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달라졌어요②] 구광모의 조용한 투자, 피지컬 AI로 꽃 피우나

윤영숙 기자 2026. 5. 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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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 회동' 등 화려한 무대보다 빠른 실행 집중…젠슨 황 회동여부 주시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인공지능(AI) 랠리를 계기로 다시 평가대에 올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사이클의 중심에 서는 동안 LG는 한동안 AI 랠리에서 소외됐다. 지난해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 글로벌 빅테크 수장이 만난 이른바 '깐부 회동'에서도 LG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5월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LG전자와 LG이노텍, LG씨엔에스 등 주요 계열사 주가가 로봇,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기대를 타고 급등한 데 이어, 구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회동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구 회장의 AI 전략으로 옮겨가고 있다.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전면에 나서기보다 포트폴리오 정리와 미래 사업 투자를 조용히 이어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연초 AI 전환 메시지, 실리콘밸리 출장, 글로벌 AI 기업과의 접점 확대, 엔비디아와의 협력 기대가 한꺼번에 부각되면서 '조용한 베팅'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구광모 LG 대표, 사장단 회의서 AX 속도 강조[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조용했던 AI 베팅, 2026년 들어 전면으로 부각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LG가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변곡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 패러다임과 경쟁의 룰이 바뀌는 만큼 기존 성공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고객에게 닿을 핵심 가치를 선택하고,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수준까지 파고드는 '치열한 집중'을 강조했다.

또한 올해 3월 사장단회의에서도 구 회장은 AI 시대를 맞아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장단에 빠른 실행을 주문했다.

올해 들어 LG가 로봇, 기업용 AI 전환, 데이터센터 인프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미래 사업으로 묶어 제시하면서 구 회장의 메시지는 그룹의 AI 사업화 방향과 연결되고 있다.

LG의 AI 전략은 챗봇이나 대형언어모델(LLM) 경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LG전자 로봇과 스마트홈, LG이노텍 센싱과 기판, LG씨엔에스 기업용 AI 플랫폼, LG에너지솔루션 ESS까지 이어지는 산업 현장형 AI에 가깝다.

LG AI연구원의 독자 AI 모델 '엑사원'도 이 전략의 한 축이다. 엑사원은 챗GPT나 클로드 같은 글로벌 프론티어 모델과 정면 승부하기보다 기업 업무에 필요한 성능을 합리적인 비용과 보안 환경에서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LG씨엔에스가 '에이전틱웍스'에 엑사원을 결합해 기업용 AI 에이전트 플랫폼을 키우는 것도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이다.

그동안 시장은 LG를 AI 후발주자로 봤다. 반도체가 없고, 엔비디아나 HBM처럼 한눈에 보이는 수혜 구조도 약했다. 그러나 AI의 무게중심이 현실 세계에서 구동되는 피지컬 AI로 확장되면서 구 회장 체제에서 진행된 로봇과 전장, 기업용 AI 투자가 뒤늦게 조명받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북미 ESS SI 전문 자회사 버테크 방문[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로보스타·베어로보틱스·스킬드AI…로봇 퍼즐 맞추는 LG

LG전자는 2018년 로봇 제조 전문 기업 로보스타 경영권을 확보하며 산업용 로봇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고, 미국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 경영권도 확보했다. LG전자는 2024년 베어로보틱스에 6천만달러를 투자해 지분 21%를 확보한 데 이어, 2025년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율을 51%로 높이며 자회사로 편입하는 수순을 밟았다.

LG씨엔에스는 로봇 지능 스타트업 스킬드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해 지분 투자했다. LG씨엔에스는 스킬드AI의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반으로 제조·물류 현장에 특화한 산업용 AI 휴머노이드 솔루션을 개발할 계획이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피규어AI에도 투자자로 참여했다. 피규어AI는 엔비디아, 인텔캐피털, 퀄컴벤처스 등 글로벌 투자자들이 참여한 로봇 스타트업으로, 가정과 상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전장 분야에서는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 업체 ZKW 인수가 재조명되고 있다. LG전자는 2018년 11억유로 이상을 들여 ZKW를 인수하며 차량용 조명과 전장 사업 기반을 강화했다. 당시에는 전장 포트폴리오 확대 차원의 대형 M&A였지만, 피지컬 AI 국면에서는 자율주행·스마트카 시대 차량용 조명·센싱 연계 전장 자산으로 다시 해석되고 있다.

구광모 LG 회장, 팔란티어 알렉스 카프 창업자와 회동[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실리콘밸리·엔비디아 접점 확대…피지컬 AI 퍼즐 맞추나

구 회장의 행보가 올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4월 미국 출장이다. 구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팔란티어 경영진을 만나 기업 데이터를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AI 혁신 사례를 논의했다. 이어 로봇 지능 기업 스킬드AI 경영진과 만나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을 참관하고 피지컬 AI의 산업 적용 가능성을 점검했다.

팔란티어는 기업 데이터를 실제 업무 흐름에 연결하는 데 강점이 있고, 스킬드AI는 로봇이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로봇 지능 분야 기업이다. 구 회장의 방문지는 LG가 겨냥하는 AI가 단순 모델 개발보다 제조, 물류, 로봇, 전장 등 현장 적용형 AI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엔비디아와의 접점도 같은 맥락에서 부각되고 있다. 4월 말 엔비디아 관계자가 LG를 찾아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젠슨 황 CEO의 딸인 매디슨 황이 LG전자를 방문해 류재철 LG전자 사장과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장은 이를 LG가 본격적으로 피지컬 AI 생태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6월 초 구 회장과 젠슨 황 CEO의 회동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구 회장이 글로벌 AI 네트워크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구광모 LG 회장, 실리콘밸리서 아비나브 굽타 스킬드AI 공동창업자와 회동[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상속 리스크 넘었지만 관건은 실적…젠슨 황과 회동 주목

구 회장의 리더십 재평가에는 지배구조 불확실성 완화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2월 고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과 두 딸이 구 회장을 상대로 낸 상속회복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 리스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1심에서 구 회장 측 손을 들어주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경영 안정은 구 회장이 AI 전환과 포트폴리오 재편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다. 다만 시장의 기대가 실제 평가로 이어지려면 실적이 필요하다.

최근 LG그룹주 급등은 엔비디아 협력 기대와 피지컬 AI 테마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테마만으로는 지속성이 약하다. LG전자의 AI 데이터센터 냉각 사업이 실제 빅테크 수주로 이어지는지, 로봇 액추에이터와 홈로봇이 매출로 잡히는지, LG씨엔에스의 기업용 AI 솔루션이 반복 가능한 플랫폼 매출로 커지는지가 중요하다.

엑사원 역시 기술력 자체보다 실제 적용 성과가 관건이다. 독자 모델을 보유했다는 점만으로는 AI 리더십을 인정받기 어렵다. LG씨엔에스의 기업용 플랫폼, LG전자 로봇·스마트홈, LG이노텍 센싱, LG에너지솔루션 ESS 등 계열사 사업과 결합해 비용 절감이나 매출 확대 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

LG의 AI 전략은 삼성의 반도체, SK의 HBM처럼 한눈에 보이는 구조가 아니다. 대신 AI가 집, 공장, 자동차, 로봇, 데이터센터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제품과 시스템을 묶는 방식이다.

결국 구광모식 AI 리더십의 평가는 여기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조용히 뿌린 AI 투자가 피지컬 AI 밸류체인으로 연결될지, 아니면 시장 기대가 앞선 AI 워싱에 그칠지가 관건이다.

다음 주 젠슨 황 CEO와의 회동이 현실화할 경우 LG의 AI 전략은 다시 한번 시장의 검증대에 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AI 빅테크 회동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구 회장이 이번에는 LG의 피지컬 AI 전략을 앞세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AI 동맹'…젠슨황·이재용·정의선 '깐부회동'[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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