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압박'에 우는 스물넷...공대생 "그냥 망한 것"

차원 2024. 2. 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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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4주년 기획_나는 2000년생] 그들이 로스쿨, 회계사로 눈 돌리는 이유

2000년 2월 22일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창간 24주년을 맞았습니다. '청년'이 된 오마이뉴스가 같은 해에 태어난 대한민국 2000년생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차원 기자]

2024년 갑진년은 푸른 용의 해다. 오마이뉴스(2000년 2월 22일 창간)와 동갑인 우리 2000년생들은 태어난 해를 제외하고 두 번째 용의 해를 맞았다. 2012년 첫 번째와는 달라진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는 바로 '취업'이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나를 포함 2000년생 친구 다섯이 모여 각자의 취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경력 없는 신입은 안 뽑아... '중고 신입' 선호 현상 지속"
 
▲ 이차전지 특화기업 취업 매칭데이 1월 24일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동 포스텍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이차전지 특화기업 취업 매칭데이' 현장 모습
ⓒ 연합뉴스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와 '선취업 후진학' 모델로 사모펀드에 취업했던 A는 이후 한 배달 애플리케이션 회사를 거친 후 현재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먼저 취업을 선택한 이유는 대학 졸업장이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노력만큼의 값어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진학 여부도 고민했지만, 대졸을 기본으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에서 일단 대학은 나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취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 회사라는 조직에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A는 "나를 갈아 넣은 시간"이라고 지친 마음을 표현했다. 업무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과도하고 불필요한 '사내 정치'로 대표되는 조직 문화가 그를 가장 괴롭게 했다.

그는 "그런 비효율적인 일에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힘들었다"면서 "다시 취업할 때도 관련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좋은 상사들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 배운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는 점도 덧붙였다.

선취업 후진학을 선택한 또 다른 친구 B는 여의도 증권사에 들어간 후 계속 근무 중이다. 지금은 평일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대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B 역시 대학 진학 여부를 고민했지만, 너무 당연한 듯 '대학은 어디 다니냐'고 묻는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처음 취업했을 때만 해도 취업 시장이 활발했는데,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취업이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회사가 직원을 많이 뽑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경력이 없는 신입보다 '중고 신입'을 많이 뽑는 기조도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변 직원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경력과 무관한 직무로 회사를 옮기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워낙 취업이나 이직이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먼저 취업을 선택하길 잘한 것 같냐는 질문에 A와 B는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주변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대부분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은 '넘쳐나는 비정규직, 사라지는 청년일자리' 속에 시름하고 있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이후 '멘붕' 빠진 공대생들"
 
 지난 13일 기자와 만나 취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2000년생 동갑 친구들
ⓒ 차원
 
다음으로는 한 수도권 대학교 공과대학에 다니며 졸업을 앞둔 C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과거 휴학 기간 중 아르바이트로 공장에 취업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조공(보조작업자)으로 일했는데, '노가다 세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시끄럽고 더운 공장 안에서 무거운 옷을 입고 일하다가 밖으로 나가면 그냥 도로에 쓰러져 눕기 일쑤였다. 점심시간에는 옆 공장에서 누가 떨어져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왔다.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공장 바로 옆 연구 라인의 직원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통 '공대면 취업은 걱정 없겠네'라고 이야기하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이후 상황은 더 악화했다. C는 "그냥 망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이 안 나오니까 지원도 없고, 이전에 분위기가 좋았던 분야들도 지금은 찬 바람만 분다고 했다. 특히 공대생들 가운데 연구개발 쪽으로 진로를 정하려고 했던 친구들은 '멘붕'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과거 비행기를 보며 꿈을 키웠던 C는 드론 분야로 취업을 목표하고 있다.

D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는 소위 '명문대'에 다니고 있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땐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취업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상상을 할 만했던 것이, 당시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누구 선배가 어느 대기업에 붙었다는 이야기가 학과에 자주 들렸다. 그러나 지금 동기들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높은 학점만으로는 모자라서 다양한 대외활동·학회·자격증 등 '스펙'을 쌓으려고 노력하지만, 지속적인 '스펙 상향 평준화'로 이제 웬만한 스펙으로는 인정받기 어렵다.

결국 D는 공인회계사시험(CPA) 준비에 들어갔다. 그 말고도 많은 동기들이 공무원, 로스쿨, 회계사 등으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스펙 압박'을 느끼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런 시험공부를 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는 심정도 덧붙였다.

"일 위해 삶 바치고 싶지는 않아"
 
 친구들은 취업과 함께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에 관한 걱정들을 쏟아냈다
ⓒ 차원
 
흔히 'MZ세대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고들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럴까.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A는 워라밸도 중요하지만, 내 목표와 성과 그리고 보상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업무와 함께 내가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B는 업무에 관한 부담이 퇴근 후에까지 있는 것은 싫다고 말했다. 퇴근 후에는 업무에서 벗어나 제2의 하루를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C와 D도 업무로 인해 과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일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가 되어야지, 삶을 일에 바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말했다.

한편 인터뷰를 마친 뒤, 공기업에 다니고 있는 또 다른 친구 E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이쪽도 취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며 대부분 우리 나이 또래 청년들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E가 다니고 있는 기관은 최근 몇 년째 정규직 정원을 늘리지 않고, 업무 발생 시 계약직을 뽑아 '때우는' 경우가 많다며 기관이 정규직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 반가운 와중에도, 취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우리들의 얼굴에는 웃음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학문과 취업에 도움이 되기보다 서열화의 도구가 된 대학에 대한 문제의식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이들을 '낙오자'로 낙인찍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지금도 취업을 위해 애쓰는 모든 우리 2000년생 친구들을 응원하며, 이 힘든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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