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도 워라밸도 아니었다... 진짜 퇴사 이유 감추는 청년들 [소셜 코리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조현재]
▲ 직장인 2명 중 1명은 퇴사하는 이유를 숨기는데, 숨긴 퇴사 사유 중 1위는 ‘직장 내 갑질 등 상사·동료와의 갈등’이었다. |
ⓒ 셔터스톡 |
지난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고용률은 63.3%, 실업률은 2.1%로 역대 10월 조사 중 가장 양호한 수치를 기록했다. 청년층 실업률도 5.1%로, 작년 10월보다 0.5% 포인트가 줄어 청년 실업 문제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통계를 자세히 보면 실상은 다르다. 실업률은 일을 하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경제활동인구 대비 실업자의 비율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활동인구 자체가 줄어들면 실업률이 개선된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즉, 일을 하지 않지만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가 늘어나면 통계상으로는 실업률이 낮아진 것처럼 나타나게 된다.
고용 통계에서 청년층의 '쉬었음'은 사뭇 무거운 상태다.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다른 구체적인 사유가 없으면서 일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5월 통계청 경제활동조사에서는 2030의 '쉬었음' 인구가 66만 명으로, 4050의 '쉬었음' 인구 61만 3천 명을 넘어섰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래 4월 기준으로 처음 벌어진 현상이었다. 이번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금도 60만 6천 명의 2030 인구가 '쉬었음' 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16일 '비상 경제 장관 회의 겸 수출 투자 대책 회의'에서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재학·재직·구직 단계별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1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쉬고 있는 청년들을 일자리로 이끈다는 계획이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실무인재 양성과 일경험 지원, 자립준비청년 지원에 배정했다. 심리상담을 통해 구직 단념을 예방하겠다는 청년성장 프로젝트 역시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청년과 기업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쉬는 청년의 78%는 퇴사자
이런 정책들이 정말 쉬는 청년들을 일터로 이끌 수 있을까? 먼저 어떤 청년들이 '쉬었음' 상태로 접어들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지난 1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쉬었음 청년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쉬었음 청년의 78%는 직장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었다. 즉, 직장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서 '쉬었음' 상태에 들어간 경우가 그렇지 않은 청년들에 비해 3배 이상 많았다.
같은 조사에서 제시된 쉬었음 사유로는 '원하는 일자리 찾기 어려움'이 32.5%로 가장 높았고, 뒤이어 '다음 일 준비'(23.9%), '몸이 좋지 않음'(18.2%) 순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청년들에게 충분한 직무·일 경험 정보를 제공해서 적절한 일자리에 취업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취업한 곳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오랫동안 근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는 걸까? '요즘 애들'이 돈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만 좇는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통계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한다. 잡코리아가 2022년 공개한 '직장인 퇴사 이유'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직장인들이 퇴사하는 가장 많은 이유는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44.0%)였다. 뒤이어 '조직문화가 맞지 않아'(32.0%)와 '연봉에 만족하지 못해'(30.0%)라는 답변이 나왔다. 반면 30대 직장인들은 '연봉에 만족하지 못해'(38.5%)가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상사·동료와의 불화'(31.6%), '회사의 비전이 낮아보여'(29.9%) 순이었다. 연봉과 워라밸이 중요한 요소이기는 했지만,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내용도 한 번 더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직장인 2명 중 1명은 퇴사하는 이유를 숨긴다는 조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퇴사 경험이 있는 직장인 22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퇴사한 직장인 52%가 정확한 퇴사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숨긴 퇴사 사유 중 1위는 '직장 내 갑질 등 상사·동료와의 갈등'(65.7%)이었다. 뒤이어 '기업문화·조직문화가 맞지 않아서'가 62.6%로 2위를 차지했다. 즉, 공개되는 퇴사 사유에는 직무와 연봉이 많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실제 퇴사 이유는 상사·동료와의 갈등과 조직문화 문제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양상은 어떨까? 잡코리아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2030 세대 퇴사 관련 게시물과 댓글 550여 개를 분석했더니 사이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사람, 상사, 관계, 꼰대, 갑질, 586 등 인간 관계 관련 키워드가 40%를 구성하고 있었다. 뒤이어 연봉, 월급, 야근과 워라밸 등이 따라왔다. 물론 대다수의 글은 "왜 그 정도 월급을 받고 그런 꼰대를 감수해야 하느냐"처럼 여러 키워드가 복합적으로 등장하는 경우였다.
▲ 청년들을 당장 일터로 이끄는 데엔 국가 정책의 역할이 유효할 수 있어도, 그들을 오래 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조직문화가 중요하다. |
ⓒ 셔터스톡 |
이들 결과를 종합해서 보면 요즘 청년들이 돈만 봐서, 워라밸만 추구해서 쉽게 그만둔다는 진단은 초점이 어긋난 셈이다. 다만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절반의 진실은 담고 있다. '요즘 애들'은 꼰대 상사와 야만적인 조직문화를 참지 않으니 말이다.
블라인드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의 퇴사 고민 글에는 이직처가 정해지기 전엔 나오지 말라는 조언이 항상 따라붙는다. 소속이 없으면 몸과 마음이 망가지기 쉽고, 새 직장과의 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청년들은 그런 불리한 상황을 알면서도 살기 위해 퇴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잡코리아의 2021년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직할 곳이 정해진 후 퇴사했다'는 사람은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퇴사한 청년 중 재취업에 실패한 이들이 '쉬었음'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유사한 해외 연구 결과들도 있다. 2022년 도널드 설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직장 내 '해로운 조직문화'를 직원들이 떠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해로운 조직문화는 보상보다 10배 이상 퇴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021년 맥킨지 조사에서도 나쁜 조직문화가 이직의 핵심 요인으로 제시되었다. 이런 결과를 고려했을 때 청년들을 당장 일터로 이끄는 데엔 국가 정책의 역할이 유효할 수 있어도, 그들을 오래 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조직문화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조현재 / 데이터 분석가(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 |
ⓒ 조현재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조현재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이며 통계와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분석하고 증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이며, 청년 노동, 청년 일자리 문제와 세대 갈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업계 3위 기업의 도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 국힘, 행정전산망 먹통 비판에 "문재인 정부 때도..."
- 장관 무더기 차출 뒤에 드리운 용산의 '청문회 공포'
- [단독] 황의조 불법촬영 혐의 피해자 "합의된 영상? 거짓말"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핵관전쟁
- 진짜 '수도권 험지 출마'는 이런 것... '대선 후보' 저격수의 활약
- 검사의 뒤끝 구형... 내년 총선 때문입니까?
- 가계빚 1875조...부동산 논란 빚은 '50년 만기 주담대' 영향?
- "거부권 행사는 국민 거부" 윤 대통령에 '노란봉투법' 공포 촉구한 홍익표
- 국민의힘 "민주당과 권역별 병립형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