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9연속 동결…하반기 인하 타이밍 온다
물가목표 2%까지 긴축 기조 지속
"내수 부진에 7월 인하 가능성"
美 통화정책과 다른 길 걸을수도
한국은행이 아홉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물가가 여전히 한은의 목표 수준인 2%를 웃돌고 있는 만큼 지금 수준의 긴축 강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다만 이번 금리 결정 과정이 통화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적 행보로 해석되면서 금리 인하 시계가 시장의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차별화한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오면서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2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통위원 6명 전원 만장일치로 현 3.50%인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해 1월 마지막 인상 이후 아홉 차례 연속 동결 기조가 지속됐다.
앞서 한은은 지난 2021년 8월 0.50%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1월까지 10차례 연속 인상해 3.50%로 급격히 끌어올렸다. 이 같은 긴축 효과가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물가 둔화세가 관찰되고 있다. 실제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2.8%로 떨어졌다. 지난해 12월(3.2%)까지만 해도 5개월 연속 3%대를 유지했는데, 반년 만에 2%대로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한은의 목표 수준을 상회하고 있어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이 총재는 "대부분 금통위원은 아직 금리 인하를 논의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마지막 마일(mile)에서 물가가 평탄하게 움직이지 않고 굉장히 울퉁불퉁한 길을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금통위원 1명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개진해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금통위원은 소비 위축으로 물가 압력이 약화하고 내수 부진에도 사전적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금리 인하를 주장할 소수의견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2022년 11월 첫 한국판 점도표 등장 후 비둘기파적 의견이 나온 것에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도 "지난 1월 금통위에서 '추가 인상 필요성 판단'이란 문구를 통화정책방향에서 삭제함으로써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를 선언한 이후 조금씩 정책 여건이 금리를 인하하는 쪽으로 맞춰지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던 통화정책 이벤 트였다"고 말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한은이 언제 기준금리를 인하할지에 모이고 있다. 내수 부진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물가 하락 전망이 강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은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각각 2.1%, 2.6%로 제시하면서 직전 전망치를 유지했다. 내수가 부진했지만 양호한 수출이 이를 상쇄하면서다. 다만 내수 부진 우려로 근원물가 전망치가 2.2%로 지난해 11월보다 0.1%포인트(p) 하향 조정됐다. 물가상승률과 근원물가 전망치는 상반기 2.9%, 2.4%, 하반기 2.3%, 2.0%로 제시했다. 하반기에 접어들수록 근원물가가 목표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안재균 연구원은 "여전히 물가 전망 불확실성은 높지만, (한은이) 기조적 물가 하락 흐름은 인정하고 있다"며 "서비스 소비 중심 둔화세가 이어질 경우 근원물가 중심 물가 목표치 2% 도달 확신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앞으로 민간소비 관련 지표들의 결과가 중요하다"며 "5월 수정경제전망에서 한은의 성장, 물가 경로 하향 시 7월 금리 인하 기대가 높아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창용 총재는 "이번 2월 경제 전망을 보면 미세하게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난해 11월 전망과 거의 변화가 없다"며 "개인적으로 상반기 내 금리 인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고 있는 점도 변수로 거론된다. 앞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5.25~5.5%로 유지했다. 지난해 9월 이후 네 차례 연속 동결이다. 이에 따라 한·미 금리 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2%p가 유지됐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3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작다며 조기 피벗(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에 따라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도 지연될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이번 회의에서 미국과 차별화한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이 총재는 이날 "2022년과 지난해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굉장히 빨랐고, 유가도 같이 올랐기 때문에 미국 금리를 따라가야 하는 불가피한 입장이었다"며 "미국이 피벗을 언제 하게 될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각국이 차별화된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쪽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 연구원은 "한은의 판단처럼 소비 중심의 내수 부진이 커지고, 물가 2% 도달 확신이 형성되면 연준과 관계없이 정책 전환의 시점이 될 것"이라며 "연준의 인하 시점 이연이 반드시 한은의 정책 전환을 늦출 요인은 아니다"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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