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병상감축 시작됐다…아산 339개, 세브란스 290개

신성식, 이에스더 2024. 10.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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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작
빅5 모두 참여, 곧 서류 접수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에서 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2일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뉴스1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그동안 양과 질, 특히 양적 성장에 치중해오다 이제는 양을 버리고 질 위주로 방향을 틀게 됐다. 병상을 감축해 몸집을 줄이고, 중병 진료에 집중함으로써 명실공히 상급병원으로 환골탈태해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


무조건 수가 50% 인상


보건복지부는 2일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에 참여할 병원의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첫날이라 아직 신청자는 없다. 병원들은 시범사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시범사업에서 정부는 '수가 50% 인상'이라는 그간 보기 힘든 카드를 제시했다. 병원 입장에서는 무시하기 힘든 당근책으로 볼 수도 있다. 47개 상급병원의 대다수가 시범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 등의 소위 빅5 병원은 참여한다.

이들은 서류를 마련해 1~2주 안에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요건에 맞으면 즉시 시범사업 수가를 적용받는다. 핵심 요건은 일반 병상을 5~15% 줄이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은 339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290개 이상, 서울대병원은 180개, 서울성모병원은 140여개를 줄일 방침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중증중심병원 시범사업을 수행하고 있어 올해 말에 합류하면서 병상을 줄인다.

그동안 대형병원이 병상을 늘려왔지 줄인 적은 없다. 병상 감축은 성장 위주 의료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세계 최고의 암병원인 미국의 MD앤더슨 암센터만 해도 병상이 700개, 동경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은 1218개에 불과하다. 서울아산병원은 2700개, 서울대병원은 1803개이다. 우리보다 많은 데는 중국 정도이다.


아산 1만5000명, 동경대 3500명


상급종합병원은 하루 수천 명에서 많게는 1만 5000명(서울아산병원)의 외래 환자를 진료했다. 동경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이 하루 3500명 정도이다. 양적 성장은 암 치료, 장기 이식 등의 고난도 의료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많이 진료하니 실력이 따라 올랐다. 의사들의 창의적인 노력과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주 80시간 넘는 고강도 노동을 해온 전공의도 성장의 큰 축이었다. 그런데 2월 전공의 이탈로 이런 구조에 금이 갔다. 의사의 40% 안팎에 달하던 전공의가 빠지면서 모순 구조가 드러났다.

상급병원은 외래 환자, 특히 신규 환자를 많이 진료하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입원시켜 수술하고, 빨리 퇴원시키는 방식을 유지했다. 병상을 줄면 이 구조가 어렵게 된다.


중증수술 수가 일단 50% 인상


정부는 이번에 중환자실·일반입원병실·마취료(수술 관련) 수가를 50% 올린다. 중증 수술(시술 포함) 910개의 수가도 50% 올린다. 우선 이렇게 인상하고 내년에 수가 조정(상대가치 점수 개편) 때 더 올린다. 수술 수가는 원가보다 20%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올해와 내년에 손 본다.

이번 구조 개편에는 연 3조 3000억원의 건보 재정이 들어간다. ▶24시간 진료 지원에 7300억원 ▶중환자실 인상 4600억원 ▶중증수술·마취 3500억원 ▶중환자실 및 입원환자 관리 전담 전문의 가산 2980억원 ▶입원료 2100억원 등이다. 여기에다 내년 1년의 성과를 평가해서 참여 병원에 1조원을 분배한다.

구조 개편에 참여하면 중증 환자의 비율을 올려야 한다. 전체 병원의 평균은 52.8%(2022년 기준)이다. 이를 70%로 끌어올려야 한다. 화순전남대병원 같은 데는 이미 74.2%라서 그대로 인정받는다. 가장 낮은 병원이 39.8%이다. 이런 데가 갑자기 70%로 높일 수 없다. 그래서 정부는 참여 병원을 두어 개 그룹으로 나누어 목표치를 제시하고 그걸 달성하면 '통과'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성과 배분에서 고려한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은 "중증 환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경증 환자를 줄여서 비율을 맞춰야 할 텐데, 병상을 줄이게 되면 경증 환자 진료가 줄어들 것으로 본다. 병상을 줄이지 않으면 경증을 지금처럼 많이 진료할 것이고 그러면 전공의 의존 구조에서 탈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혜민병원→서울아산 가면 빨리 진료


이번 구조전환 사업에는 전문의뢰제라는 낯선 장치가 들어간다. 상급병원이 자기 권역의 2차병원(중소병원·종합병원)과 짝을 지어 협력병원 리스트를 제출하게 돼 있다. 2차 병원의 의사가 환자를 먼저 진료하고, 거기서 해결하지 못하면 짝을 이룬 상급병원에 환자를 보내는 방식이다. 지금은 환자가 알아서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지만 전문의뢰제에서는 의사가 주도한다. 이런 의뢰의 수가를 지금(1만 990~2만 330원, 비수도권은 3350원 가산)보다 크게 올린다. 상급병원이 진료 후 환자를 2차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회송 수가(6만~7만원, 지금 같은 비상 진료 상황은 9만~10만원)도 마찬가지다.

또 2차 병원 의사가 환자를 상급병원에 의뢰하면 대기 시간을 훨씬 줄여준다(패스트 트랙). 가령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 의사가 환자를 서울아산병원으로 의뢰할 경우 빨리 진료받게 되는 식이다.


권역 내 진료 완결, 추가 보상


정부는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나눠서 권역 내에서 이런 전문의뢰제를 시행한다. 바꿔 말하면 권역을 벗어나서 전남의 환자를 서울대병원으로 의뢰할 경우 전문의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권역 내에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지방 환자가 수도권으로 쏠리는 것을 줄이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지역 내에서 전문의뢰제로 환자를 주고받으면 의뢰·회송 수가 대폭 인상 외 추가로 보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지역 완결형 의료를 촉진하려는 의도에서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동네의원의 의뢰서를 끊어 상급종합병원에 가는 게 금지되는 건 아니다. 계속 유지된다. 다만 이렇게 가면 진료 대기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의도는 간접적으로 환자의 동선을 바꾸려는 것이다. 하지만 충청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A 기획실장은 "환자가 서울로 빠져나가지 않게 규제하는 장치가 없어서 아쉽다"고 말한다.


환자의 대형병원 선택 제한 없어


익명을 요구한 한 보건의료분야 전문가도 "이번 시범사업에는 환자 얘기는 없다. 우리나라 국민은 상종병원을 선호해 그간 1, 2차병원에서 형식적으로 의뢰서를 받아 바로 상종에 가곤 했다. 환자와 병원의 편법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을 고려해 시범사업 결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는 환자 동선을 직접 규제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중환자실 50% 인상해도 적자 여전


손실 보상이 충분할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수가 인상분이 상급병원의 손실을 만회할 만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병원은 다르다. 빅5의 한 병원장은 "현재 중환자실 한 개 병상에서 연간 1억 5000만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병상을 늘릴수록 손해다. 수가를 50% 올린다고 해서 적자를 면할 수 없다"며 "우리 병원이 일반 병상을 줄이는 대신 중환자실 병상을 70개 더 늘리려고 하는데, 수가 50% 인상만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A실장은 중증 수가 인상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중증 수술 수가 910개를 올린다고 하는데, 서울의 큰 병원은 그런 수술을 많이 해서 혜택을 보겠지만, 지방 병원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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