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美 전투함 수주 길 열렸다…실질적 성과 내기 위한 조건은 [Focus 인사이드]
미국이 호위함을 포함한 수상전투함의 해외건조를 검토하면서 한국 조선업에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어떤 함정을 어떤 조건으로 발주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은 함정의 인도 일정과 후속함의 미국 건조 계획을 하나의 제안으로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를 이행하고도 우리 기업에 이익이 남는지 따져야 한다.

먼저 이미 진행 중인 사업과 새로 검토하는 방안을 구분해야 한다. 미 해군은 2025년 12월 미국 조선사 HII(Huntington Ingalls Industries)의 잉걸스조선소를 차기 호위함 FF(X)의 설계·건조를 맡을 선도 조선소로 선정했다. 2026년 4월 2억 8300만 달러 규모의 선도 조선소 지원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으로 잉걸스는 조달에 오래 걸리는 자재를 확보하고 설계와 건조 준비를 진행하며, 첫 함정에 쓸 원자재를 절단·성형할 수 있다. 첫 함정 전체의 건조계약은 아니지만, 자재 가공이 가능한 단계다.
한편 지난 8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안보 각서는 외국 조선사의 제안도 받을 수 있는 수상전투함 조달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조건을 갖춘 외국 업체가 초기 최대 두 척을 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이후 함정은 미국에서 건조하는 구상이다. ‘최대 두 척’은 발주량이 아니라 해외건조를 허용할 수 있는 상한이다. 각서는 검증된 기존 설계를 활용하고 반복적 설계 변경을 제한했다.
따라서 한국의 해외건조 기회는 HII가 맡은 FF(X)의 첫 함정을 대신 건조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 해군은 HII 사업을 진행하면서 외국 설계도 검토하고 있다. 한국 설계가 채택된다면 HII의 FF(X)와 설계가 다른 함정이 될 수 있다. 두 방안을 모두 추진할지, 하나를 선택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한·미 정상도 조선협력을 심화하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함정 발주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해외건조 구상이 입찰로 이어질지, 미 해군이 어떤 성능과 인도 시점을 요구하며 한국 건조를 허용할지 확인해야 한다.
기업은 실제 건조·운용 경험이 있는 한국 함정 가운데 어느 함정을 제안할지 정해야 한다. 그 함정이 잠수함·수상함에 대응하고 수송선단을 호위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항공기와 유도탄 위협에는 어느 수준까지 대응해야 하는지도 미 해군에 확인해야 한다. 미국 장비를 탑재하려면 설계를 얼마나 바꿔야 하고, 그 변경이 허용되는지도 따져야 한다. 설계를 대부분 새로 해야 한다면 신속한 도입을 위한 이번 구상에 맞는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
일본과 튀르키예의 함정 설계도 미 해군의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한국 기업은 기존 함정의 실제 건조 기간과 비용, 주요 자재의 조달 기간, 장비 설치와 시험 일정, 조선소의 작업 여력을 자료와 수치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제시한 인도 시점과 가격을 미 해군이 믿을 수 있다.
초기 함정을 한국에서 건조할 수 있게 된다면 후속함의 미국 건조까지 한 제안으로 묶어야 한다. 기업은 한국에서 초기 물량을 건조하는 동안 미국 조선소의 어떤 시설에 얼마를 투자할지 제시해야 한다. 미국 시민을 몇 명 채용하고 어떻게 훈련할지, 후속함의 부품을 미국 어디에서 조달할지도 밝혀야 한다. 대통령 각서는 미국에 새 조선소를 건설하거나 기존 조선소의 소유권 또는 과반 지분을 확보하도록 요구한다.
한화오션이 보유한 필리조선소는 미국 생산 거점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전투함 건조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사업별 보안·품질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한다. HD현대중공업은 HII와 협력해 잉걸스조선소에서 용접 자동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 현지 생산에 기여할 통로가 될 수 있지만, 업무협약만으로 대통령 각서의 조선소 확보 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입찰에 앞서 보안 요건을 미국 측과 확인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미국에서 제공받을 장비·기술자료를 국내 어느 시설에서 누가 다룰 수 있는지 협의하고, 조선소·협력업체의 보안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미국 측의 현장 실사와 사업별 승인 절차에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리 해군의 민감한 자료는 제공 여부와 접근 범위를 엄격히 통제하고, 기업의 설계·건조 기술은 미국 현지에서 사용할 목적과 범위, 대가를 계약에 명시해야 한다.
미국 측의 품질 검사에도 대비해야 한다. 기업은 부품의 제조사와 원산지, 용접·검사·시운전 기록, 결함을 고친 과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정한 자체 점검으로 부족한 부분을 고쳐야 한다. 중국의 군 관련 업체에서 공급받는 일부 품목, 지정된 통신·감시장비, 일부 금속·자석에는 각각 다른 조달 제한이 적용된다. 기업은 품목별 기준을 확인하고 대체 공급처를 확보해야 한다. 이 준비가 부족하면 빠른 인도 약속도 신뢰받기 어렵다.
이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정부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해야 한다. 미 해군에는 초기 함정의 인도 시점과 그 근거를, 의회에는 미국 조선소 투자액과 현지 고용·훈련 인원, 미국 업체의 부품 공급 규모와 시작 시점을 같은 일정표로 제시해야 한다. 미국 업체의 역할을 문서화하고, 한국 설계의 미국 내 사용 범위와 미국 장비·자료의 수출 승인도 미리 협의해야 한다. 미 하원 법안에는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할 초기 함정 계약에 해군 예산을 쓰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 있다. 최종 법률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국 건조가 허용되지 않을 경우 미국 조선소에서 한국 설계와 부품을 활용하는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현지 산업에 대한 기여가 발주국의 평가 대상임을 보여준다. 캐나다 정부는 독일 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을 예비 공급자로 정하면서 자국 산업에 돌아갈 이익도 평가했다. 그러나 한화오션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지 못한 이유를 이 평가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사업에서도 현지 투자 요구를 충족하면서 우리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야 한다.
그 범위를 정하려면 미국 조선소 투자와 인력 훈련, 기술 사용권 제공에 드는 비용을 함정 가격과 함께 제안 단계부터 계산해야 한다. 투자는 실제 발주에 맞춰 단계적으로 집행하고, 기술 사용의 목적·범위와 대가, 설계 변경으로 비용이 늘어날 때의 부담을 계약에 정해야 한다. 발주되지 않은 후속함을 확정 매출로 잡아서도 안 된다.

정부는 미 해군의 발주 조건을 확인하고 미국 행정부·의회의 법·예산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 기업은 함정의 성능·납기·가격과 미국 후속 건조 계획을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입찰 이전에 보안과 품질을 검증받을 준비를 마치고 투자 부담까지 계산한 제안이 있어야 한국의 조선 역량이 실제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기식 전 해군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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