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용산... 엄마들이 윤 대통령 탄핵집회에 나선 이유
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용우 기자]
"하수구에 그냥 부어버리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갈 텐데요."
"한강... 무척 큽니다."
영안실의 한국인 직원은 쓴웃음을 짓는다. 미군 간부는 호탕한 웃음으로 답한다. 방독면을 쓴 직원이 갈색 병에 든 포르말린(포름알데히드)을 싱크대 하수구에 쏟아붓는다. 한강으로 흘러간 포르말린을 먹은 수중생물이 거대한 돌연변이로 자라난다.
2006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괴물> 도입부 장면이다. 영화의 모티브는 '미8군 독극물 한강 무단 방류 사건', 이른바 '맥팔랜드 사건'이다. 2000년 2월 9일, 발암물질이 담긴 480병의 시체방부제가 미8군 영안실 싱크대에서 한강으로 버려졌다. 내부 제보를 받은 녹색연합은 2000년 7월 14일, 기자회견에서 이 사실을 폭로했다.
미군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끓어오르자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미8군 사령관과 미 대사관의 공식 사과, 미군 책임자의 한국 법정 회부(영안실 부소장 맥팔랜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최종 선고), 주한미군지위협정(The ROK-US Agreement on Status of Force in Korea, 아래 SOFA)의 최초 개정과 환경 규정 신설…
전에 없던 일들이 전에 없던 후속 조치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 이후에도 용산기지를 비롯해 주한미군기지에서 환경오염 사고들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아이 밥 챙겨주느라 좀 늦었어요"
김은희 대표가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7월의 마지막 날.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작은도서관 고래이야기'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 도서관은 김 대표가 운영진으로 있는 지역 도서관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유해가 안치된 효창공원을 마주한 카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부리나케 '식민지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자신이 싼 도시락을 거기서 일하는 남편과 함께 먹기 위해서였다.
▲ 용산기지주민모임 서울 용산구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2015년에 ‘용산미군기지 온전히 되찾기 주민모임’을 만들었다. 앞줄 가운데 아이를 안고 있는 이가 김은희 대표. |
ⓒ 김은희 |
통일운동을 하며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들은 한미동맹, 주한미군과 어떻게든 엮어있다고 여겼다. 이듬해,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용산으로 일부러 이사했다. 공원 조성과 반환을 앞두고 말이 많은 미군기지가 용산에 있었다. 이사하자마자 통합진보당 당원들을 찾아다녔다. 용산 지역 활동에도 열심히 연대했다.
"그때는 용산 지역에서 하는 활동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갔어요. 그러면서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2015년 초에 지역 주민 몇 사람과 '용산미군기지 온전히 되찾기 주민모임(이하 용산기지주민모임)'을 만들었다. 얼마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과 함께 '한미연합군사령부 용산기지 잔류 무효소송'에도 나섰다.
급하게 연락을 돌려 용산구의 여러 시민단체와 노조, 정당에서 소송인단을 모았다. 연대기구인 '온전한 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김은희 대표는 시민회의 상임대표를 맡아 지금까지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관계된 일에서는 아무것도 투명하지가 않아요."
2015년 5월, 용산기지 내부 1차 환경 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깜깜이 조사였다. 환경부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용산기지주민모임은 작전을 펼치듯 조사과정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녹색'이나 '환경'이 적힌 차량이 검문소 앞에 서면 번호판을 사진으로 찍고… 용산구청 옥상에 올라가서 잠복하다가 기지 안에 있던 작업자들이 시커먼 들통을 들고 밖으로 나오면 막 뛰어 내려가서 사진으로 찍었어요."
외교 문제를 이유로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던 환경부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조사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미군의 기만을 드러냈다.
▲ 용산기지 환경오염 조사과정 공개 촉구 1인 시위 용산미군기지 앞 입구에서 1인시위 중인 김은희 대표 |
ⓒ 김은희 |
"구글에서 찾은 용산기지 건물번호 사진을 확대 출력하고, 돋보기로 보면서 지도에 건물번호를 매기고, 문서에 나온 오염 지역의 좌표도 지도에 찍었어요. 그 지도를 완성하고 보니 용산기지에서 오염이 안 된 곳이 거의 없었어요."
밝혀낸 내용을 폭로하고자 기자회견과 토론회도 열었다. 기대와 달리 크게 이슈화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환경부와 외교부의 고위공무원들과 면담할 수 있었다. 해당 자료를 들이밀며 미군에게 환경정화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지난해 봄,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귀띔해 준 이는 같은 여자축구동호회 회원이었다.
"그 친구가 대통령 집무실 앞 스포츠필드에서 여자대학생들 축구대회가 곧 열린다고 했어요.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사실이었어요. 용산구의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들이 용산어린이정원 방문 신청서를 받거나 스포츠필드 방문을 독려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있었어요."
정부가 '용산어린이정원'이라 이름 붙인 그곳. 2021년에 나온 한미 합동 위해성 평가 보고서는 그 땅이 공원이나 어린이 시설로는 어림없음을 가리켰다. 석유계총탄화수소(TPH, 유류 오염물질)가 36배, 아연(중금속)이 17.8배, 비소(발암물질)가 9.3배나 기준치보다 많이 검출됐다. 용산어린이정원은 토양 정화 없이 흙을 15cm 덮어놓고 잔디와 꽃을 심었을 뿐이었다.
지역의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서를 제출했다. 시민회의는 환경단체, 학부모단체와 더불어 기자회견을 비롯해 용산어린이정원의 개방을 반대하는 활동들을 이어 나갔다. 정부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계획대로 용산어린이정원을 상시 개방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에 용산어린이정원 스포츠필드에서 '2023 대통령실 초청 전국유소년 야구·축구 대회'가 열렸다. 그 사이에 낀 5월 10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이었다. 시민단체들은 대통령 취임 1주년 행사의 흥행을 위해 아이들을 위험한 장소에 내몰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 2일부터는 영문도 모른 채,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조차 거부당하고 있다. (현재 출입 거부 무효 확인 행정소송 중.) 그달 말에는 경찰에 집시법 위반으로 소환당하기까지 했다. 그 한 달 전쯤 시민회의가 열었던 '용산어린이정원 폐쇄 촉구' 기자회견이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였다.
지난해에는 여름뿐만 아니라 연초부터 이미 뒤숭숭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난데없이 폭탄 청구서를 받았다. '한미연합사 잔류 무효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국방부가 주민소송단 35인에게 소송비용을 다시 청구했다. 청구서에는 '미납 시 강제집행 조치할 예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납부금은 약 977만 원. 중간에 낀 설 연휴를 빼면 납부 기한이 일주일도 안 남은 셈이었다. 9년 동안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처음 겪는 일들이 한 해 동안 줄지어 벌어졌다.
"법원에서 뭐가 날아오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집이나 직장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설 끝나고 모금을 시작했는데 4일 만에 원래 모으려던 금액보다 더 많이 모았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 용산기지 오염사고지역 지도 2017년 시민단체들이 미국 정보자유법을 통해 입수한 정보로 만든 ‘용산 미군기지 오염 사고지역’ 지도 |
ⓒ 김은희 |
"존중한다? 존중하면 따라야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잖아요. 정부가 자주적 입장에서 어떤 의지를 갖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무기가 엄청 많고 GDP가 높아야 힘 있는 나라인가요? 아니에요. 자기 국민들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나라가 힘 있는 나라죠."
지금껏 정부가 주한미군기지 환경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로 내놓았던 단골 낱말들이 있다. '외교'와 '국익'. 시민단체들은 용산미군기지의 환경정화 비용이 총 1조 원이 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지난 과정들을 돌이켜보면 이 비용은 우리 정부의 예산으로 지출할 공산이 크며, 그 예산은 분명 한국 납세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해왔던 국익, 그 국가의 이익은 누구를 위한 이익인가.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자신의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창비, 2021년)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미국 무기의 최대 수입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미국이 쉽게 버리기 어려운 고객이다. … 현재 한국사회에는 동맹으로 인한 비용이 이익을 크게 추월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이익과 전략이 우선하는 철저한 비대칭성에 대한 변화 시도는 부재했다."
김 대표는 한미동맹은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이 우리하고 프렌들리(friendly)라면서요? 친구라는 게 뭐에요? 말도 못하고, 속앓이하고, 굴복하는 게 친구인가요? 동맹이라고 한다면 동등해야 해요. 한국은 미국하고 동등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요. 이런 문제에 대해 굉장히 합리적인 이야기가 되고, 그런 힘들이 발휘되어서 SOFA도 바꾸고 법도 만들어야 해요."
이 싸움은 사랑에 관한 것
요즘 김 대표는 매주 토요일마다 용산촛불행동 회원들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실천한 활동의 결과가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해도 시민들의 응원하는 힘들이 갑자기 어떤 때 분출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도 143만 명이 넘게 서명해서 어쨌든 올라갔잖아요(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 회부)."
맥팔랜드 사건을 제보한 이들은 용산기지에서 일하던 한국인 군무원들이었다. 용산기지 주변 환경오염의 원인이 미군기지 내부에 있음을 들추고, 정부도 청구하지 못한 오염사고 이력을 알아내고, 용산어린이정원의 위험성을 알린 이들은 모두 시민들이었다. 김 대표와 함께 시민회의를 이끄는 이들은 대부분 용산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힘 있는 나라는 힘 있는 주민들이 만들고 있다.
올해 광복절을 보내고 맞이한 토요일,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8월 전국집중촛불대행진' 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비를 맞고서도 시청 근처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했다. 그때 다섯 살 난 딸과 함께 우비를 입고 행진하던 한 엄마를 보았다. 문득 딸 진혁이의 작은 손을 잡고 온갖 집회 현장을 누볐을 김 대표의 모습이 겹쳐서 그려졌다. 진혁이는 지금 중학생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땅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땅이다. 우리가 당당하게 우리 몫을 다 해야만 이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편안하게 산다. 아이들이 좀 더 어른들의 보살핌과 시선 속에서 공동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저희가 이 도서관(고래이야기)도 운영하고 있어요."
데이비드 바인은 오랫동안 해외주둔 미군기지 문제를 연구한 인류학자이다. 그의 저서 <기지국가>(갈마바람, 2017년)는 한국어판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매듭짓는다(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가 최성희 씨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빌려서 해준 말이었다). "이 싸움은 사랑에 관한 겁니다."
그동안 김 대표와 시민회의가 함께 해왔던 활동들을 취재하면서 나는 '혐오'과 '분노'에 휩싸이곤 했다. 주한미군의 기만과 뻔뻔함, 줏대 없고 무기력한 한국 정부에 분개했다. 데이비드 바인의 저 문장은 나를 다른 감정으로 환기하게 해주었다.
▲ 윤석열 대통령 탄핵 8월 전국집중 촛불대행진 지난 8월 17일,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8월 전국집중촛불대행진’ 참가자가 든 피켓 |
ⓒ 용우 |
덧붙이는 글 |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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