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라면 먹을래?" 기적 먹혔다…위기의 외톨이 57명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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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6곳에 무인 카페 설치
안녕, 난 라면이라고 해. 한국에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좋아하는 '소울 푸드(영혼을 울리는 음식)'지. 최근에 귀가 쫑긋해지는 소식을 들었어. 전북 전주시가 나를 매개로 기발한 '복지 실험'에 나섰다는 거야. 스스로 고립·은둔을 택한 1인 가구를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이래.
지난 6월 지역 종합사회복지관(선너머·전북·전주·큰나루·평화·학산) 6곳에 누구나 공짜로 나를 먹을 수 있는 무인(無人) 카페를 열었대. 이름은 중의적 의미가 담긴 '함께라면'이야.
취약 계층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으면서 '은둔형 외톨이'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1인 가구를 집 밖으로 끄집어내 자활을 돕는 게 핵심이래. 평화사회복지관이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시범적으로 하던 사업을 전주시가 시 전역으로 확대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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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고향사랑기부금 1호 사업
1년간 1700명가량이 평화사회복지관 내 라면 카페를 이용했고, 위기 가구에 속하는 42명을 발굴했대. 대부분 정부·지자체 손길이 닿지 않던 사람이래.
여기서 영감을 얻은 전주시는 고향사랑기부금 2000만 원에 고독사 예방·관리 사업비 2000만 원을 보탠 4000만 원으로 '함께라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
전주시는 복지관마다 1대당 100만 원인 라면 조리기와 냄비·찬장 등을 구매·설치했대. "혼자 집에만 있으면 마음의 병이 들 수 있고, 외부인과 단절돼 고독사할 수 있다"며 "우울한 사람도 여기 오면 행복감을 맛보도록 공간을 카페처럼 산뜻하고 밝게 꾸몄다"는 게 전주시 전용숙 복지정책팀장 설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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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사회복지관 시범 사업 확대
지난 8일 오후 3시쯤 평화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함께라면' 카페를 찾아갔어. 복지관이 자리한 평화1동은 전주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밀집한 지역으로 꼽힌대. 전체 주민(1만1841명) 중 절반 이상이 혼자 사는 노인·장애인 등이라는 거지.
카페에 들어가보니 테이블·의자 등과 함께 라면 조리기가 놓인 선반 위에 10가지가 넘는 라면이 종류별로 빼곡히 차 있었어. 벽에는 '재미있게 일하고 즐겁게 살아요'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자' 등의 글귀가 적힌 그림엽서가 붙어 있어.
카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대. 라면값을 결제하는 점원은 따로 없었어. 대신 자원봉사자가 번갈아 가면서 안내·조리·청소 등을 돕는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라면을 골라 조리기를 이용해 끓인 뒤 아무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고 싱크대에서 정리하면 끝! 참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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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지난 식품 없나요" 20대 사연
평화사회복지관이 고안한 라편 카페는 지난해 1월 전북 익산에 사는 20대 청년 사연이 모티브가 됐대. 중고거래 플랫폼(당근마켓)에 "유통 기한 지난 냉동식품 나눠주실 수 있나요?"라는 글을 올린 주인공이야.
7년 전 부모님을 잃고 일용직을 전전하던 이 청년은 2022년 말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를 그만둔 뒤 원룸에서 홀로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해. 당시 월세(28만 원)를 석 달이나 밀려 한겨울에 수돗물로 끼니를 때우고 보일러까지 고장 나 한 달 넘게 추위에 떨었대.
이 이야기를 들려준 한지원 평화사회복지관 부장은 "고립 가구는 2년 안에만 발굴하면 다시 사회에 나올 수 있다"며 "'라면 드시러 오세요'는 하나의 도구로, 이렇게 복지관에 오는 그 한 발자국도 고립의 극복"이라고 하더군. 복지관에선 이를 위해 동네 곳곳에 전단을 붙이고, 편의점·반찬가게·세탁소 등 소상공인에게 '누구나 복지관에 가면 라면을 먹을 수 있다'고 홍보해 달라고 부탁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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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서히 접근…위기 징후 포착
그러나 정작 오랫동안 사회와 담을 쌓았던 사람은 막상 카페에 와도 쭈뼛거리기 일쑤래. 한두 번 와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벽만 쳐다본 채 라면만 먹고 간대.
그런데 그 많은 방문자 중 위기 가구는 어떻게 알아채는 걸까. 복지관 사회복지사나 봉사자 등이 카페에서 라면을 먹는 사람을 눈여겨보다가 한마디씩 말을 건네며 '라포르(신뢰 관계)'를 형성하며 위기 징후를 포착하는 방식이래.
"안녕하세요" "또 오세요"라며 가볍게 인사하며 관계를 맺은 다음 꾸준히 관찰·모니터링하면서 한 발짝씩 접근한대. 처음부터 "어려운 일 있으십니까"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정색하고 다가가면 다시는 카페에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
위기 가구 상당수는 기초생활수급자나 긴급 위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지만, 관련 정보도 모르고 신청할 능력도 없다는 게 한지원 부장 설명이야. 복지관에선 이들의 나이·성별·조건·처지·요구 등에 맞춰 일자리나 돌봄, 심리 상담, 병원비 등 교육·문화·의료·노동 서비스를 지원·연결해 준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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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기부 줄이어…4대 종단도 동참
'함께라면' 카페에선 라면을 먹고 가는 일반인도 많대. 이 중엔 사업 취지에 공감해 다음에 카페에 들를 때 라면을 몇 개씩 들고 오거나 박스째 택배로 보내기도 한대. 직접 담근 김치나 단무지 등을 카페 냉장고에 넣고 가는 주민도 적지 않나 봐.
고사리손으로 삐뚤빼뚤 '마식게(맛있게) 드세요'라고 적은 메모를 기부함에 넣고 간 초등학생도 있대. 천주교·불교·기독교·원불교 등 4대 종단과 ㈜농심·전북대 등 기업·기관·단체도 이 사업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대.
전체 6개 복지관 내 '함께라면' 카페에 다녀간 사람은 현재까지 5812명이고, 이 중 위기 가구도 15명이 추가로 발굴됐대. 라면이 떨어질 일은 없을 거래. 실물을 포함해 후원금만 3648만 원이 모였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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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라면 기계 있다며?"…주민과 소통
각계각층 관심과 참여 덕에 위기 가구가 속속 밖으로 나오고 있대. 수년간 공무원 방문조차 거부했던 A씨(58)는 복지관에 '한강 라면' 기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해서 찾았다가 거기 오는 주민과 어울리기 시작했대. 지금은 요리·노래 배우기, 영화 감상 등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나 봐.
사업 실패 후 부인과 이혼한 뒤 직업도 없이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B씨(60대)는 요즘 매일 복지관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대. 지난 4월 카페에서 여럿이 함께 라면 먹는 재미를 안 뒤 자연스레 이웃과 소통하며 사회생활을 재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든 셈이지.
임상훈 전주시 공보담당관 말로는 "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예산을 쏟아붓지 않고, 시민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라면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구성원을 사회복지 전달 체계 안에 끌어들인 건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해. 전주시가 나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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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심사위원도 라면 요리
'함께라면' 사업이 입소문이 나면서 경기 파주시와 충남 계룡시의회, 부산 동구 등이 벤치마킹을 위해 전주를 방문했대. 우범기 전주시장은 "'함께라면'은 사회적 단절과 소통 부재로 고립된 이웃이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든 복지 거점"이라고 강조하더군. "'누구나 먹고 가고, 누구나 놓고 가는' 나눔의 선순환을 이뤄낼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어.
최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인기야. 국내외에서 날고 기는 100명의 요리사를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국내 유일한 미슐랭 3스타인 안성재 셰프가 심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지. 피 튀기는 '요리 계급 전쟁'이 끝난 뒤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을 상징하는 안 셰프가 백 대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요리한 건 다름 아닌 나였어. 나를 내세운 전주시의 '맛있는 복지 실험'에 동참하는 요리사가 늘수록 세상으로 나오는 외톨이도 늘지 않을까.
※이 기사는 '함께라면' 사업을 추진하는 전주시와 현장 취재 등을 바탕으로 라면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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