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용지 부족으로 투표 차질…민주주의 꽃을 부러뜨린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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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등 10여 곳 차질, 투표 포기한 유권자도 있어
국힘 재선거 요구…신뢰 회복에 여야 머리 맞대야
어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있어서는 안 될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 송파·강남·광진구와 인천시 연수구 등 수도권 일대 10여 곳의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가 바닥나 투표가 중단됐다.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 이전에 투표소에 도착했는데도 투표하지 못하고 줄을 선 유권자들은 투표가 언제 재개될지 모른 채 기다려야 했다. 선관위 측은 추가 용지가 도착할 때까지 대기표를 배포한 뒤 마감 시간이 넘어도 투표가 가능하다고 안내하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1시간 이상을 기다리다 지쳐 돌아가는 유권자들이 나오기도 했다. 투표에 차질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투표장을 찾지 않은 유권자도 있을 수 있는 만큼 명백한 참정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투표 제도의 근본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어서 참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빚어진 것은 선관위가 투표용지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에 따르면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만 투표 용지를 준비했다고 한다. 선관위 예상보다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용지가 부족했다는 주장이지만,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다. 투표 현장에선 구청 직원이 오후 1시부터 용지 부족을 우려해 추가 용지를 요청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주권자의 소중한 한 표 행사를 보장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기본적인 투표 용지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데다 문제 발생 후 대응에서까지 치명적인 구멍을 드러낸 것이다.
투표가 지연되는 사이 오후 6시부터는 지상파 방송사 출구조사 등이 일제히 보도됐다. 투표하지 못한 채 대기하던 유권자들이 그 내용을 접하고 투표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투표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다 보니 현장에선 일부 주민들이 “투표 무효”를 외치고, 분노한 유권자들이 투표함 반출을 저지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선거 관리를 이렇게 엉망으로 하는 것은 그나마 잦아들던 부정선거 음모론의 토양에 물을 주는 행위나 다름없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투표 용지가 없어 투표가 중단되고 투표 시간이 연장되는 상황은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오점이다. 허 사무총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별다른 입장조차 내지 않았다. 장동혁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개표 중단과 서울시장 선거의 재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투표 차질 사태가 결국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거에 대한 신뢰는 민주주의의 뼈대다. 여야는 이번 사태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자기편의 유불리를 떠나 선거 시스템의 신뢰 회복에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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