, and understand to live with and without technology. Shielding students from new and innovative technology can put them at a disadvantage. It is important to look at these issues with an eye on the future and be ready to adjust and adapt as the world changes.
보고서는 금지가 적절한 해결책이 되는 기준으로 학습 향상과 학생 복지를 제시하면서도 학생의 입장에서는 금지 이상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금지는 그를 위반할 시 처벌을 동반한다. 따라서 보고서는 그런 처벌에서 교육적, 인권적으로 고려할 부분들을 제시하며 금지 정책이나 법률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중요한 권고들을 담았다.
가디언의 부분적 인용부터 시작된 보도
지난해 이 보고서를 먼저 보도한 것은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다. 가디언이 "유엔 보고서는 교실 붕괴 해결, 학습 향상, 및 사이버 괴롭힘 방지를 위해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라고 씀으로써 보고서의 다른 지적이나 논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학습자를 우선적으로: 유네스코가 학교 내 스마트폰 금지를 전 세계에 요구" '(Put Learners First': Unesco calls for global ban on smartphones in schools (2023.7.26.)) 가디언) 해당 보도 이후 국내의 거의 모든 언론이 비슷한 논조를 가진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가디언의 기사 제목대로 학습자를 우선하려 했다면, 보고서가 더 강조한 법률이나 정책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에 더해 가디언은 유네스코 보고서를 소개한 기사의 관련 보도로 '규제를 시작할 겁니다: 학교내 휴대전화 금지에 찬성하는 교사들(I would crank up the restrictions: teachers on banning phones in school)'의 링크를 제공했다. 학습자들의 의견이나 학습자들의 관점에서 스마트폰 금지를 다룬 글 자체를 소개하지 않으면서 편향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특히 한국 언론들에 더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논리적 비약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주장한 것이 곧 스마트폰 수거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을 수거하거나 압수하는 데에는 소유권 제한의 문제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더 신중해야 할 인권위가 이 보고서를 근거로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니 더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제 이 결정으로 피해를 보게 될 사람은 누구인가? 이미 역사를 통해 나는 알고 있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또는 교사의 자의적 판단으로 스마트폰 사용 금지 교칙을 어겼다고 처벌받았던 한국의 학생들이다. 지금이라도 교사들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야 봐야 한다.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또는 교육적 목적이라는 미명하에, 분명하지 않은 기준으로 학생의 스마트폰을 한 달 간 압수하거나, 학생을 수업에서 분리 조치하거나, 수행평가 점수를 깎는 일이 없었는지 말이다. 나아가 청소년을 만나는 누구나 청소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스마트폰 뿐 아니라 화장품, 담요, 외투, 심지어는 소설책 등을 압수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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