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부족에 '런던증시 엑소더스'…빈틈 파고드는 中 기업들

김연지 2025. 2. 21.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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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엑소더스&인플럭스]①
유동성 부족에 힘 잃는 런던증권거래소
상장사 엑소더스 뚜렷…지난해 88곳 OUT
빈자리 메우려는 중국 기업들 수두룩
일각선 "중국 없이도 증시 활성화 가능"
이 기사는 2025년02월20일 17시37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런던=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한때 세계 기업들의 핵심 상장 시장으로 인식되던 런던증시가 힘을 잃고 있다. 유동성이 따라주지 못하자 신규 상장을 고려하는 기업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기존 상장사들마저 탈출하기 바쁜 모습이다. 그런 와중 중국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이러한 엑소더스(대탈출) 속 기회가 있다고 보고 런던증시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다만 영국 자본시장에선 런던증시가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중국으로 빈자리를 메울 수는 없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어 업계 관심이 쏠린다.

런던증권거래소의 모습.
한 때 뉴욕증시와 어깨 나란히 하던 런던…무슨 일이

20일 글로벌 회계·컨설팅펌 언스트앤영(EY)에 따르면 지난해 런던증권거래소에서 기업공개(IPO)를 진행한 글로벌 기업 수는 18곳이다. 이는 23개사가 상장했던 직전년도(2023년) 대비 21% 감소한 규모인데다 최근 10년 기록과 견줘도 최저치다.

IPO를 통한 자금 조달 규모도 대폭 줄어들었다. EY에 따르면 지난해 18개의 글로벌 기업은 IPO를 통해 7억 7770만파운드(약 1조 4126억원)를 조달했다. 이 역시 직전년도 규모인 9억 5370만파운드(약 1조 7324억원)에서 18.3% 줄어든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특히 런던증시를 떠난 기업의 수가 신규 상장한 기업의 수보다 훨씬 많았다. 런던증시에 입성했던 88개의 글로벌 기업은 지난해 상장을 폐지하거나 유럽의 다른 증시로 이전 상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엑소더스다. 유동성 감소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어려워지자 기업들이 암스테르담과 미국 같이 더 높은 거래량을 자랑하는 곳으로 이전상장하거나 자진 상장폐지한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런던증권거래소는 한때 뉴욕증권거래소와 함께 세계 주요 주식시장으로 명성을 떨쳤었다.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부 글로벌 기업은 거래 시간대상 런던이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모두 연결한다는 이유에서 이를 선호하기도 했다. 특히 영국은 글로벌 금융 중심지였던만큼, 런던증시 상장은 자금 조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기업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상황이 180도 달라진 시점은 브렉시트 직후다. 브렉시트로 영국과 유럽 간 연결고리가 희미해지면서 런던에 있던 글로벌 기업들이 독일과 네덜란드 등으로 사무소를 이전했다. 리스크 가능성이 생긴 런던보다는 유럽 본토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경향이 커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런던증시 유동성은 빠르게 감소했고, 이는 결국 런던증시에 입성한 기업의 밸류를 낮췄다. 신규상장은 물론이고 이미 입성한 기업도 이전상장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빈틈 노리는 中…“中 없이도 일어설 수 있다” 의견도

중국 기업들은 런던증시의 이러한 상황을 100% 이용해 빈 틈을 메우려는 모습이다. 미국의 압박으로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자 유동성 수요가 급한 런던증시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런던증시 입성으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 투자자들에게 중국시장에 대한 투자 기회를 열고, 런던증시의 산업군과 기업 머릿수를 늘려줄테니 중국 기업에 경쟁력을 실어달라는 바램이 깔린 움직임으로 보인다.

런던증시 입성을 노리는 중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패스트패션 기업인 ‘쉬인’과 사모펀드운용사인 ‘웰킨차이나PE’가 꼽힌다. 이들은 연내 증시 입성을 목표로 IPO 절차를 밟는 중이다.

중국 기업들이 런던증시를 바라보는 이유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앞서 2019년 런던증권거래소는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와 금융 파트너십을 맺은 바 있다. 중국과 영국 자본시장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하는 해당 파트너십은 중국 기업들이 런던에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고, 영국 투자자들이 중국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이 파트너십을 통해 중국 증권사인 HTSC는 2019년 6월 런던과 상하이증시에 동시 상장됐다.

일각에선 영국이 중국 기업을 꼭 유치하지 않더라도 증시에 활력이 돌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허브로써의 상징성△M&A를 비롯한 전략적 투자 유치 사례 증가 △국제적 인지도 확립 측면에서 런던증시 입성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다. EY는 “프랑스의 미디어 공룡인 ‘카날플러스’는 지난 4분기 6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며 “이는 2022년 이후 런던증시에서 이뤄진 가장 큰 규모의 증시 데뷔로, 런던증시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분석했다.

영국에서 자본시장 개혁 의지가 뚜렷하다는 점도 긍정적인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Y는 특히 “런던은 금융 전문성이나 강력한 기업 지배구조, 견고한 법적 프레임워크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잘 활용해 IPO 개혁에 나선다면 다시 예전의 명성을 빠르게 되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연지 (ginsbur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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