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의 정치학, 왜 하드코트가 세상을 지배하는가
[심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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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nithr17 on Unsplash |
ATP 투어 일정을 보면, 하드코트는 약 56%, 클레이는 33%, 잔디는 10% 정도다. 세계 아마추어 코트의 비중도 비슷하다. ITF(국제테니스연맹)가 발표한 2024 글로벌 테니스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 코트의 55.3%는 하드코트, 25.7%는 클레이코트이며, 잔디는 3%도 되지 않는다. 사실상 '역사적 유물' 수준이다.
특히 잔디가 이렇게 희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잔디코트는 대부분 영국과 호주 등 해양성 기후 지역에 집중돼 있으며, 관리가 매우 까다롭다. 코트 한 면당 연간 3000~5000달러의 유지비가 들고, 전담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투어 일정에서 잔디 시즌은 윔블던을 포함해 고작 5주 남짓이다. 랭킹 포인트와 상금 가중치도 낮은 편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신규 보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잔디는 일부 전통 대회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상징적인 표면이 되었다.
반면 하드와 클레이는 사정이 다르다. 두 표면은 각각 투어와 아마추어 생태계를 독식한다. 특히 하드코트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가장 큰 이유는 돈과 관리 편의성이다. 하드코트는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쉽다. 설치비는 약 4만~6만 달러, 연간 유지비는 300~800달러 정도다. 반면 클레이는 설치비가 6만~9만 달러, 유지비는 1000달러 이상이다. 게다가 매일 물을 뿌리고, 라인을 정리하고, 흙을 눌러야 한다. 날씨에도 약하다. 비가 오면 흙이 무너지고, 건조하면 먼지가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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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과 라틴아메리카는 1960~1980년대에 조성된 클럽 코트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기반층을 활용하면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하드코트로 전환할 유인이 낮다.
또한 클레이는 지역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라파엘 나달은 단순한 선수가 아니라 스페인 테니스의 상징이다. 브라질의 구스타보 쿠에르텐도 마찬가지였다. 이 스타들의 성공은 클레이에서 시작됐고, 그 성공이 남긴 유산은 유소년 아카데미의 훈련 모델로 자리 잡았다. 긴 랠리, 지구력, 스핀 중심 전술은 남유럽과 남미 테니스의 DNA가 됐다.
경제적 요인도 있다. 프랑스오픈(롤랑가로스)은 올해 총상금 5600만 유로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갱신했다. ATP 투어 전체 수익에서 클레이 시즌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몬테카를로, 마드리드, 로마로 이어지는 '봄 클레이 스윙'은 중계권 패키지와 스폰서 노출의 핵심 구간이다. 이를 없앤다면 투어와 대회 모두 막대한 손실을 본다.
정치적 힘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테니스 연맹은 ATP·WTA 이사회에서 15% 이상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클레이 시즌을 줄이는 문제는 거버넌스의 균형을 흔드는 일이 된다.
마지막으로, 클레이는 종목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단일 표면 투어는 특정 체형과 플레이 스타일을 과도하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하드코트 일색이 되면 강서브와 파워 테니스가 지배하는 스포츠로 변할 것이다. 클레이는 다양성을 지키고, 랭킹 공정성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결국 코트는 표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드코트는 효율과 속도, 그리고 상업화의 언어를 대변한다. 클레이는 느리지만, 테니스의 다양성과 지역 문화, 그리고 정치적 균형을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다.
코트 안에는 돈, 권력, 문화가 얽혀 있다. 테니스는 결국 '표면'적으로라도 정치를 피할 수 없는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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