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이김춘택]
노동현장에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가 작업중지명령을 내린다. 2019년까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전사 작업중지명령을 원칙으로 해왔다. 그러나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이후에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해당 작업'과 '중대재해가 발생한 작업과 동일한 작업'에만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범위를 축소했다.
법 개정에 따른 작업중지명령 범위 축소도 문제인데, 한술 더 떠 노동부는 그 법마저 자의적인 해석하여 작업중지명령 범위를 더욱 축소하고 있다. 그 결과 중대재해로부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작업중지명령 제도 자체를 노동부가 스스로 허물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계획에 없던 야간 작업하다 변
지난 9월 9일 밤 10시경 한화오션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32미터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2024년 들어 한화오션에서 네 번째 발생한 중대재해다. 특히 이번 사고는 두 가지 점에서 한화오션의 '기업살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첫째, 이번 사고는 늦어진 공정을 만회하고자 원청 한화오션이 하청업체에 무리하게 작업을 강요해 발생했다. 하청업체가 사고 당일 작업을 마치고 오후 6시 30분경 현장 사진을 보내자 한화오션은 "이렇게 두고 퇴근한 건가요?"라고 반문하며 야간작업을 강요했다. 결국, 퇴근하는 작업자들을 다시 불러 일을 시킬 수 없으니 평소에는 직접 작업을 하지 않고 현장 관리업무를 하는 직장과 반장이 계획에 없는 야간작업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절차에 따른 '작업 승인서'도 없이 조선소 말로 이른바 '도둑 작업'을 한 것이다.
계획에 없던 야간작업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청업체는 "야간작업하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죠?"라고 위험을 경고하고 항의했지만, 한화오션은 "내일 이런 얘기는 만나서 하시죠"라며 그 경고를 묵살했다. 결국, 하청업체는 위험을 알면서도 작업을 해야 했고 항의 문자를 보낸 지 불과 10분 뒤 결국 노동자가 추락해 목숨을 빼앗겼다.
둘째, 이번 사고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추락 방지 조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않는 상황에서 고소작업을 한 결과 발생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는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13조에 "안전난간의 구조 및 설치요건"에 대해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 사고 장소의 허술한 안전난간. 중간 난간대와 하부 난간대가 추락 방지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는 로프로 되어 있다 |
ⓒ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
▲ 난간대가 로프로 되어 있어 그물과 작업공간 사이에 쉽게 큰 틈이 발생한다. 이 틈으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
ⓒ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
결국, 원청의 작업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획에 없던 야간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는 추락 방지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는 그물 틈 사이로 떨어져 사망하게 된 것이다.
제한적인 작업중지명령
이번 사고는 컨테이너선 상부에 '랏싱브릿지'라는 대형 철구조물을 탑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에 노동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작업과 동일한 작업을 '랏싱브릿지 탑재작업'으로 해석하여 한화오션에서 건조 중인 컨테이너선 9척의 랏싱브릿지 탑재작업에 대해서만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이 같은 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사고의 근본 원인이 랏싱브릿지 탑재작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추락 방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허술하고 위법한 안전난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화오션에서 건조 중인 컨테이너선 9척의 상부는 모두 사고 장소와 마찬가지로 로프와 그물망으로 된 허술하고 위법한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사고의 근본 원인에 따라 판단할 때, 랏싱브릿지 탑재작업에 대해서만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사고 장소와 같은 조건의 허술하고 위법한 안전난간이 설치된 모든 컨테이너선 상부작업 대해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는 것이 맞는가? 작업중지명령의 목적과 취지에 따르면 당연히 후자여야 한다. 법 이전에 상식적인 판단만 해도 당연히 후자여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는 기업의 생산 차질을 의식했는지, 최대한 법위를 축소하여 잘못된 작업중지명령을 내려놓고는 아무리 항의해도 그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있다. 그래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한화오션의 수많은 노동자는 동료가 추락한 상황과 똑같은 조건의 컨테이너선 위에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다. 노동부의 잘못된 작업중지명령이 노동자들을 오늘도 똑같은 죽음의 위험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 사진3 안전기둥도 고정식이 아니어서 손으로 건드리면 쉽게 빠져 큰 틈이 벌어져 추락 방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
ⓒ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
▲ 사진4 사고 한 달이 넘도록 난간대는 철제 와이어로 교체되지 않고 로프 그대로인 채로 로프만 클램프로 고정해놓았다. 추락 방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
ⓒ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
다만, 금속제 파이프로 안전난간을 설치하려면 공정을 바꿔야 하고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당장은 최소한 로프로 되어 있는 중간 난간대와 하부 난간대만이라도 상부 난간대와 같은 철제 와이어로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한화오션은 허술한 로프는 그대로 둔 채 단지 하부 로프와 그물망을 클램프로 고정해 놓았다. 사고 이후 바뀐 것이라고는 이것이 전부다. 허술한 로프와 그물망을 클램프로 고정한다고 해도 추락 방지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여전하다. 조선하청지회가 10월 4일 현장안전점검을 해보니, 난간기둥 역시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쉽사리 빠져서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다행히(?) 한화오션의 작업중지 해제 요청은 불승인 되었다. 노동부는 재발 방지와 안전보건 강화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과 실행 방안 등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5가지 추가 조치를 요구했는데, 그 내용에는 "추락 방지를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 마련"이 포함되어 있다. 허술한 로프와 그물을 클램프로 고정하는 것만으로는 추락을 방지할 수 없다고 노동부도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노동부의 판단은 자신이 내린 작업중지명령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과도 같다. 추락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와 동일한 조건에 있는 장소는 작업중지명령을 내려야 마땅하며 추락 방지를 위한 개선조치 없이 계속 노동자를 일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하청노동자가 32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런데 노동자 생명은 아랑곳없이 작업중지만 빨리 해제하려는 한화오션과 생산 차질을 의식해 최대한 범위를 축소해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는 노동부의 행태로 한화오션 노동자들은 여전히 똑같은 조건의 추락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다. 가슴 한편엔 분노를 다른 한편엔 자괴감과 절망을 가지고.
기업은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니 그렇다고 치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노동부의 행태를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까. 노동부는 사고 장소와 같이 추락 방지용 안전난간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한화오션 모든 컨테이너선 상부 작업에 대해 지금이라도 작업중지명령을 내려야 한다. 실질적으로 추락을 방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개선조치 없이 작업중지를 해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이김춘택 기자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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