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핵관과 시한부 장관의 조합... 국가에 재앙 몰고 왔다
'윤석열의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핵심 인사들의 역할과 이들이 주도한 정책을 분석해 그에 따른 문제점과 사회적 파장을 조명하는 기획입니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된 이들이 빚어낸 국정 난맥상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그 대안을 모색합니다. <편집자말>
[이슬기 기자]
▲ 2022년 6월 16일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를 방문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을 접견, 기념촬영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지난 대선 당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 성평등 정책의 퇴행이 거듭됐다. 여기에는 '윤핵관'의 한 명이자 원내에서 여성혐오적 인식을 퍼뜨려온 권 의원과 성평등 주무부처의 수장으로서 이를 고스란히 실현한 김 전 장관의 '티키타카'가 있었다.
▲ 2022년 1월 7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 메시지. |
ⓒ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일곱 자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도 그의 작품 중 하나다. 여가부 폐지 논의를 수면 위로 부상시킨 것은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지만 일곱자 공약 자체가 등장하게 된 건 권 의원의 '토스'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사무총장이자 선거대책위원회의 종합지원총괄본부장이었던 그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페이스북 메시지에 대해 "선대위 해체 전, 후보께서 청년보좌역들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저와 유상범 의원이 보고 드려 결단한 것"이라고 부연한 바 있다.
그해 3월 윤 대통령이 당선되고 4월에 김 전 장관이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여당 원내대표가 된 권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둔 5월 6일, 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청소년 및 가족 업무는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내용이었다. 닷새 후 열린 여가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김 후보자는 "여가부 폐지 원칙은 분명하다"면서도 '시한부 장관'이라는 꼬리표는 재차 거부했다.
이후에도 국가의 성평등 정책은 '권성동의 메시지, 김현숙의 행동' 식으로 이어졌다. 그해 6월 국회에서 김 장관을 접견한 권 의원은 말했다. "여가부가 그동안 성과는 별로 없고 예산만 축내는 부처 아닌가 비판을 받았다"며 "680여 개의 시민사회 여성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공정하느냐에 대해 2030세대들의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날은 김 장관이 취임 첫 기자간담회를 통해 조직개편 태스크포스(TF)인 '전략추진단' 구성을 선언한 날이었다.
나아가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2022년 7월), 비동의 간음죄 도입 계획(2023년 1월) 등은 권 의원이 페이스북으로 문제제기하고, 만 하루도 안 돼 여가부가 '전면 재검토', '철회' 입장을 밝힌 것들이다.
그해 9월에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던 김 장관에 사퇴 요구가 쏟아지자 적극 비호한 이도 권 의원이다. 그는 페이스북에 "비극을 남녀갈등의 소재로 동원하는 것은 지극히 부적절하다"며 "우리 사회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천인공노할 범죄자가 있고, 그 피해자 역시 남녀가 될 수 있다"고 적었다. 이쯤 하면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당정의 '조직적' 무화이며, 이에 앞장선 인물은 '윤핵관' 권성동과 여가부의 수장 김현숙이었다.
이런 권 의원의 행보를 두고 중앙일보에서는 이런 기사도 나왔다. <"이준석이 썼나? 권성동이 썼네"…여권 놀라게한 그의 행보 (2022.11.14.)>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부터 안티 페미니스트적 행보를 이어왔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시 성 접대 의혹 등으로 당 대표 직무가 정지된 틈에 권 의원이 '청년층' 구미에 맞는 주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는 진단이다. 여기서의 '청년'은 선대위 시절 청년보좌역들이 대변했던 '이대남'으로, 여성 청년들은 줄곧 생략됐다.
▲ 2023년 11월 2일 당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남소연 |
사실 그는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로서 출산율 제고와 보육 정책의 상관관계 등을 연구해 왔다. 19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여당 간사를 지내면서는 여성의 권익 신장 및 여가부의 권한 강화를 꾀하는 법안 발의에도 열심이었다. 지역구 선거 여성 30% 공천 의무화를 내세운 공직선거법 개정안, 여가부 장관의 자료제출 요구권을 강화하는 성별영향분석평가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그러나 부처를 폐지하러 온 장관으로서 그는 '여성 지우기'에 혈안이 됐다. 젠더 폭력이 발생하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다"(2022년 7월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 당시)고 했다가 이후 정정했고, 두 달 뒤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또한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권 의원의 '전화 한 통' 이후 4년을 이어오던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에 이어 2023년 1월 발표한 비동의간음죄 도입 검토 계획 또한 9시간 만에 철회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여가부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폭행과 협박 없이도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의 경우 강간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가 권 의원의 페이스북 메시지,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통화 이후 "법률 개정 계획이 없다"며 입장을 바꿨다.
국가적 망신이라던 '잼버리 사태'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김 장관이 지난 2월 사퇴한 후, 여가부는 8개월째 장관 공석 사태다. 지난해 10월 "여가부는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해야 한다던 김행 후보자는 여러 논란 끝 낙마했다. 김 장관 사퇴 후에는 인사혁신처 출신 인사가 차관으로, 복지부 출신이 기획조정실장으로 왔다. 그 사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고 5년이 넘도록 입법 공백이 지속됐고, '성소수자'와 '성평등' 용어를 삭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적용 교과서가 등장했다.
지난 7월 정부는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발표했다.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정책 전반을 포괄하는 컨트롤타워다. 여가부 폐지안은 없었다. 그러나 제 역할을 못한 지 오래인 여가부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미 윤석열 정권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 2022년 7월 18일 당시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인터뷰에서 말했다. "헌법에 위배되는 발언이다. 헌법에 국가는 여성의 복지와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의 말처럼 헌법 제34조 3항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다.
최근 들어 대통령실이 여가부 장관 인선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추진하는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이 '여가부 장관 임명'을 선결 조건으로 내걸자 나타난 기류다.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 등에 대응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영향을 끼쳤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를 총괄해야 할 여가부 장관이 없다"는 야당 지적에 "여가부 장관 임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정치학자 드루드 달레룹은 책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에서는 서양의 13개국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통해 국가를 대표하는 여성 정책 기관, 여성 운동, (여성) 입법자들로 구성된 '벨벳 삼각'의 활약이 성평등 정책 추진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식물 부처로 전락한 여성 정책 기관인 여가부의 현재 위상을 고려하면, 나머지 두 주체 여성 운동과 여성 입법자들에 그나마의 명운을 걸어볼 수밖에 없다.
최근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 여가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에게 여가부 장관 임명을 재차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딥페이크 처벌법'(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에 논란이 된 '알면서'라는 단서 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을 본회의 당일 대표발의해 통과시킨 이는 민주당 중진 추미애 의원이었다. 44년 만에 국회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의원 22인이 공동 주최했으며, 절대 다수의 여성 의원들이 앞장선 결과다.
'22만명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의 실체가 드러난 후 서울여성회와 서페대연(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이 매주 금요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말하기 대회를 이어가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에는 6000여 명의 여성들이 참가했다.
여가부가 형해화되는 와중에 우리는 일련의 교제 폭력, 딥페이크 성착취, 여성혐오 범죄 등에 그 책임을 물을 주체마저 잃었다. 교제 폭력 피해와 함께 사이버 레커들로부터 이중삼중의 협박에 시달린 '천만 유튜버' 쯔양 사건을 두고 "개개인의 사건에 모두 입장문을 발표할 수는 없다"던 여가부의 침묵이 이를 드러낸다.
벨벳 삼각의 주요 축인 여성 정책 기관이 바로 서고, 퇴보한 성평등 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 여성 시민들의 목소리를 적극 귀담아 들어야 한다. 특히나 지금은 또 하나의 축인 입법부가 더욱 그래야 한다. 이것은 여성들의 생존에 관련된 것이어서,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더 이상 이를 묵과할 생각이 없다. 이제 그 시작점은, 여가부 장관 인선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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