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이자 관광지인 골목... "살 수 없다"와 인증샷의 큰 간극
[신서윤 기자]
▲ 11월 8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핵심 장소인 가회동 한옥 골목은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간 듯 발 디딜 틈 없이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 |
ⓒ 신서윤 |
"제가 드릴 말씀이 없어요. 본 그대로 쓰시면 돼요. (방문 시간은) 규제가 안 되고 있죠. 강제성이 없죠... 잠시만요."
서울의 대표적 관광명소이자 주택가가 즐비한 주거지인 북촌 한옥마을. 그곳의 백미로 손꼽히는 가회동 한옥 골목에서 만난 '마을 지킴이'에게 대화를 마무리 지을 여유는 없었다. 수많은 관광객에게 '작은 소리로 대화하기' 등 에티켓을 전달하며 고군분투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옥마을과 같이 꾸준히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장소를 보며 거주민의 생활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적 있는가? 대부분은 상권 활성화 등의 장점만 쉽게 떠올릴 뿐이다.
2018년 트렌드모니터의 오버투어리즘 및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오버투어리즘 문제 해결이 시급한 지역'에 북촌 한옥마을이 58.3%라는 과반의 비율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오버투어리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 공해(45.4%), 관광지역 실제 거주자들의 삶의 질 저하(43.7%)가 거론되기도 했다. 오버투어리즘이란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주민들의 삶이 침해되는 현상을 말한다.
매스컴을 통해 거주지가 관광지로 홍보돼 온 한옥마을에서는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과 무분별한 사진 촬영, 사생활 침해 등 다양한 갈등이 계속됐다. 거주민들의 생활권 침해 역시 계속해서 언급됐고, 이에 서울시와 종로구도 대응에 나서고자 2018년 7월 '북촌 주민피해 최소화를 위한 8대 대책 추진(마을 방문 시간 제한, 단체관광객 현장 안내 지원, 관광버스 불법주정차 특별단속, 집중청소구역 지정, 개방화장실 확대, 관광객 금지행위 예방, 관광가이드 사전교육, 주민 관리인력 양성)'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강제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문제 해결은 미흡했다. 이후 2019년 정부는 관광진흥법에 '특별관리지역' 제도를 도입해 향후 늘어날 관광수요와 이에 따른 갈등을 정책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노력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확산되며 해당 문제가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일상 회복 이후 그 우려는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그동안 사람이 없어 조용했던 북촌 한옥마을이 2년 여의 팬데믹을 지나 내·외국인으로 이미 시끄러워진 것이다.
▲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북촌한옥마을운영회 현수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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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방문한 한옥마을은 주말이 아니라는 점이 무색할 만큼 팬데믹 이전과 같은 풍경이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거주민의 불만이 담긴 현수막이 곳곳에 있어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북촌의 현재가 피부에 와닿는다. 현수막 너머에는 셀카봉과 삼각대를 설치해 인증샷 및 웨딩·돌잔치 스냅 사진을 남기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대비돼 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 한옥마을 곳곳에 붙어 있는 방문 시간 안내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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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의 방문 시간은 평일·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일요일은 골목길 쉬는 날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오후 6시를 훌쩍 넘긴 시각에도 골목에는 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방문 시간 제한이라는 자율시행제가 지니는 한계점은 분명했으며, 거주민들의 피해 역시 여전했다. 종로구청 관광정책팀 이은지 주무관은 "관광객들이 마을 방문 시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점이 강조돼 홍보가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2021년 종로구 관광과가 진행한 '주거지역 관광명소 주민피해 실태조사' 결과, 오버투어리즘 해결방안 1순위로 관광객 방문 시간 제한(22.7%)이 꼽혔다.
▲ 정숙 관광을 전달하는 마을 지킴이와 곳곳에 배치된 정숙 안내판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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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적정인원 초과 시 분산을 통한 통제, 정숙 관광 홍보 및 금지 행동을 계도하는 마을 지킴이 제도에도 실효성은 부족했다.
혼잡한 시간대에도 골목은 1명의 마을 지킴이가 배치돼 운영이 효율적이지 못했고, 마을 방문 시간이 아닐 때 출입하는 관광객을 제한할 인력도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북촌을 관광지로 조성된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거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 지킴이는 주로 그들의 행동을 제한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원활하지 않은 모습도 다수 눈에 띄었다. 즉,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 대책은 과태료 부과 등의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낮은 것으로 보였다.
▲ 한적한 북촌로12길 일대와 관계자가 추천한 대표적인 공공한옥 ‘백인제 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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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공공한옥 골목 기회 삼아 '거주민과 관광객의 공존' 이뤄야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의 제한이 아닌,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서울 공공한옥을 조명해 관광객을 공방, 체험관 및 문화시설이 모여있는 가회동 공방 골목으로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가회동 공방 골목이 위치한 북촌로12길 일대는 한옥의 내부를 감상할 수 있는 공공한옥밀집지역이지만, 가회동 한옥 골목이 위치한 북촌로11길 일대와 달리 텅 비어 있다시피 한산했다. 한옥을 보전·활용하여 방문객과 주민에게 개방하고 운영시간 내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공공한옥 관계자는 "이쪽(북촌로12길)을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저쪽(북촌로11길)을 주로 많이 가고"라고 말했다. 또한 "북촌 한옥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한옥마을'"이라고 강조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점은 팬데믹 이전과 같은데, 당시와 비교하면 언론보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오버투어리즘의 심각성과 이를 사회적 문제로 여기는 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로구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북촌 한옥마을은 전통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매력적인 장소다. 그러나 거주민의 일상생활과 주거환경이 먼저 보호돼야 관광지로도 매력적인 곳이 될 수 있다.
여행객을 막는 것이 아닌, '여행객과 거주민의 공존'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거주민의 생활권 보호, 관광객의 원활한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목표로 삼은 채 점차 불가피하게 증가할 관광수요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많은 사람이 거주민의 삶을 존중하는 성숙한 여행 또한 진정한 '공정여행'임을 인식하는 데 한 걸음 다가가길 기대해본다. 팬데믹 이전에 이루지 못한 '거주민과 관광객의 공존', 이제는 이룰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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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서울여자대학교 바롬종합설계프로젝트 '인권' 관련 기사입니다. 현장 취재는 신서윤, 김유진, 박수빈, 오다예, 이서연 기자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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