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제도 함께 바꿔요”...MZ노조가 회사와 맞서는 방법
“현업 TASK 보고서를 쓰실 때는 ‘내가 어떤 일을 많이 했다’가 아니라 정량적으로 수치를 써주시는 게 좋아요” 온라인 화상 회의 플랫폼에서 노동조합(노조) 부위원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량 향상 프로그램(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PIP) 대상 조합원에게 대응 방법을 강의하는 자리다. PIP는 인사고과 등을 낮게 받은 직원을 대상으로 재교육을 실시하는 이른바 ‘저성과자 프로그램’이다. 필요하다는 시선도 있지만, 지난 2010년대 각 기업에 도입된 후 불투명한 기준과 부당한 교육내용 등으로 비판받아왔다. 노조에서는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PIP 폐지를 촉구해왔다. PIP를 대하는 MZ노조의 대응은 기존과 달랐다.
LG전자사람중심사무직노조(사람중심노조)가 사내 PIP에 공동 대응하는 시스템을 꾸렸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해고를 막겠다는 취지다.
24일 사람중심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진행된 PIP에서 대상자 40명 중 34명이 통과, PIP를 졸업했다. 상반기 진행된 교육에서 80명 중 1명이 졸업한 것에 비하면 높은 성과다.
LG전자는 지난 2014년부터 사내 사무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PIP를 도입했다. 3년 동안 두 번 이상 C 이하의 고과를 받은 직원 중 대상자를 선정한다. 대상이 되면 1~2주간 교육을 받는다. 이후 3개월간 현업 업무(TASK)를 진행, 보고서 등을 제출한다. 업무가 끝나면 조직책임자와 인사팀이 대상자의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통과하지 못할 경우, 대기발령 상태가 된다. 이후 대상자를 원하는 새로운 팀 또는 업무를 찾지 못하면 해고 절차를 밟게 된다.
지난 2021년 설립된 사람중심노조는 지난해 3월부터 PIP제도의 문제점을 파악, 같은 해 6월부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2200여명의 조합원 중 PIP 대상자가 있는지 살폈다. 개인 인터뷰를 통해 과거 고과와 경력, 상사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인터뷰했다. 과거 고과에서 높은 점수를 받던 이가 상사와의 불화로 낮은 점수를 받게 된 정황 등을 파악했다. 1~2주간 실시되는 교육도 문제였다. 커뮤니케이션 스킬, 사람과의 관계, 인성 강화 등이 주 내용이었다. 저성과자의 업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질의하는 공문을 같은 해 7월 사측에 두 차례에 걸쳐 보냈다. 사측은 해를 넘긴 현재까지도 답변을 주지 않았다.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업무가 끝난 평일 저녁과 주말, PIP 대상 조합원에게 교육을 실시했다. 노조가 실행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를 설명하고 법률상담을 지원했다. 노무사와의 만남 등도 적극 주선했다. 보고서 작성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설명하는 자리도 가졌다. 텔레그램 채팅방을 운영하며 정기모임을 주도해 조합원을 격려했다. “같이 대응하면 헤쳐 나갈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웠다. 이같은 지원은 지난해 6월 말부터 지난주까지 8개월가량 이뤄졌다.
하반기 기준 PIP 대상 조합원은 6명이었다. 노조의 적극적인 지원에 PIP 교육을 받던 14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조합원 20명 중 18명은 지난해 12월 현업 업무 평가를 통과, PIP를 졸업했다.
사람중심노조는 올해 더 적극적으로 PIP에 대응할 방침이다. 노조에서는 현재 LG전자가 PIP 대상자를 선정 중인 것으로 파악했다. 최대성 사람중심노조 부위원장은 “혼자서 사측에 대응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며 “노동자를 지키는 것이 노조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에서 저성과자에 대한 기준을 공개하고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교육을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현재는 선정 과정과 이유가 불투명하다. 누구든 그 대상자가 될 수 있다. 교육도 합당하지 않다”고 질타했다.
LG전자는 해당 프로그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LG전자 관계자는 “PIP는 수년간 성과가 저조한 인원을 대상으로 사내 교육을 통해 본인 업무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라며 해고가 목적이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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