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뿌염을 돕다가 울컥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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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나는 2, 3개월에 한 번씩 잠시나마 10년쯤 젊은 기분을 느끼며 산다. 아내의 손길을 거쳐 반백을 넘어가는 내 머리가 흑갈색의 젊음으로 바뀌어 마음마저 산뜻해진 덕분이다.
며칠 전에도 내 흰머리는 흑갈색의 머리로 탈바꿈했다. 가족들도 훨씬 젊어 보인다며 맞장구를 쳐줘서 은근히 기분이 업된다. 언제부턴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50대 초반 흰머리가 제법 눈에 띌 즈음, 그러니까 10여 년 전부터 2, 3개월에 한 번씩 되풀이되는 변신이다.
40대부터 하나둘씩 보이던 흰머리. 처음에는 눈에 거슬려서 뽑기도 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뽑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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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서 염색할 때 사용하는 염색약과 염색 도구 |
| ⓒ 곽규현 |
그럼에도 야속하게 염색된 내 검은 머리는 며칠이 지나면 조금씩 밀려 올라가고, 다시 흰머리가 밀고 올라온다. 세월은 내 마음을 몰라준다. 잠시 업됐던 기분도 점점 다운되어 원래의 기분으로 되돌아온다. 반백을 넘어 '올백'이 되어가는 내 머리. 머리색이 이미지는 물론 기분까지 좌우하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아내의 정성 어린 손을 빌려 주기적인 탈바꿈을 해야 될 거 같다.
흰머리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머리숱도 줄어들고 있다. 한창 젊을 때는 반곱슬머리에 머리숱이 많아서 귀찮기도 했는데, 이제는 머리숱이 줄어들어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친구들이나 지인 중에는 정수리 탈모로 머리 한가운데가 휑하게 비어 있는 사람도 있고, 탈모를 감추려고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적으로 머리카락은 가늘고 성글어졌으며, 뒷머리는 머리 밑이 보이는 부분이 있어 어딜 가나 신경이 쓰인다. 아내도 외출할 때마다 내 뒷머리를 한 번씩 살핀다. 옆에 있는 머리로 비어 있는 머리 밑을 살며시 가려 준다. 남편을 아이 돌보듯, 꼼꼼하게 챙겨주는 아내의 손길이 고마우면서도 흐르는 세월이 서글프다.
아내에게 무심했던 남편으로서 미안한 마음
나를 챙기는 아내도 세월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은퇴하기 전에는 아내의 머리 상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까. 간혹 아내가 미용실에서 머리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해도 별다른 반응 없이 예사로 들어 넘겼다.
예뻐졌다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줄 걸. 그게 뭐가 어렵다고. 누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아니랄까 봐 눈치 없이 지나칠 때가 많았다. 이제야 지난 시절, 리액션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한 나를 되돌아본다. 남편으로서 철이 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나 보다.
은퇴를 하고 한두 달이 지난 작년 어느 봄날,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일까. 아내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혼자 이리저리 머리를 헤치며 염색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 뿌리에 흰머리가 올라온다며 미용실 가기도 어중간해서 셀프 염색을 하는 거라고 했다. 만만찮은 염색 비용 때문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내 머리 세는 줄만 알았지, 아내 머리가 허옇게 세어가는 거는 모르고 지냈다. '그동안 아내는 내 머리를 신경써 줬는데…. 나는 왜 무심하게 넘겼을까. 아내가 나이 먹는 거는 잊고 지냈나.' 때늦은 미안함에 머쓱해져서 아내에게 나지막이 한 마디 건넸다.
"내가 염색해 줄까?"
"웬일이야. 당신이 내 머리에 신경을 다 쓰고. 도와주면 좋지."
안 그래도 뒷머리는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며 내가 염색해 주겠다는 말에 아내는 반색했다. 아내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의 머리를 눈여겨 들춰봤다. 아닌 게 아니라 머리 뿌리가 하얗게 파뿌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백년해로 하자고 언약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아내의 머리가 이렇게 파뿌리가 되었나 싶어 가슴이 찡했다.
나이만큼 영그는 부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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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와 함께 집 근처의 하천 산책로를 손잡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 |
| ⓒ 곽규현 |
아내에 대해 전에 없던 애틋한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서로의 부족한 점이나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완하고 도와주며 그렇게 부부 관계는 영글어 가는 게 아닐까. 이심 이체로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일심동체보다는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완전체가 되어가고 싶다.
앞으로는 예전에 못다 한 것까지 더해서 아내에게 마음을 쏟으려 한다. 세월이 더 흘러가면 생의 마지막, 아내와 이별하는 순간도 오게 될 것이다. 그때는 슬프겠지만 우리 부부가 함께한 인생 2막은 아름다웠노라고 회상하게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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