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남편에게 일자리 제안 들어오던 날, 가족들 사이에 벌어진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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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언제였던가 싶게 모르고 지났던 갱년기를 앓고 있는 것인지, 남편의 어깨가 축 늘어져 기운 없이 보인 지가 한참이다. 일을 하다가도 뭔가를 놓치거나 엉뚱한 곳에 가 서 있는 경우도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야 하는데 싱크대 위 찬장 문을 열고 우두커니 서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다. 그때 남편의 눈빛은 잠시 멍한 체 내가 무엇을 하려던 참이었지? 하였다. 가스 불을 켜두고 한참 동안 다른 일을 하다 까무러치듯 놀랐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첫째 아이는, 아빠가 너무 오랫동안 집에만 있어 그렇다고 걱정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남편은 집중적으로 나를 간호했다. 남편만을 위한 시간은 없다시피 하였을 것이다. 집안 일을 도맡아 하면서 나를 챙겨줬다. 내가 일어나지 못하면 빨대를 물려 약을 먹게 했고, 아침저녁 붕대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5겹의 붕대를 풀고 감으며 치료해 주었다.
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하루 24시간 나에게서 눈도 떼지 못하고 견뎌내느라 남편의 에너지는 죄다 고갈되고 말았을 것이다. 눈에 띄게 늘어난 남편의 흰머리를 보면 순간순간 마음이 아린다.
퇴직 후 4년 만에 들어온 일자리 제안
그런 남편에게 며칠 전,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이제 겨우 내가 밥 숟가락을 들고 스스로 밥을 떠먹을 수 있게 된 이즈음에 말이다. 일자리 장소는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이십여 분이 소요되는 곳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의 살림살이라면 출퇴근 왕복 한두 시간 쯤이야 고민 거리가 되지 않겠지만, 지방에서라면 다소 먼 거리이다. 하루 아홉 시간 근무를 해야 하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대다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인 찬스라 급여는 묻지 않았다. 못 받아도 최저 시급은 받지 않겠냐는 안도감으로.
남편의 취직 건을 두고 가족 간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무엇보다 남편 본인은 우선 흥분한 상태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예순다섯, 흰머리 풍성한 나이에 일자리 제안을 받으니 마치 청년이 된 것처럼 금세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기운 센 슈퍼맨이 되었다.
첫째 아이는 아빠가 일을 원하면 무조건 찬성한다고 하였다. 예순 다섯인 아빠가 일 하려는 목적이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아빠가 원하면 찬성이라고 하였다. 둘째 아이는 사뭇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4년여 공백을 뚫고 새로이 일을 시작할 결심이라면 출퇴근 왕복 세 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건 고단하니 집에서 가까운, 근무시간이 짧은 일을 찾아보시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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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년 퇴직할 당시에는 나름 소박한 꿈들도 있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여행하기도 그중 하나였다. |
| ⓒ anuomar on Unsplash |
남편은 정년퇴직하고 어느덧 4년의 시간들이 지났다. 정년 퇴직할 당시에는 나름 소박한 꿈들도 있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잔 마시면서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바람도 익히면서 스스로를 쉬게 해 주고픈 꿈이 있었다. 집에서는 아침이면 조간신문을 펼쳐들고 뜨거운 커피 향기를 맡으면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이따금 집 근처 낮은 산을 오르기도 하면서.
와장창 그 꿈을 깨어버린 장본인이 다름 아닌 나이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남편을 잡을 수도 등 떠밀어 내보낼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남편이 선택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비겁하지만...
나는 남편을 조금 쉬게 해 주고 싶다
"칠십까지만 일 하고 오면, 우리 집 금방 부자 되지 않을까? 당신하고 하려고 했던 거 그때부터 하면 되잖아."
웃으며 나를 보는 남편을 보면서 울음이 났다. 마치 시장 한복판에서 엄마 손을 놓치고 겁에 질려 우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이 났다.
아프기 전까지의 난 어쩌면 부부이면서도 열심히 손익을 따져 계산 했었다. 남편이 나를 아프게 하는 만큼 잔소리와 바가지로 응수했었다. 남편이 싫었던 때도 분명 있었다. 우리 이제 그만 살자고 못된 말을 하며 남편을 흘겨보았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다. 젋었을 때의 남편과 나는 치열하게 다투고, 할퀴며 서로를 미워도 했다.
그러나, 아프고 난 이후 나는 더 이상 남편과 나 사이 누가 더 손해인지 계산하지 않았다. 영악하게도 이미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남편 마음을 받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가장 먼저 남편을 생각했다. 이제는 나도 남편에게 뭔가 이익이 되는 인물이 되어야지 결심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언제 잘못될지도 모르니 그때까지 남편 두 손 꼭 붙잡고 늘 함께 있어야지 욕심도 부렸다. 이제는 그만 바쁘게 열심히 살고, 앞으로는 느리게 느리게 살아야지 마음 먹었다. 겨우 2년을 껌딱지 되어 붙어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분리불안인가보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자기야, 우리 이제 그만 바쁘게 열심히 살고, 앞으로는 느리게 느리게 살아요."
남편에게 겨우 말했다. 생의 어려움이 우리를 고민하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남편을 조금 쉬게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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