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장비 싹쓸이했다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김규환 2024. 9. 1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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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올 상반기 반도체 장비 조달 규모 무려 33조원
한국·대만·북미·일본 모두 합친 규모보다 많아
서방 반도체 장비 새 규제 실시 전에 선취매 나서
和蘭. 반도체 필수장비 수출, 유지·보수도 금지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2년 8월 백악관 잔디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지원책을 담은 반도체과학법에 서명하자 지켜보던 의원들과 기업인들이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중국이 반도체 장비 사재기에 ‘올인’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목을 매고 있는’ 중국이 새 규제 시행 전에 반도체 장비를 우선 구입해 놓고 보자는 이른바 선취매(先取買)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올해 상반기(1~6월) 반도체 장비 조달 규모는 247억 3000만 달러(약 33조원)로 한국과 대만, 북미, 일본을 모두 합친 규모(236억 8000만 달러)보다 많았다고 미국 경제전문 CNBC방송이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 5일 보도했다. 2분기만 떼어놓고 봐도 중국의 반도체 장비 조달 규모는 122억 달러로 한국(45억 2000만 달러)과 대만(39억 달러), 일본 (16억 1000만 달러)보다 훨씬 많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구매는 미국이 2년 전 수출통제 조치를 실시한 이래 급증했다. 연간으로 2022년 280억 달러에서 2023년 366억 달러로 30.7%나 증가했고 올해도 350억 달러가 넘어설 전망이다. CNBC는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이뤄서 서방 규제로 인해 핵심 기술에 접근이 제한되는 위험을 피하려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고 분석했다.

미 정부는 앞서 2022년 10월 ▲18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급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 ‘화들짝 놀란’ 중국은 반도체 제조 역량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 장비 구매에 총력전을 펼쳤다.

이에 따라 글로벌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 4곳의 중국 매출액은 2022년 말 미국의 수출통제 이후 2배로 늘어났다고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BofA가 분석한 장비업체는 네덜란드의 ASML를 비롯해 미국의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KLA 등이다.

특히 ASML의 올해 2분기 중국 매출 비중은 무려 49%에 달한다. 대중국 수출금액은 23억 유로(3조 4000억원)로 전 분기 19억 유로보다 21% 증가했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의 2022년 4분기 중국 매출액 비중은 전체 매출액 가운데 17%였으나 올해 1분기에는 41%로 급증했다. 보고서는 "첨단기술 가운데 반도체 기술은 미·중 무역긴장의 한가운데 있다"며 "긴장이 더욱 고조되면 관련 리스크(위험)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018년 4월 26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후베이성 우한에 위치한 우한신신반도체(XMC) 제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 신화/뉴시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 영자신문 글로벌타임스(GT)도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의 중국 매출 비중이 43%에 달한다고 전했다. 전년보다 22%포인트(p)나 상승했다. 램 리서치의 중국 매출액 비중 역시 1월부터 3월까지 20%p나 증가한 42%를 기록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지난해 기준 컴퓨터용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장비수입액은 전년보다 14%가 증가한 40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관련 통계작성을 시작한 2015년 이후 두번째로 많은 규모다.

지난해 중국의 전체 수입액이 5.5%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도체 장비수입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부와 반도체 업계가 반도체 자급자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싹쓸이는 새로운 규제 시행을 앞둔 지난해 말 중국의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수입이 급증했던 게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시행될 200~280㎚의 상대적으로 파장이 긴 심자외선(DUV)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를 앞두고 중국 기업들이 대거 사재기에 나선 까닭이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국의 ASML DUV 장비 수입은 전년보다 1000% 증가한 11억 달러에 이른다.

알렉스 카프리 싱가포르 국립대 선임 강사는 “미국이 대선을 앞두고 추가 수출제한을 할 위험에 대비해 선제적 조치로 반도체 제조 장비를 비축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쩡루이위(曾瑞楡·Clark Tseng) SEMI 선임 이사는 "올해 하반기에도 물량 확보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에는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과도한 투자로 인해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결국은 중국 외 업체들에 가격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황한 네덜란드는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에 두팔을 걷었다. 네덜란드 정부가 지난 6일 ASML의 구형 노광장비(자외선을 이용해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를 새겨넣는 장비)에 대해서도 수출을 통제하기로 선언한 것이다.

ASML이 공개한 차세대 노광장비인 하이-NA EUV. ⓒ 연합뉴스

중국이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ASML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첨단 미세회로 공정에 필요한 10∼124㎚에 해당하는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가운데 기존 미세회로 공정에 사용되던 DUV 노광장비의 절반 이상을 중국 반도체 생산 업체에 수출해 왔다.

레이네트 클레이버르 네덜란드 통상개발협력부 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유럽연합(EU) 역외수출시 정부 허가가 필요한 반도체 장비 대상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술 발전으로 인해 현재의 지정학적 맥락에서 특정 제조 장비의 수출과 관련된 안보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로써 그동안 수출금지 대상에서 제외돼 있던 ASML의 구형 액침식 DUV 노광장비 NXT 1970i와 NXT 1980i 등 2종의 중국 수출을 네덜란드 정부가 7일부터 직접 통제하고 나선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앞서 2019년부터 10㎚급 이하 미세회로 공정에 적합한 EUV 장비의 중국 수출을 규제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8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中芯國際·SMIC)가 ASML의 DUV 노광장비를 활용한 멀티패터닝(반복 노광공정)을 통해 7nm급 반도체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중국 반도체 생산능력 향상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미 정부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네덜란드는 이와 함께 ASML의 '대중국 장비 유지보수 서비스'까지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장비 판매를 제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판매한 장비의 유지보수를 거부하라고 미국이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 자료: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앨런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지난 4월 네덜란드를 긴급 방문해 정부 당국자들과 ASML 관계자들을 만나 ASML의 서비스 계약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미 정부의 수출통제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안보국(BIS)의 책임자다.

이에 ASML은 중국에 판매한 구형 장비의 유지보수 서비스를 중단하는 추가 제재안을 미 정부와 추진하기로 했다. EUV는 미국의 대중 제재 초반부터 수출과 유지보수가 금지됐고 이번에 DUV의 중국 내 유지 보수도 하지 않게 되면 미국 제재를 피해 구형 장비로 첨단 칩을 제조하려던 중국에는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9일 “네덜란드 정부는 올해 말 만료되는 장비의 예비 부품과 서비스에 대한 중국 내 서비스 허가권을 갱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미국의 압력이 가해진 후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국의 반도체 전략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 더욱이 노광장비는 미세한 진동에도 고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은 만큼 ASML 직원들이 공장에 파견돼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노광장비에 대한 ASML 소속 전문가들의 유지 보수가 전면 금지되면 구형 DUV 장비로 5㎚급 반도체 생산까지 노리던 중국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수출 제재에 대비해 중국은 올여름까지 장비들을 서둘러 수입했지만, 내년부터 제대로 가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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