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동 옹벽 추악한 진실…“덮어주면 은혜 갚겠다” 다가온 男
■ 오늘의 더중앙플러스 - 부동산 X파일
「 부동산 투자와 개발로 큰돈을 번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해관계자들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도전과 작전, 그리고 인허가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리 의혹까지 철저히 분석하고 날카롭게 파헤친 기사를 약속드립니다.
더중앙플러스 '부동산 x파일' 시리즈에는 랜드마크 개발 비화부터 부동산 거부들이 돈을 번 기막힌 방법까지, 흥미롭고 정확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백현동 옹벽 아파트의 비리를 처음 세상에 터뜨린 기자의 이야기를 전문 무료로 공개합니다.
▶ 부동산 X파일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17
」
지난달 말 대법원은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 ‘옹벽아파트’(15개 동 1223가구)의 사용승인 신청을 거부한 성남시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앞서 성남시는 옹벽과 붙어있는 이 단지 커뮤니티 센터에 대해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 아파트 시행사가 신청한 사용승인을 반려했습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수천 명의 주민은 이 옹벽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우선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습니다. 전체 준공이 안 났기 때문에 아파트 소유주는 땅에 대한 지분권인 대지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집주인들은 시행사에 아파트값을 진작에 다 치렀는데, 지금도 대지권은 시행사가 갖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지권 등기가 안 되고 건물만 소유권이 있는 부동산은 경매 시 유찰 가능성이 크고, 매매 거래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또한 이 아파트 주민들은 요즘 새 아파트의 경쟁력 중 하나인 커뮤니티 센터(사우나, 도서관, 카페 등)를 3년 넘게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큰 피해는 옹벽의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40년 경력의 한 토목 전문가는 “골프장(남서울CC) 가는 길에 이 아파트 옹벽을 자주 보는데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높이 51.3m(감사원 자료)의 수직 옹벽 바로 앞에서 수천 명이 모여 사는 경우가 있나 알아봤는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사 사례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옹벽은 성남시가 ‘위법한 건축행위를 그대로 승인(감사원 자료)’해 줬기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과정은 이렇습니다. 이 아파트 건립 프로젝트는 ‘토지 용도지역 수직상승(자연·보전녹지에서 준주거지로)’에 따라 316%의 용적률을 받았습니다.
잠실 일대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인 리센츠, 트리지움 등의 용적률이 270%대임을 고려하면 얼마나 높은 용적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파트 건립사업에서 용적률은 곧 ‘돈’입니다. 그런데 시행사 측에서 이런 높은 용적률을 다 찾아 쓸 수 없었습니다. 서울공항 인근이어서 고도 제한(건축물 높이 해발 139m 이내)에 걸려 15층 높이가 한계였습니다.
용적률을 다 찾아 쓰려면 30m 이상 땅을 파고 산을 가파르게 깎아 50m 이상의 옹벽을 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산지관리법과 국토계획법 등 관련 법에서는 옹벽의 높이를 15m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을 무리한 인허가, 배경은?
성남시 공무원이 어떻게 이런 ‘불법’을 승인했을까 궁금했는데,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그 과정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이 아파트 인허가 당시 성남시 담당 직원이 15m 제한 규정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아파트를 설계한 용역업체의 얘기(유선 통화)만 듣고 산지관리법 소관기관인 산림청 등에 확인하지 않고 승인을 내줬다는 것입니다.
유례없는 50m 옹벽은 외부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된 성남시 건축위원회 등에서도 문제가 됐습니다. 2017년 3월 열린 건축소위원회 굴토심의(굴착공사의 안전성과 적정성을 검토하는 심의)에서 한 의원은 “법규대로 옹벽을 계단식으로 설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배치계획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회의는 전문기관의 구조안전 검증을 받는 조건으로 ‘조건부 의결’됩니다. 이후 2017년 4월 열린 건축구조안전심의에서도 한 위원은 “산지 계곡부에 과거 흐르던 물이 있는데, 옹벽에 수압이 걸리면 치명적”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위원은 “성남시의 토사 붕괴사고 사례를 보면 성남·용인 일대의 토질에 단층파쇄대가 존재하고 암질지수(RQD·암석의 품질을 나타내는 지수) 값이 작다”고 말했습니다.
단층파쇄대는 작은 단층이 많이 생기면서 암석이 잘게 부서진 곳을 말하는데, 침식과 붕괴가 빠르게 진행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모 대학의 토목공학과 교수는 “백현동 옹벽 아파트는 편마암 지대인데, 편마암은 점토가 충전된 단층들이 많이 발달해 붕괴 위험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한 달여 뒤 열린 5차 심의에서 한 위원은 “옹벽 부분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부지인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총체적으로 부실한 심의”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5차 심의에서 14명의 참석 위원 가운데 조건부 의결 찬성(8명), 재심의 의결 찬성(1명), 5명 기권으로 재심의가 의결됐습니다. 이런 심의에서 5명이나 기권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한 전문가는 “세상에 둘도 없을 무리한 인허가인데 성남시가 답을 정해 놓고 밀어붙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성남시의 여러 공무원들이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의 공소장에 관련 얘기가 나와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가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며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2016년 10월 중순 당시 성남시 도시주택국장 김모씨에게 전화해 “옹벽 건축계획안을 문제 삼지 말고 빨리 사업을 진행시켜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성남시 실무자들은 옹벽 허가를 포함한 지구단위계획안을 당시 성남시장에게 보고했고, 시장은 이를 최종결재했다고 합니다.
확인 불가능한 옹벽 안전성
옹벽의 안전을 위협하는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옹벽에는 건축물에 미치는 토압을 줄이기 위해 4818개의 영구앵커가 박혀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그라운드 앵커 설계·시공 및 유지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앵커는 지반이나 지하수 등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기 쉽고, 그에 따른 파손은 앵커두부(頭部)에 집중돼 발생한다고 돼 있습니다.
따라서 앵커두부는 육안점검을 위해 노출되도록 정해 놨는데 이 단지는 옹벽이 콘크리트 벽과 붙어있는 부분이 많아 앵커에 문제가 있어도 수리를 할 수 없습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위법한 건축행위’라고 명시하고, 앵커와 콘크리트가 붙어있는 것에 대해 “민관 등의 전문가로부터 구조 안정성을 재확인하고 필요시 안전 보강조치를 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라”고 성남시에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남시는 아무 움직임이 없습니다. 옹벽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한 업체의 대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불법 옹벽이기 때문에 국내에 이 옹벽의 안전진단을 나서서 맡을 전문업체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21년 5월 백현동 옹벽아파트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릴 때가 생각납니다. 기사가 나가기 바로 직전 시행사 회장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카페 중 큼지막한 CCTV가 바로 위에 있는 자리에 앉아 시행사 회장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회장은 저에게 “이 문제를 덮어주면 평생 은혜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덮는 거 무지 싫어해 이불도 안 덮고 잡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쓰기 쉽지 않은 백현동 옹벽아파트 얘기를 다시 꺼내는 건 바로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제발.
▶ 백현동 옹벽의 추악한 진실…“은혜 갚겠다” 기자 회유한 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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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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