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파악 못하는 윤 정부... '원전 최강국' 정책의 허점들 [소셜 코리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이헌석]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 핵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최강국'을 외치고 있습니다. 반면 세계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높입니다. 모두 탈탄소화라는 시대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올바른 에너지 정책은 무엇일까요? 소셜코리아는 핵발전(원전)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을 넘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사뭇 다른 입장을 가진 글 2개를 함께 게재합니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함께 볼 기사 : 원전과 기후재앙, 현실적 판단이 필요하다(https://omn.kr/29yku)]
핵발전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핵발전 역사 내내 진행된 찬반 논란은 다양한 쟁점을 갖고 있다. 핵발전소가 핵무기 기술을 상업용 발전소로 옮겨 온 것이다 보니 핵기술 확산, 핵무기 전용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거치면서 사고 위험성과 안전성 문제는 지금까지 주요한 논란거리이다. 또 1970~1980년대 집중적으로 건설한 핵발전소 수명이 다함에 따라 고준위 핵폐기물이나 노후 핵발전소 폐로 과정의 재원 확보, 폐로 과정의 피폭과 핵폐기물 문제가 쟁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핵발전 찬반 논란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경제성 논란이다. 1954년 미국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루이스 스트로스는 과학기자협회 연설에서 "미래에 핵발전은 너무 저렴해져서 전기요금을 측정할 필요가 없을 것(too cheap to meter)"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발언을 할 당시였던 1950년대는 물론이고, 고리1호기 도입을 검토하던 1960년대도 비싸기는 마찬가지였다.
1965년 11월 원자력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원자력연구소장은 핵발전소 건설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질문에 대해 "1970년대가 되면 건설 단가가 화력발전과 비교해 그렇게 비싸지 않을 걸로 예상된다"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 의원들도 "반공센터도 3억 원이 없어서 공사를 하지 못하는데 건설비 5300만 달러(당시 환율로 136억 원)를 어디서 구하느냐"라고 질타했다.
결국 1969년 고리1호기 건설을 확정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건설 비용이 없어 미국과 영국, 웨스팅하우스 등으로부터 1억 7390만 달러 차관을 얻었다. 이는 당시 단일 차관으로는 최고액이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0일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과 터빈 블레이드 서명식을 마친 뒤 축사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런데 2016년 착공한 1400MW 용량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 비용이 8조 6천억 원이다. 8년의 시간 차이, 해외 공사로 인한 비용 증가 등을 고려해도 40%나 용량이 더 큰 발전소 건설비용이 3분의 1밖에 들지 않았던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야당과 체코 현지 언론이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24조 원도 '거의 덤핑가격'이라는 지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같은 회사가 건설하는 같은 발전소라도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료비 비중이 큰 화력발전소와 달리 핵발전소 경제성을 결정하는 것은 건설비용이다. 또 대규모 건설공사 특성상 공사 기간 단축, 공급망 안정성 등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핵발전소 건설 비용이 프랑스의 절반 정도이고, 우리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보다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정부 정책이 핵발전소 건설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1979년 제정한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이다. 고리1호기 가동 직후에 만든 이 법은 더욱 효율적으로 핵발전소 부지를 선정하기 위한 것이다.
핵발전소처럼 넓은 면적이 필요한 발전소 건설을 위해서는 다양한 용도의 땅을 매수하거나 용도변경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전원개발촉진법은 산업부 장관이 전원 개발사업으로 승인하면 18개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종 인허가, 면허, 승인, 협의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고 사업자가 필요한 땅을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는 묻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두 차례 설명회나 공청회 정도만 진행하면 정부 의지에 따라 발전소 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주민들이 끝까지 저항하더라도 사유재산 수용은 이뤄진다. 이에 발전소·송변전 시설 인근 주민들은 전원개발촉진법이 '무소불위의 권한'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40여 년 동안 전원개발촉진법은 건재하다.
안전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안전 규제는 중대 사고를 대비한 것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는 실제 발전소 운전 과정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동차로 예를 든다면 안전벨트나 브레이크 잠김 방지시스템(ABS), 타이어 공기압 경보장치(TPMS)가 없더라도 자동차는 잘 달린다. 하지만 비상상황에서 이들 장치가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연료가 녹는 일이 발생하자, 핵연료의 비상노심 냉각 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대처 시간을 늘리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사고 저항성 핵연료(ATF)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유럽연합(EU)에서 녹색산업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녹색 분류체계(Taxonomy)에 핵발전을 포함할지 논쟁이 오고 갔다.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찬핵 국가들의 핵발전 포함 주장과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한 탈핵 국가들의 핵발전 제외 주장이 격렬히 부딪쳤다.
결국 유럽연합은 2025년까지 사고 저항성 핵연료 도입, 고준위 핵폐기물 대책 마련 등 몇 가지 단서를 달고 녹색 분류체계에 핵발전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안전성과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일부 수용하고, 프랑스 같은 핵발전 강국의 주장도 일부 수용한 절충안이었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진행한 우리나라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논의에서는 이런 세부적인 사항이 쟁점이 되지 않았다. 그냥 핵발전을 포함할 것인지 아닌지, 특히 유럽도 핵발전을 인정한다는 식의 보도가 다수였다. 결국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 도입 시점이 2025년이 아니라 2031년으로 바뀌었다. 아직 국내 개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었다.
2011년부터 시작한 국제사회의 사고 저항성 핵연료 논의에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기존과 동일한 핵연료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안전 규제는 결국 비용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핵발전소가 더 저렴한 이유는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 2015년 10월 24일 영덕군에서 열린 원전 찬반투표 진행을 위한 거리행진이 열리고 있는 모습. |
ⓒ 조정훈 |
아래 표는 20년 전과 비교한 주요 핵발전소 운영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핵발전소 숫자다. 독일, 대만, 벨기에처럼 탈핵을 선언하고 이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지만, 일본, 영국, 미국처럼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진행하거나 추진하는 나라들도 있다. 하지만 운영중인 핵발전소는 모두 줄었다. 특히 전통적인 핵발전 강국으로 알려진 프랑스 역시 지난 20년간 운영 중인 핵발전소가 줄었다.
이는 정부가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채택하는 것과 실제 핵발전이 주력 발전이 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핵발전소 건설 붐에 맞춰 1970~80년대에 건설한 핵발전소들이 이제 하나 둘 수명을 다함에 따라 폐쇄되고 있다.
▲ 주요 국가의 운영 중 핵발전소 수 비교 국제에너지기구(IEA) 발전용 원자로 정보시스템(PRIS)을 정리 (단위 : 개) |
ⓒ IEA |
▲ 제주 김녕풍력발전단지 |
ⓒ 연합뉴스 |
▲ 연간 글로벌 발전 투자 금액 비교 (2021~2024) 2024년은 추정치. 단위 : 10억 달러(2023년 환율 기준) (출처 : IEA ‘세계에너지투자 2024’) |
ⓒ IEA |
단순히 분위기만 가라앉은 것이 아니다. 한전은 호남, 제주를 중심으로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 변전소로 지정하고 9월부터 해당 지역 계통 접속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즉 발전소를 짓더라도 송전선과 연결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맞춰야 할 송전망을 갖추지 못했고, 영광 핵발전소처럼 규모가 큰 발전소의 수명 연장이 계획되어 있어 기존 선로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전은 2032년이나 되어야 신규 송전선로 건설 계획을 마무리함에 따라 계통 접속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호남과 제주는 전국에서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가장 많은 지역이고, 현재도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건설되는 지역이지만 이들 지역에서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은 앞으로 수년간 불가능해졌다.
우리나라는 38개 OECD 회원국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최하위권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의 핵발전 선호와 송전망 문제로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까지 막히게 된 것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체코 핵발전소 건설 과정에서도 라이센스 문제로 미국 정부와 웨스팅하우스의 승인이 필요하고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같은 이유로 국내에서는 '원전 최강국 건설'을 외치지만 세계 최대 핵발전 건설 시장인 중국에는 발도 못 붙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
ⓒ 이헌석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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