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배운 믿음 안고 고향으로… “돕는 사역자 될 것”

지난 15일 주일 서울 서초구 상문고등학교 내 서울드림교회(김여호수아·신도배 목사) 드림센터를 찾은 기자는 낯선 풍경을 목격했다. 3층 유치부 예배실, 1층 카페, 지하 1층 청소년부 예배실 곳곳에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청년들이 서툰 억양의 한국어로 찬양을 인도하고, 커피를 내리며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도를 맡고 있었다.
겉으로는 단순한 봉사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한국에 와서 훈련을 받는 선교사 꿈나무들이다. 단순한 유학 지원이 아니라 현지 청년을 선교 리더로 세운 뒤 다시 자국으로 파송하는 이른바 ‘보내는 선교’ 모델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서울드림교회의 드림빌더스(Dream Builders) 사역을 통해 지금까지 10명의 청년이 훈련을 받았다. 이날 지하 1층 청소년부 예배실에서 만난 인도 출신 샘 모한(29) 전도사는 이 사역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함께해 온 첫 사례다. 2016년 아버지와 함께 신학 공부를 위해 한국에 왔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 16세에 세례를 받은 뒤 일찍이 사역의 길을 결심했다. 한남대 신학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거쳐 현재 청소년부를 맡고 있다.
교회 안에서 사역을 경험하며 ‘현장에서 쓰임 받는 리더’로 성장했고 이는 이후 드림빌더스 사역이 본격화되는 데 중요한 모델이 됐다. 모한 전도사는 “신학은 성경의 기초를 배우는 것이고 교회에서는 그걸 실제 사역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웠다”며 “특히 교회 운영과 다음세대 사역 경험은 앞으로의 사역에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여정에는 아픔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목회자였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것이다. 아버지는 서울드림교회와 인도 선교를 함께한 동역자였으며 현재 현지 교회는 가족들이 이어가고 있다. 모한 전도사 역시 훈련을 마친 뒤 그 사역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그는 인도로 돌아가 청년 사역과 교회 개척에 힘쓸 계획이다. “청년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들 가운데서 또 다른 리더와 목회자가 세워지길 원한다”며 “더 나아가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사역센터를 세워 다음세대가 말씀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드림교회는 4년 전부터 해외 선교지 청년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훈련하고 있다. 청년들의 생활을 지원하며 외부 아르바이트 대신 공동체 안에 머물며 예배와 사역, 일상을 함께하도록 돕는다. 이들은 주일학교 교사, 찬양팀, 카페 봉사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담당 사역자 김강림(37) 목사는 “현지 선교사가 추천한 청년들을 한국에서 맡아 훈련한 뒤 다시 선교지로 파송하는 구조”라며 “선교사를 ‘보내는 것’을 넘어 현지에서 쓰임 받을 사람을 ‘세워 보내는 선교’”라고 설명했다.
현지 청년이 직접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얻는 장점이 많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없고, 더욱 실제적인 사역이 가능하다. 동시에 이들은 한국교회와 선교지를 잇는 ‘브리지’ 역할도 감당한다.
서울드림교회는 앞으로 최대 30명 규모로 사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브라질, 카자흐스탄 출신 청년 5명이 새롭게 합류할 예정이다.

1층 식당 옆 카페에서는 인도 출신 네하(23)를 만날 수 있었다. 성도들을 맞이하며 교회 공동체의 환대를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고 있다. 그는 “카페에서 봉사하며 성도들이 밝은 표정으로 서로 인사하고 기쁨으로 섬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교회 공동체 문화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2023년 협력 선교사의 소개로 드림빌더스에 참여한 네하는 현재 총신대 기독교교육과에 재학 중이다. 그는 전공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인도에서는 신학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네하는 5년 전 복부 질환으로 수술을 받으며 신앙을 더욱 붙잡게 됐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며 신앙은 익숙했지만, 병과 외로움의 시간을 지나며 스스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의 신앙은 개인적인 결단을 넘어 현실의 무게와도 맞닿아 있다. 최근 인도에서 기독교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그의 아버지는 세례를 집례한 사진이 퍼지며 한때 수감되기도 했다. 현재는 풀려났지만 그 사건은 그에게 신앙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 계기가 됐다.
앞으로 그는 인도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다음세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꿈꾸고 있다. 네하는 “지금 인도의 젊은 세대는 성공과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들이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사역자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3층 예배실에서는 캄보디아 출신 산 소바낫(27)이 아이들과 함께하며 예배를 돕고 있었다. 그의 꿈은 영어교사였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한인 선교사가 세운 캄보디아 라이프대 유아교육과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면서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2019년 한국 유치원들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던 그는 그 경험을 계기로 새로운 꿈을 품게 됐다. 소바낫은 “한국의 유아교육 수준과 어린이집 환경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과 캄보디아의 현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고 스스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이후 한국어를 공부하며 유학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계획이 무너졌고, 한때 기도 제목마저 희미해졌다. 그러던 중 선교사의 제안으로 드림빌더스를 알게 됐다. 그는 “처음 소개받았을 때 3년 전 기도했던 소망이 다시 살아났다”며 “캄보디아에서는 제 나이에 결혼하고 직장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하나님만 믿기로 결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총신대 유아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앞으로 캄보디아로 돌아가 어린이 교육과 복음을 함께 전하는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소바낫은 “시골 지역에는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캄보디아 다음세대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꿈꾸며 자라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소바낫과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 앞에 서서 찬양을 인도하는 이는 태국 카렌족 출신 나라위 카셈차이차로엔(21)이었다. 카셈차이차로엔은 아버지가 목회자였기에 교회와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삶을 바꾼 사건이 13살 때 찾아왔다. 다른 지역에서 열린 수련회에 참석하던 중 수영을 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순간이었다. 그는 “그때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며 “기도를 마치자마자 누군가가 제 머리를 붙잡아 물 밖으로 끌어 올렸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선교사의 권유로 드림빌더스를 놓고 기도할 때 그는 13살 때 서원했던 기억을 떠올렸고, 부모 역시 “하나님께서 너를 택하신 것”이라며 힘을 보탰다. 그는 2023년 한국에 건너와 어학당 과정을 마친 뒤 올해 총신대 기독교교육과에 입학했다. 현재 그는 어린이 찬양팀 교사로서 찬양과 율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카셈차이차로엔은 “태국에는 카렌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이 있는데 그들 가운데는 여전히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며 “훈련을 마친 뒤 고향 교회에서 사역하며 태국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신앙 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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