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와 전여빈의 호연만으로는 채울 수 없었던 빈틈

조회 8,3072025. 1. 29.
사진 = 영화 '검은 수녀들' ⓒ NEW

<검은 사제들>(2015년)이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면, 그로부터 10년 뒤 선보인 스핀오프 <검은 수녀들>은 그 장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다.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모으려 했으나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한 이 작품은, 기대를 모았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검은 수녀들>은 어느 어두운 공장에서 시작된다.

'안드레아' 신부(허준호)가 한 소년에 대한 구마 의식을 진행하고 있지만, 악령의 강력한 힘 앞에 무력해진다.

이때 담배를 피우며 등장하는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성수통을 들고 구마 현장으로 들어가지만, 결과적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데 실패한다.

이후 '유니아'는 또 다른 소년 '희준'(문우진)의 몸에 깃든 악령이 단순한 잡귀가 아닌 '12형상' 중 하나라고 직감한다.

'12형상'은 <검은 사제들>에서도 등장했던 극악무도한 악령들로,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구마 사제 '김범신'(김윤석)과 '최준호'(강동원)는 현재 바티칸의 비밀 임무로 부재중이다.

그사이 '희준'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위험해진다.

그의 어머니는 '희준' 몸에 깃든 악령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런데도 가톨릭 교단은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워 '유니아'의 구마를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희준'의 담당의인 '바오로' 신부(이진욱)는 '희준'의 증세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하며, 구마 의식 자체를 강하게 반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니아'는 '바오로' 신부의 제자인 '미카엘라' 수녀(전여빈)를 만난다.

'유니아'는 '미카엘라'가 자신과 같은 영적 능력이 있음을 간파하고, '희준'을 병원에서 빼내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처음에는 '유니아'의 무모한 행동에 반발하던 '미카엘라'는 점차 '희준'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되며 마음을 바꾼다.

'유니아'의 주도하에 두 수녀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가톨릭의 구마뿐 아니라 한국 무속신앙의 힘도 빌리는 것.

전직 수녀였다가 지금은 무당이 된 '효원'(김국희)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바닷가에서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미카엘라'는 자신이 어릴 적 받았던 타로로 점을 치며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려 한다.

<검은 수녀들>은 크게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첫째는 오컬트 장르 특유의 공포와 긴장감이며, 둘째는 가톨릭 교단 내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여성들의 연대, 마지막으로는 가톨릭과 한국 무속신앙의 만남이다.

이 세 요소는 각각 매력적인 서사적 가능성을 품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영화는 이를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한 채 표면만 훑고 지나간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오컬트 장르물로서의 완성도다.

<검은 사제들>이 한국형 오컬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검은 수녀들>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구마 의식 장면들은 긴장감 없이 나열되며, 악령이 내뱉는 과도한 욕설과 반복되는 물세례는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더욱이 악령의 존재가 주는 공포나 초자연적 현상이 주는 두려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육체적 폭력이나 언어적 위협이 공포를 대신하는데, 이는 오컬트 장르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다.

두 번째 축인 여성 연대의 서사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송혜교가 연기하는 '유니아' 수녀와 전여빈이 맡은 '미카엘라' 수녀는 각각 매력적인 캐릭터성을 지녔음에도, 이들의 관계나 내면의 변화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

특히 '유니아' 수녀가 왜 그토록 목숨을 걸고 소년을 구하려 하는지, '미카엘라' 수녀는 어떤 계기로 그토록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서사가 부족하다.

이는 결국 두 인물의 연대가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톨릭과 무속신앙의 만남이라는 세 번째 축은 가장 신선한 시도였으나, 역설적으로 가장 피상적으로 다뤄진다.

영화는 구마에 무속적 요소를 더함으로써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려 했으나, 이는 단순히 시각적 볼거리로만 소비될 뿐 깊이 있는 탐구로 이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지난해 개봉한 <파묘>가 보여준 한국적 무속 신앙의 강렬한 이미지들과 비교하면, <검은 수녀들>의 시도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의 얕은 서사를 어느 정도 메워주는 구원투수 역할을 한다.

송혜교는 <더 글로리>(2022년) 이후 또 한 번 강렬한 캐릭터 변신을 선보이며, '유니아' 수녀의 결연한 의지와 내면의 고뇌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전여빈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카엘라 수녀를 입체적으로 구현해 낸다.

그러나 이러한 배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초점 없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마치 여러 가지 맛을 한꺼번에 담으려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맛을 내지 못한 요리처럼, <검은 수녀들>은 다양한 요소들을 섞어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그 어느 것도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했다.

특히 아쉬운 것은 스핀오프작으로서 전작과의 관계다.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전작의 설정과 분위기를 답습하는 데 그치고 만다.

심지어 일부 장면들은 <검은 사제들>의 장면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마저 준다.

결론적으로 <검은 수녀들>은 야심 찬 기획이 빚어낸 반쪽짜리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오컬트 장르의 팬들에게는 긴장감이 부족할 것이고, 드라마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깊이가 아쉬울 것이며, 여성 서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완성도가 미흡할 것이다.

각각의 요소들이 가진 잠재력은 분명했으나, 이를 제대로 조화시키지 못한 채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이는 한국 영화계가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스핀오프 제작에서 보여주는 한계이기도 하다.

단순히 인기 작품의 세계관을 차용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스핀오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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