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교훈인 학교의 정체

토끼풀 2026. 2. 22. 11:1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박2일 홍동면 탐구생활②] '사람 만드는' 교육 하는 풀무학교,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

<토끼풀> 3명의 기자들이 첫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 문성호·이서찬·조준수 기자로 구성된 ‘홍동면 특별취재팀’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1박2일 머물며 곳곳을 누볐다.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안 자고 풀무학교(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홍동중학교, ‘ㅋㅋ만화방’, 밝맑도서관 등을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길게 인터뷰한 사람들만 10명이 넘고, 오고가며 만난 사람들은 수십 명에 달한다(홍동면 인구는 3천여 명).

홍동면은 충청도 대부분 지역과는 달리 평균 연령이 상당히 젊다. 귀농한 젊은이들도 많고, 풀무학교를 졸업한 후 홍동에 눌러앉아 농사짓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마을 전체가 진보적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 협동조합이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 할머니 7명이 모여 농협 매장에서 반찬을 파는 협동조합까지 있다!

물론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다. 지난 21대 대선에서 권영국 후보의 득표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3.9%) 지역이다. 권영국 후보가 이준석 후보를 1표 차로 이기기도 했다. 전국으로 보면 권영국 후보(0.98%)와 이준석 후보(8.34%)는 득표율이 8배 넘게 차이 난다.

청소년들도 "노무현 밈을 거의 보지 않는다(김한울 학생)". 전국에서 씨름하고 있는 청소년 극우화의 여파도 이 지역에는 거의 미치지 않았다니,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신기한 마을에서의 1박 2일 취재를 연작 기사로 담아냈다. 청소년의 시각에서 치열하게 걷고 물은 기록이다. <기자말>

[토끼풀]

풀무학교(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1958년 홍동면에 설립된 대안학교다. 전국 최초의 대안학교라는 자부심과 함께, '더불어 사는 평민'과 '일소공도(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를 교훈으로 삼고 있을 만큼 특이한 학교다.

이곳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농사라는 삶의 현장을 배우고 익히는 데 목적을 둔다. 현재는 고등부 과정뿐만 아니라 '풀무생태농업전공과정(전공부)'을 통해 전문적인 유기농업 교육까지 이어가며 마을 교육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 자치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1959년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용품을 공동 구매한 것을 저렴하게 판매하며 시작한 활동이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으로 발전하였고, 이는 오늘날 신협과 생협 등 홍동면의 40여 개 주민 조직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풀무생협 내부 모습. 학용품과 과자 등을 판매하는 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 이서찬
학교 안에서의 학생 자치가 마을 단위의 주민 자치로 확장되면서, 풀무학교는 홍동면을 스스로 움직이는 공동체로 만드는 정신적 지주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자치의 발원지라 불리는 풀무학교의 교실과 현장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일반적인 학교가 상급 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는 것과 달리, 이곳의 학생들은 교과서 밖의 마을을 관찰하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한 실천적인 고민을 이어간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이들만의 독특한 교육 방식이 어떻게 주민 자치의 동력으로 치환되는지, 그리고 학생들이 마주하고 있는 배움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학교 현장을 찾았다.
 주옥로·이찬갑 선생의 초상화.
ⓒ 이서찬
풀무학교 현관에 들어서자, 설립자 이찬갑 선생과 주옥로 선생의 초상화가 기자들을 맞이했다. 설립자인 밝맑 이찬갑 선생은 오산학교를 나와 '교육, 기독교, 농촌에 의한 민족 구원을 위한 교육'을 준비했다. 주옥로 선생은 감신대를 나와 홍동에서 독립전도를 하며 '진리, 학문, 자립으로 그리스도인과 농촌 수호자'를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염원하던 중, 둘의 뜻이 맞아 1958년 4월 23일 풀무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언니들에게 하고 싶은 말' 게시판.
ⓒ 이서찬
풀무학교에서는 학년과 성별에 관계없이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선배가 후배를 부를 때도, 남학생들끼리 대화할 때도 예외는 없다. 이는 나이나 학번에 따른 권위적인 위계질서를 허물고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소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존댓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서슬퍼런 입시 경쟁 대신 서로를 언니라 부르는 맺은 유대감은 졸업 후에도 이어져 홍동면의 주민 자치와 협동을 지탱하는 밑거름이 된다.
 풀무학교 창업식.
ⓒ 이서찬
이곳에서는 졸업식도 단순히 학교를 떠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라는 현장에 첫발을 내딛는 시작으로 보아 '창업식'이라 부른다. 강당에는 틀에 박힌 포스터 대신 학생들이 색지를 이어 붙여 정성껏 만든 수제 포스터들이 걸리고, 한쪽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담긴 '모금함'과 '수리함'이 놓인다.
 풀무학교 모금함과 수리함 모습.
ⓒ 이서찬
크리스마스 음악회를 열고 싶은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안을 올리고 간식비를 모금하고, 고장 난 물건을 신고하면 수리부 학생들이 직접 찾아가 고쳐주는 '수리수리 마수리' 활동을 펼치는 등 우수한 학생 자치가 학교 곳곳에서 엿보였다. 이처럼 교과서 밖의 문제를 학생이 스스로 기획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은 풀무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을 나타낸다.
풀무학교의 자부심인 도서관은 따스한 목재의 질감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15년 전 '갓골 목공소'의 목수가 직접 책장을 짜며 리모델링한 이곳은, 일반적인 학교 도서관과는 사뭇 다르다. 학교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신영복 교수가 기증한 서체들이 곳곳에 녹아있어 특유의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책장마다 꽂힌 오래된 책들의 속표지에는 30~40년 전 선배들의 손때가 묻은 대출 기록 카드가 그대로 남아 있어 세대를 잇는 낭만을 전한다.
 풀무학교 도서관.
ⓒ 이서찬
이곳의 운영을 책임지는 '도서부'는 단순히 책을 읽는 모임에 그치지 않고, 학교 살림의 중추적인 실무를 담당한다. 특히 학교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풀무>를 전국의 졸업생들에게 발송하는 작업은 도서부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매번 천여 권이 넘는 잡지를 봉투에 넣고 발송 작업을 하는 과정은 고되지만, 학생들은 이를 통해 학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소식을 전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학교 살림을 나누어 맡는다"는 주한 선생님의 말처럼, 풀무의 도서관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동과 세월의 기록이 쌓여있었다.
 계간지 '풀무'.
ⓒ 문성호
풀무학교의 학생 자치를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은 60년 역사를 이어온 '벽보' 문화다. 매월 1일 새롭게 게시되는 벽보는 학급 회의를 통해 선정된 주제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다. 게시판의 틀조차 최소 30년 이상의 세월을 버텨온 것으로, 학생들은 벽보 제작 매뉴얼에 따라 제작에 임한다. 주제 선정은 전적으로 학생들의 자율에 맡겨져 있지만 '공동체가 함께 공유할 가치가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따른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을 60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풀무학교 벽보 게시판.
ⓒ 이서찬
풀무학교의 교실은 학년별로 흙반(1학년), 보리반(2학년), 등대반(3학년)이라는 고유한 명칭을 사용한다. 각 학년당 단 하나의 학급만 운영되는 만큼, 교실의 분위기도 따뜻하다. 풀무의 학생들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유지되는 교실 환경 속에서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 대신 공동체 중심의 교육을 배운다.
 '흙' 반 모습.
ⓒ 이서찬
풀무학교의 교장실은 외빈을 맞이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아 '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개방적으로 운영한다. 이곳에는 개교 이후 60년간 축적된 졸업생들의 '졸업 논문'이 보관되어 있다. 모든 졸업생은 대학과 마찬가지로 졸업 논문을 작성해야 하며, 최종 보존용 원고는 반드시 자필로 작성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는 기록물에 작성자의 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취지다. 현재 재학 중인 3학년 학생들은 사랑방에 보관된 선배들의 자필 논문을 참고 자료로 활용하며 연구 및 집필 과정을 학습한다.
 60년간 풀무학교 학생들의 졸업논문이 보관된 사랑방 내 캐비닛.
ⓒ 이서찬
학생관에는 밴드부실, 댄스실, 가사실 등 여러 동아리실과 교실이 있다. 그 중 목공실은 학교의 설립 초기 모습과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목공실 내부에는 인진기나 줄폭 등 일제강점기 양식의 구식 기계들이 여전히 실무에 사용되고 있다.
학교 측에서 성능이 좋은 최신 장비로 교체할 것을 제안했는데도 담당 교사는 건물이 처음 지어질 당시의 장비와 환경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고수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목공실은 현대화된 설비를 갖추는 대신, 수십 년 전의 아날로그적인 작업 방식을 유지하며 목공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풀무학교 목공실 모습.
ⓒ 이서찬
여러 교실과 함께 '풀무학생생활협동조합'도 있다. 학생들의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치 경제 공간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무인 가판대에는 세제, 편지봉투, 월경대, 휴지, 샴푸 등 생필품과 빵, 과자 등이 진열되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
공간 내부에는 바둑이나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학생들은 이를 활용해 축제나 부모님 초청 행사를 위한 학급별 합창 연습을 진행하며 공동체 문화를 형성한다. 이러한 학교 내 자치 활동은 설립자들의 의지를 이어받아 1980년 창립된 풀무생협으로 확장됐다.
 풀무생협 내부 모습. 다양한 과자와 빵을 판매한다.
ⓒ 이서찬
풀무학교는 전교생이 생활관(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생활관의 운영도 학생들 간의 형평성을 고려한 자치적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5년 전, 남학생과 여학생 기숙사의 쾌적함 차이로 인해 발생한 불균형을 해결하고자 두 공간을 1년씩 교대로 사용하는 방식을 학생 주도로 도입한 게 그 예시다.

기숙사에는 '맑은 집'과 '밝은 집'이 있다. 그 중 '밝은 집'은 한옥 구조로 지어져 외관상 고즈넉한 멋을 풍기지만, 학교 꼭대기에 위치해 동선이 길고 겨울철 추위에 취약한 실생활의 불편함이 공존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매년 남녀가 서로 바꿔 체감하며 공간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밝은 집'은 평소 기숙사로 기능하는 동시에, 넓은 중앙 정원 덕에 풍물 공연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풀무학교는 농업 전문 교육의 일환으로 산란계, 소, 유산양 세 종류의 가축을 사육하며 실습 중심의 축산 교육을 실시한다. 축산 과정을 신청한 3학년 학생들은 주당 8시간의 전공 수업을 통해 사육 방법과 가공 실무를 익힌다. 가축 관리는 전담 학생과 담당 교사의 지도 아래 소규모로 이루어지며, 학생들은 유산양의 젖을 직접 짜서 치즈로 가공해 판매하는 과정까지 참여한다.
 풀무학교의 염소들.
ⓒ 이서찬
사육 과정에서 학생들은 가축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등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교육의 핵심은 농업의 실질적인 체득에 있다. 매년 가을 축제 시기가 되면 학생들은 직접 키운 닭을 도축하고 가공하여 판매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동물에 대한 애정과 축산물 생산이라는 현실 사이의 갈등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이곳의 학생들은 입시에 목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성적, 등급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풀무학교에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라는 글귀가 있다. '전인 교육'이라는 공감대를 가진 학교 공동체가 만든 구호다.

풀무학교 주한 선생님은 "풀무학교는 시험을 볼 때 감독을 두지 않는데도 커닝 사고가 건교(개교) 이래 한 번도 없었다"라고 전했다. 그 정도로 학생이 시험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거다. 풀무학교 학생은 목표하는 지점 자체가 다르기도 하다.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최고 목표는 '명문대 진학'과 성공이지만, 풀무학교 학생들은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막대한 돈을 버는 것처럼 세속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교훈인 '더불어 사는 평민'은 사람들의 계급이 나뉘고, 성공하지 못한 99%의 사람들은 패배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풀무학교의 이념은 경쟁과 서열 중심의 교육이 당연시되는 우리 사회에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경쟁보다 꿈을 찾는 풀무 학생들의 발자취는 학생 자치에서 빛을 발했다. 풀무학교에는 매우 활발히 운영되는 40여 개의 동아리가 있다. '무광'이라는 춤 동아리, '와락'이라는 밴드 동아리처럼 보편적으로 학교에서 볼 수 있는 동아리들도 있지만, '일도(일하는 도깨비)'라는 농사 동아리, '한마당'이라는 풍물 동아리, '시금치'라는 세밀화 동아리와 같이 다채로운 이색 동아리들도 볼 수 있었다. 풀무 학생들은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동아리에서 보내는 만큼, 보통 인당 3개 이상의 동아리에 가입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고 한다.
 풀무농업기술학교 본관 전경.
ⓒ 이서찬
풀무학교의 동아리는 학교의 살림을 자치적으로 분담하기도 한다. '미화부'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교내 구역별 청소를 전담한다. '수리부'는 교내 고장 난 물건의 보수를 맡는다. '기록부'는 자치 회의와 주요 행사를 영상으로 기록해 보존하고, '게시부'는 현수막 제작과 일정 공지를 담당한다.

이러한 학생 자치는 개교 직후부터 구축되어 60년 이상의 역사를 유지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학교가 단순히 교육받는 장소가 아닌, 자신들의 참여로 유지되는 자치 공간임을 체감하게 하는 전인 교육의 역할도 한다.

풀무는 대장간의 불에 바람을 넣어 호미나 낫 같은 '쓸모 있는 농기구'를 만드는 기구다. 풀무학교는 풀무처럼 학생 모두가 '쓸모 있는 평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풀무학교에서 단련된 학생들은 졸업 후, 홍동면의 자치를 지탱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실천하는 견고한 버팀목이자 주역으로 다시 태어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토끼풀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