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한 명은 애를 봐야 한다면... 이 배우 부부의 선택은?

김성호 2025. 8. 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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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151]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그래도, 사랑해.>

김성호 평론가

여기 두 연기자가 있다. 준석(김준석 분)과 소라(손소라 분)로, 어느덧 십년을 넘겨 연기를 해온 베테랑 배우들이다. 제 연기를 아껴주는 연출자며 동료들이 있다는 점에서 제법 인정받고 있다 해도 좋겠으나, 아직 세상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배우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요컨대 연기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풍족한 벌이를 기대할 수 없다.

삶이란 수시로 잔인하다. 선택을 강요하고 포기를 감당토록 한다. 준석과 소라 앞에도 선택과 포기의 무대가 열렸다. 둘 중 한 명은 연기를 하고 다른 하나는 연기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저 어느 작품 출연을 위한 오디션 이야기가 아니다. 준석과 소라는 부부다. 이들 사이엔 아직 돌봄이 필요한 어린 아들 하람이 있다. 둘 각각에게 출연을 청하는 극단이 있단 것, 두 배우 모두 연기를 간절히 욕망한다는 것, 그러나 그들 모두가 작품활동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란 걸 인정한다는 것, 여기 적시할 수 있는 사실관계는 이런 것들이다. 그리하여 둘은 둘 중 한 명만이 연기를 하자는 데 뜻을 모은다.

요컨대 부부 중 하나만 좋아하는 일을 할 수가 있다. 다른 하나는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운명공동체의 공공연한 비극이다. 자, 그렇다면 둘 중 누가 연기를 해야 할까? '누가 연기를 더 좋아하느냐'로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둘 중 누가 더 연기를 좋아하고 누구는 좋아하지 않는지를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 둘 중 더 잘 나가는 이가 연기를 한다면 납득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척박한 연극계에선 소위 잘 나가는 배우란 게 그리 흔하지가 않다. 준석과 소라의 상황이야 말해 무엇할까. 도토리 키재기 꼴이 아닌가. 그렇다면 둘 중 뜰 확률이 높은 사람이 하는 건 어떨까. 경제공동체이기도 한 부부의 입장에서 이야 말로 전략적 선택이 되겠으나, 누가 뜰지는 또 어떻게 가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 그래도, 사랑해. 스틸컷
ⓒ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둘 중 한 명은 애를 봐야 하니까

제12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서 <그래도, 사랑해.>를 보았다. 로드초이스 장편 부문에 소개된 다섯 작품 중 하나로, 가져온 작품 하나하나가 지난 몇 년 간 한국 유수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독립영화들이다. 영화제는 이들 작품이 저와 같은 결을 갖고 있다 판단했다고 소개했다. 이중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를 고민하던 중에 알고 지내던 몇몇 영화인이 지난해 <그래도, 사랑해.>를 흥미롭게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확인해보아도 좋겠다 싶었다.

영화는 준석과 소라 중 누가 연기를 해야 하느냐를 두고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다. 둘 모두에게 더없이 중요한 결정이겠으나 부부 사이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경기장 위의 선수인 동시에 심판이기도 하단 점에 있다. 첨예하게 입장이 엇갈리는 문제에서 서로가 수긍할 수 있는 합당한 결론을 내는 일은 천하의 포청천이고 솔로몬일지라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준석과 소라가 서로 앞에서 오디션을 봐 더 나은 연기자를 겨루자는 첫 번째 시도가 소득 없이 끝나는 건 그래서다.

영화는 자연스레 두 사람이 외부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모습을 담는다. 준석이 집을 찾은 연극계 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장면이나 두 사람이 아예 동료들 앞에서 자유연기를 펼치고 평을 듣는 장면이 이어진다. 서로가 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대목이나, 준석이 제게 유리한 답을 듣기 위하여 수를 쓰는 모습 등도 충분히 있을 법한 설정으로 자연스레 등장한다.
▲ 그래도, 사랑해. 스틸컷
ⓒ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꿈을 포기할 사람을 정하는 가족 내 오디션

<그래도, 사랑해.>는 기본적으로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다. 연극 무대에 선다는 것이 차이일 뿐, 부부 중 하나가 바깥 일을 하고 다른 하나가 가사며 양육을 전담하는 문제를 두고 많은 부부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게 사실인 때문이다. 지난 시대 가부장적 문화 아래선 바깥일은 남자가 맡고 가정 일은 아내가 하는 것이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종언을 고했고, 이제는 가사를 전담하겠다는 여성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가까이 지내는 이들 중에도 남편이 돌봄을 전담하고 아내가 바깥일을 하는 사례가 여럿 있을 정도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마치 제 일인 양 두 사람이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에 몰입한다. 무려 돈 안 되는 꿈을 좇으려는 주제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진 이들이 아닌가. 그래서 포기할 수밖에 없단 걸 안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그런 상황이며 마음이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는 때문이다.

준석은 지난 한 해 연극을 세 번 공연했다. 반면 소라는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경력이 완전히 끊어질 지경이 되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남자와 여자에게 차이가 있단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임신이라는 과정을 전적으로 여자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자연적인 현상이면서도 불공평한 차별로 이어지기 쉬운 요소다. 준석과 소라의 관계에서도 소라가 감당하는 것이 늘 많은 것처럼 보인다. 며느리가 육아를 밀어놓고 연기를 할까 못마땅해 하는 시어머니의 모습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포스터
ⓒ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서로를, 또 꿈을 사랑하기 때문에

영화가 부부의 상황을 비추는 방식이 자연스러운 건 김준석과 손소라 배우가 실제 연극배우 부부이며, 영화 속 배역과 꼭 닮아 있다는 점에 기인한 것일 테다. 삶에서 길어 올린 문제를 그대로 영화에 녹여낸 솔직함 덕분에 관객은 무리 없이 이들의 문제를 제 것인 양 고민하게 된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연극까지 하다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단 말이야? 그런 마음이 준석의 마음 깊은 곳에, 심지어는 소라 자신의 마음 저변에도 자리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둘 모두 서로 다른 이유로써 그를 이겨내고 감당하려는 마음 또한 갖고 있다. 준석이 소라에게 연기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것도, 그러나 제게 들어온 기회를 차마 포기하지 못하겠는 것도 우리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갈등의 지점이다. 마찬가지로 소라가 제 욕구를 준석처럼 적극적으로 표면화하지 못하는 것 또한 충분히 그럴 듯한 모습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감독과 배우들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낸 이 영화는 기실 연출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솔직한 고민을 충분히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위한 고심이 <그래도, 사랑해> 가운데 깃들어 있다. 저들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실명과 꼭 같은 이름으로 등장시키는 용기는 쉬이 낼 수 없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예술, 영화, 연기를 애정하는 마음 덕분일 테다. 이를 애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어렵게 만드는 가정을 이루고 또한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다. 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건, 반대로 다른 어느 귀한 것을 지키고 있음이다.

<그래도, 사랑해.>는 그래서 그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거나 포기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족을 사랑하고, 제 일을 사랑하고, 동시에 둘 다를 사랑할 수 없는 순간조차 그 사랑 때문에 고심하는 것, 그런 풍요로운 삶에 대한 묘사다. 누군가는 목적을 이루고, 다른 누구는 이루지 못하는 이 영화가 그럼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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